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병원에 계시던 외할아버지를 떠올리며

"외할아버지에게 가장 필요한 건 아마 ‘말벗’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by 구보라

처음 써보는 기획취재일 에세이(1)에 이어지는 내용



이튿날인 2월 5일(2016년) 금요일. 경주에서의 13시간. 전날의 전주여행으로 피곤했지만, 그래도 새롭게 경주에서 보냈던 하루였습니다.


외할아버지


경주는 어릴 때부터 익숙했다. 익숙하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7남매인데 그 중 엄마와 막내 이모를 제외하고 5명 그리고 외할아버지도 모두 경주에 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점점 더 찾아가는 횟수가 줄었고 다른 일을 하던 작년에는 시간이 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한 번도 가질 않았다.


재작년부터 할아버지가 기력이 쇠약해지셨는데 낙상이 이어지며, 결국 작년에 요양병원에 입원하셨다. 그러고나서는 처음 찾는 병원. 2층 병실에 들어가니 왼쪽 편에 병실침대 5개가 나란히 거의 붙어있었다. 그리고 벽에는 티비. 맞은편에도 똑같이 되어있었다. 서로 마주보지만 중간에 벽이 있는 구조. 소리는 들리는 상황이었다.


할아버지가 잠시 아파서 입원하는 게 아니라, 여기서 살아가시는 건데, 너무 시끄럽고 번잡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보이는 할아버지의 헬쓱한 얼굴... 12시에 맞춰서 갔기에 나오는 식사에 맞추어 할아버지와 함께 식사를 했다. 불과 몇 년 전에도 집에서 혼자서라도 식사 차려서 드시고 TV 보시던 할아버지 모습이 떠올랐다. 1시 반, 재활치료를 시작한 할아버지를 두고 엄마와 나는 병원에서 나왔다.


막 깊이 파고들어서 생각하면 너무 슬퍼질 것 같아서 생각을 덜 하려고 했지만, 쓸쓸함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할아버지 외에도 병실에 있던 분들을 보며, 찾아오는 이 없이 잊혀져가는 기분을 느끼실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가장 필요한 건 아마 ‘말벗’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022년 현재에 쓰는 코멘트>


외할아버지는 그해 봄 돌아가셨다. 뵙고 나서 몇 달 후였다...


그때도 내려가야지 하면서도 몇 주 미루던 때였는데, 그렇게 손녀인 나는 외할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더 뵙지 못 했다. 할아버지도 할아버지만의 즐거움은 많았을 거라고 기억하고 싶다. 수려한 외모여서 외할머니가 속도 많이 끓였다고도 하던데... 외할머니가 일찍 돌아가시고(내가 태어나고 몇 달 후 돌아가심) 이후의 시간들을 혼자서 계속 보내셨다. (아, 70대 중반 정도까지는 할아버지가 여자친구를 꾸준히 사귀신 걸로 기억한다.)


쓰다 보니, 나는 정말 외할아지에 대해서 아는 게 없다.


한 생명이 태어났다가 소멸했는데, 그 사람에 대해서 제대로 아는 사람이 단 한 명은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싶다. 외할아버지의 자식 7명(엄마는 돌아가셨으니 이제는 6명) 중에서 외할아버지에 대해 제대로 알고, 이해하는 사람이 있을까? 나같은 손주들 중에서는? 없을 것 같다.


브런치에 글을 올리기 전 이런 점들이 문득 떠올랐다.




외할아버지... 하늘에선 평안하시길. 외할머니랑, 엄마랑 함께 평안하게 계시길 바랄게요.

외할아버지의 네 번째 손주 구슬이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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