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보라 Feb 05. 2021

어느 날 내게 문학이 말했다

수업 <문학의 이해> 과제 '문학적 에세이 쓰기 ' 

블로그에서 '롤모델'에 대해 찾아봐야할 일이 있었다. 검색하다가 이 글을 발견했다. 대학교 1학년 때, 교양으로 듣던 수업 <문학의 이해>에서 과제로 '문학적 에세이 쓰기'라는 걸 내준 적이 있다. 그래서 쓴 글.  2009년 2009년 10월 8일에 작성했다고 쓰여 있다. 소설을 엄청 좋아하던 고등학생 때의 나 그리고 영화를 엄청 좋아하던 대학교 1학년 내 모습이 이 글에 있어서 새롭고 또 반가웠다.  



예술이 어떻게 나에게 접근해왔는지에 대해 이번 기회에 생각해보았다. 나에게 문학이 다가왔을 때, 그리고 다가온 후 나는 문학과 어떻게 지냈는지에 그리고 왜 내가 문학을 좋아하는지에 대하여 차근차근 생각해보면서 써나가보려고 한다.     


나에게 문학은 언제 다가왔을까. 어렸을 때는 책을 읽고, 내 머릿속에 있는 이야기를 써보는 것이 좋았던 것 같다.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한 부담감은 있지 않았나 보다. 초등학교 4, 5학년 쯤에는 빗방울이 주인공인 A4 한 두장 정도의 글을 학교신문에 기고한 적도 있었다. 그 당시에는 글 쓴다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라기보단 쓰는 것 자체가 재미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한두 편 정도 짧게 글을 써 본 기억이 있는데, 그래서 그런지 초등학교 4학년 때의 나의 장래희망을 보면 ‘작가’라고 적혀있다. 글을 쓰는 게 멋있어 보였고 재미있을 것 같다. 그래서 작가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그 뒤로는 글을 쓰지 않았다. 잘 쓰지도 못했다. 어렸을 땐 멋모르고 썼지만 차츰 차츰 학년이 올라가면서, 다른 작품들(특히 그 때는 필독 도서라며 청소년을 위한 세계명작을 보곤 했기 때문에)을 보다보면 내가 쓸 수 있는 것들은 너무나 하찮고 보잘것 없어 보였고 글을 쓴다는 건 너무나 대단한 일로 여겨졌고, 그래서 작가라는 것은 내가 해서는 안 될 것으로 느껴졌다. 작가에 대한 나의 꿈은 그렇게 잠시 사라졌다.     


작가를 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렇다고 문학이 내게서 멀어진 것은 전혀 아니었다. 중학교 무렵에 좋아했던 작가들은, 기억나는 작가로는 김진명, 베르나르 베르베르, 공지영, 신경숙, 정도였는데 나는 그 작가의 작품을 처음 한번 읽고 나면, 이때까지 그 작가가 썼던 책들을 다 읽어보는 스타일이었다. 그렇게 짧은 시간에 그 한 작가에게 푹 빠져서는 다 읽고 나면 왠지 그 작가의 문체나 내용의 공통점을 좀 안 듯 하여 뿌듯한 기분이 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당시에는 이 작가들을 롤모델로 삼으며 지냈던 것 같다. 작가라는 직업은 힘들 것 같았지만, 이렇게 유명한 작가들의 책을 읽고 있노라면 내 안에 있는 강한 명예욕이 자극되었다. 이 작가들의 책을 읽다 보면 마치 나도 이분들처럼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책을 읽는 동기 중의 하나였던 것 같다.     


