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2월, 편집국장의 막말로 인한 스트레스 그리고 엄마의 암수치
2018년 2월
1. 그다지 안 좋은 얘기
오늘도 운동을 가지 못 했다. 나를 챙기자는 다짐으로 등록한 운동. 최소 주 2회만이 목표였다.
오늘은 칼퇴하고 운동할 줄 알았는데... 운동이 아니라면 책방을 가보고 싶었다. 그러나 퇴근은 늦어지고 퇴근 전 올려둔 기사는 나오지 않았다. 점심 이후부터 취재해서 정리한 기사에 대해 "보도자료 베껴 써선 안 된다", "기사에 야마가 없다"는 소리를 들었다. 베껴쓰진 않았지만, 부족한 점은 있으니 고치자 싶어 고친 거였는데.
퇴근길. 보도자료를 안 본 것 같은 질문 들었을 땐... 나는 누구와 대화를 하고 있는걸까. 버스에서 아득한 기분이 들어서 맥이 빠졌다.
'야마'라는 말은 입사하고 1년 10개월 넘게 선배들로부터 들은 적이 없었다. 원래 그 단어를 좋아하지도 않았기에 쓰지 않는 선배들이 좋았다.
하고싶은 글 쓸 기회는 0. 어려워하는 글은 더 몰아붙이거나 스스로를 계속 부족하게 생각하게 만드는 환경이라고 생각한다.
보고, 듣고 싶은 프로그램도 많고 그래서 쓰고 싶은 건 많은데 영 글렀다. 나는 다시는 여기서는 스스로 만족스러운 기획기사를 쓸 엄두를 못 낼 것임을 깨닫는다. 11월부터 깨달았지만 희망 가지고 살았다. 아닌 건 아니다.
브런치에 글 써야지 써야지 해놓곤 한 줄도 못 쓴 채 여기다 쓰고는 잠 들려한다.
2. 기분 좋은 얘기.
집 올 때 처음으로 571을 탔다. 퇴근시간이 지났을 시점이라 탈 용기가 생겼다. 많이 막힐까봐 안 탔었다. 아침에도 버스로 40분 저녁에도 40분 걸렸다. 버스인데 빨랐던 편이다. 제일 좋아하는 라디오, 언니네라디오 들으며 앉아서 이동해서 더 좋았다.
좋아하는 일이 마음 속에 생겼다. 지지난주 일요일 서울에 온 엄마랑 얘기나누다가 문득 떠올랐다. 엄마와는 때로는 불같이 싸우지만(혼나지만) 그래도 내겐 좋은 이야기 친구다.
이거구나 싶으니 그동안 왜 이런 저런 것들이 나의 관심사였는지 들어맞았다. 이미 흥미가 있으면서도 특정 단어나 문장이 머릿속에 규정되지 않으면 스스로 못 깨닫는 것 같다.
아직은 엄마 외엔 얘기를 하진 않았지만 좀 더 생각하다보면 친구들에게도 얘기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아직은 엄청 작은 생각만 한 거니까.
씻고 나서 한 시간 반 책을 읽었다. 폰을 안 보려했으나 3, 4번 봤다. 인터넷하거나 티비보고 라디오 듣다 자곤 했는데 맘 먹고 책을 읽으니 좋다. 어제에 이어 이틀 연속이다. 어제는 릿터. 김미월 글을 보고 진짜 반가웠다. 마음이 아린데 따스했다. 장강명 소설은 언시생 이야기라 술술 읽히다가 마지막에서 콕 찌르듯 맘이 아팠다.
오늘 아침에 평소보다 일찍 나서서 571 타고 목동3단지에 내렸다. 내린 시간 8시 55분. 회사 두 정거장 전이다. 처음 가 본 양천도서관에서 회원증 끊고 읽고싶던 책 네 권 찾아서 빌리고 기분 좋게 회사로 걸어갔다. 도착하니 21분. 역시나 문은 닫혀있고 문을 열고서 여유있게 컵을 씻고 커피를 내리고 책상에 앉았다. 그러고 10시간 뒤 퇴근!
아 월요일엔 휴가였다. 엄마 정기검진 결과 확인날인데 그동안은 차마 휴가를 못 내서 5개월 정도 같이 가보지를 못 했다. *정말 정말 모처럼 같이 병원을 갔다. 하필 병원 전산이 잠시 마비돼서 진료가 쭉쭉 미뤄진 건 답답했지만.
엄마의 결과는 지난번처럼 괜찮았다. 암수치가 더 높아지지 않았고 스캔도 마찬가지였다. 더 좋아지지도 나빠지지도 않는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다.
엄마의 담당 의사는 김OO 선생님인데 엄청 친절하다거나 한 건 아니더라도, 다른 의사들에 비해 매우 환자들의 얘기를 잘 들어주는 편이다. 환자들이 진료실에서 꽤 오래 있다 나온다. 엄마가 농담을 좋아해서 가끔 농담을 던지면 이해를 못 하거나 로봇같이 반응한다...!
KBS 다큐 <앎>에서도 한 출연자의 주치의로 잠시 나왔었다. 혼자 TV 보다가 깜짝 놀라서 전화로 "엄마 김OO 선생님이 티비 나오네"라고 전했던 기억이 난다.
아들과, 딸과 온 환자들이 보였다. 그 자식들을 보며 저들도 나같은 마음이겠지 싶었다. 남편, 아들, 딸 모두와 온 환자도 있었는데 온가족이 걱정해주는구나 싶어서 뭉클하기도 했다. 꼭 낫기를 바라는 마음.
<2024년의 코멘트>
기획취재일이 없어지면서 휴가를 내는 것조차도 어려워진 회사 분위기. 세상에..
몇 년 전인데도 당시에 이 글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면서 엄청 고심했던 게 떠오른다. 회사 힘든 이야기만 쓰면 사람들이 볼까? 안 읽지 않을까? 싫어할까? 등등의 자기 검열이 많았다.
그래서 굳이 ‘그닥 안좋은 얘기와 기분 좋은 얘기’라는 말을 제일 앞에 덧붙였다. 안 좋은 얘기도 읽고, 기분 좋은 얘기도 읽어달라는, 당시 나의 마음이 전해진다...
엄마랑 했던 이야기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이야기였다. 그땐 이렇게 글에 차마 적기도 어려울만큼 벅차고 버겁던 말이었다. 그만큼 되고 싶으면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