이렇게 주로 중학교 때는 대중적인 책을 많이 읽었다는 기억은 나지만, 내가 무슨 책을 읽었고, 내가 그 책을 읽음으로 해서 어떤 생각이 들었으며 나아가 어떤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잘 알지 못한다. 기록을 잘 하지 않아서인데, 그러다 내가 소설을 가장 많이 읽었다고 생각되는 시기인, 고등학교 2학년이 되기 전 겨울 방학 시절에 읽은 책의 인상적인 문장과 내 생각들을 조금씩 그때그때 노트에 메모하기 시작했다. 그 후 1년간은 계속 그렇게 했는데, 내가 가장 문학작품들을 사랑했던 시기였고, 책을 읽더라도 소설밖에는 읽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정상적인 수업을 다 끝내고 하는 야간자율학습시간에도 책을 읽었다. 야자를 빠질 수 없는 것이 현실이었고, 그렇다고 몇 시간을 계속 다른 친구들과 같이 집중도 되지 않는 상태에서 문제집만 풀고 있기는 정말 싫었다. 그 현실에서 잠시나마 도피하는 기분을 느낀 게 책을 읽을 때였다. 책을 읽다가 좋아하는 문장, 정말 공감가는 부분이 나오면 가슴이 두근거리기까지 했고 그럴 때 책을 읽는 보람이라는 것이 한껏 느껴지곤 했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내가 문학을 좋아하는 이유는 나와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 공감은 어떨 땐 너무 강렬하여 몸에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그 예를 들자면, 2008수능 성적이 발표되었던 2007년 12월 10일. 그 날 우리 학교에 다니던 쌍둥이 자매 언니 둘이 아파트 옥상에서 자살을 했다. 그 다음 날 학교에서 친구들을 통해 들었다. 내가 직접적으로 알고 있던 언니들은 아니었지만, 친구의 동아리 선배이기도 해서 지나가면서 얼굴은 익혔던 언니들이었다. 신문에도 보도되고 뉴스에도 나왔다. 그런데 그 소식을 처음 들은 당시에는 충격이 많이 크지 않았던 것 같다. 그날 저녁 여전히 야간자율학습은 하였고, 나는 며칠 전에 빌려놓은 책을 읽었다. 「동정 없는 세상」이라는 작품을 읽고서 반해버린 박현욱의 또 다른 작품 「새는」이라는 장편소설이었다. 그러다가 눈에 확 띄는 구절이 있었다.     


「해마다 적으면 수명에서 많으면 열몇 명이, 때로는 그 이상의 학생들이 목숨을 끊었다. 동기는 한결같았다. 그런 사건들은 신문 사회면 하단의 아주 작은 기사로 취급되었다. 학교에서는 그보다 더 작게 쉬쉬하며 넘어갔다. 그렇다고 해서 나중에 문교부장관이 돼서 혹은 총칼을 들고 한강을 건너 어떻게 좀 제대로 된 학교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며 공부하는 아이는 없었다. 」     


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건 오늘 우리 학교에서 일어난 일이잖아. 너무도 똑같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눈물이 났다. 냉소적으로 생각하던 그 일은, 책에 나와있듯이 ‘해마다’ 벌어지는 일이었다. 그 언니들의 순간적인 잘못된 선택이 아니라, 그 언니들이 그렇게 행동하게 만든 건 사회라는 생각이 그제서야 강하게 들었다. 그리고 학교에서는 이 사건에 대해 아무 말도 없었고 담임 선생은(2006년에는 그 언니 학년들을 가르치기도 했던) 이건 학교의 불명예니 어디가서 말하고 다니지 말라고 했다. 위의 문장은 사실, 일반적으로 일어나는 일을 작가가 쓴 것이겠지만, 그 상황에 처한 나로서는 왠지 나의 기분을 다 이해해 주고 같이 분노해 주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위로가 되었다. 나에게 문학이란 이런 존재였다.  

   

모든 소설을 다 좋아할 수는 없는 것이기에,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 취향도 생겼는데, 대략 8명 정도가 된다. 언급하자면, 김영하, 박완서, 성석제, 박현욱, 박민규, 이만교 그리고 일본 작가로는 오쿠다 히데오가 있다. 이들의 공통점을 찾자면 작품들이 재미있다는 것이다. 웃음을 주기 때문에 재미있는 것도 있겠지만, 박완서 작가는 장편이든 단편이든 간에 그 모든 작품들이 우리들에게 각성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기에 재미있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존경하고 좋아한다. 그 중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박민규이다. 고1때 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읽고서 바로 박민규에게 푹 빠져버렸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은 그 이후로 4번 정도는 더 읽었던 것 같다. 내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힘들고 지칠 때 보는 그런 책이 되었다. 무엇이 나를 그렇게 끌어들였는지 생각해 보면 일단 박민규의 문체 하나하나가 신선하고 재미있었다. 그리고 내용도 맘에 들었다. 특히나 입시공부를 하던 시절에 읽었던 터라, 읽다보면 그 책에 나와있는 사고방식 ‘치기 힘든 공은 치지 않고, 잡기 힘든 공은 잡지 않는다’ (정확한 문장인지는 모르겠지만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사람인 신해철의 좌우명-그래서 나의 좌우명도 되버린-인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라는 좌우명과 통하는 의미였기에 읽는 기쁨이 더해졌던 듯하다. 또한 오쿠다 히데오와 성석제, 이만교의 글은 볼 때마다 익살과 재치가 넘치고 읽을 때 나를 기분좋게 만들어줘서 정말 사랑하는 작가들이다.     


그리고 고등학교 시절에는 문학상 수상작들을 읽는 것에 잠시 빠졌었다. 몇몇 작가들에 편중된 독서를 하다가, 여러 작가들의 단편들을 읽다 보니 또 다른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작가들의 단편을 읽으면서, 불현듯 생각이 들었다. 나도 이들처럼 이상문학상 후보작이라도 되는, 그런 작가가 되고 싶다고. 하지만 막연했다. 그 생각이 고3 초까지는 쭉 이어졌다. 그러나 난 어렸을 때 내가 좌절을 느낀 상태에서 그다지 나아가지 못했다. 읽은 책들과 작가들의 권위에 짓눌려, 창작은 나와 별개의 세계라고 단정지었다. 그리고는 관심분야가 고3 땐 문학에서 영화로 바뀌었다. 고3 시절에는 책을 읽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물론 책 읽으려고 했다면야 당연히 읽었겠지만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럴 때 영화를 자주 보게 되었다. 이전에는 문학작품들 안에서 그 장면들, 인물들을 상상하면서 공감의 코드를 찾아내고 즐거워했다면 이제는 화면에 보여지는 영상을 그대로 보면서 영화 안에서 공감의 코드를 찾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어쩌면 대학을 국문과로 갔다면 나는 지금쯤 문학을, 취미가 아닌 전공자의 눈으로 바라보며 더 깊이 알아가고 있을 것이다. 이 학교와 다른 학교의 국문과 중에서 고민하다가 왔기에, 충분히 그럴 가능성은 존재하였다. 하지만 그 결정을 할 당시, 영화에 관심이 생긴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였고, 그래서 영화가 더 끌렸다.     

이렇게 이 학교에 와서 ‘영상이론’이라는 과목을 공부하고 있는 지금, 나는 영화를 취미가 아닌 전공으로서 바라보며 공부해나가고 있다. 영상이론에 대해 공부하다 보니, 내가 문학을 사랑했고, 물론 지금도 사랑하는 것이 오히려 더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내가 좋아했던 장편작품들이나 단편들이 영화로 만들어지면 그걸 문학 작품적으로도 보면서, 또 지금 내가 배우는 것들로 영화 비평을 같이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어떤 힘들 일이 있을 때에도, 문학작품을 읽으면서 나는 충분히 내가 위로받을 수 있고 그를 통해 상처를 치유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나에겐 그만큼 문학이란 큰 존재이기 때문에 언제까지나 문학과 함께 하고 싶다. 



마지막 문단은 굉장히... 비장하기까지하다. 단호하기도 하고. 문학 작품이 나를 위로해줄 거라는 강한 확신이 있었던 때. 지금도 그러한가? 질문하게 된다. 

작가의 이전글 2월 1일_인스타그램에 올린 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