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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보라 Feb 01. 2020

지망생

취업준비생, 퇴사준비생, PD지망생... 다음 진로를 고민하던 지망생 

지난해 이맘때의 나는 ‘지망생’이었다. 'PD 지망생‘. 퇴사 후, 2018년 9월부터 2019년 3월까지 계속 공부했고, 시험을 봤다. 그러나 4월부터는 집안 사정상 공부를 놓아야 했다. 언제까지 그래야할 지조차 예측할 수 없었다. 다시는 방송사에 지원할 수 없을 것이란 걸 의미하기도 했는데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방송사 PD’라는 꿈보다 그 사정이 더 중요했다.      


그러다 2월쯤 ‘시험을 통과할 수 있을까?’라는 회의적인 생각도 들기 시작했었다. 그전까진 ‘시사교양 PD’라는 그 타이틀을 얻기 위해서 나를 끝없이 채찍질했다. 다음 단계로 점프해야한다는 압박감에, 마음이 조급했다. 방송사 2차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서 시사상식 단어들을 외워야 했다. 신문을 강박적으로 많이 읽고. 시사 논술을 써내야했다. 심사위원들의 눈에 띄어야 하는, 참신하고 간결한 ‘작문’도 끝없이 연습했다. 기사를 3년 동안 썼고, 글쓰기를 좋아하는데도, 시험용 글을 쓰는 건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해야 하는 공부는 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방송사에 가고 싶은 마음이 덜 절실했던 걸까? 여우의 ‘신포도’ 같을 수도 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더 이상 방송사에서 만드는 시사교양 콘텐츠는 내게 인사이트를 주지 못 했고, 만들고 싶지 않았다.       


7월쯤, 다시 서울로 올라왔고 이젠 시험을 안 본다. 누군가의 눈엔 ‘저 나이에, 이제 회사 들어갈 준비도 안 하고, 뭐 먹고 살려고 저러나’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일단은 당장 하고 싶은 일들을 찾아서 하고 싶었다. 다른 사람의 눈보다는 내가 중요하니깐. 마음을 내려놨다. 나에게 조금의 숨통을 주고 싶었다. 앞으로의 진로는 그 이후에 고민하기로. 


생각해보면 고등학생, 대학생, 취업준비생, 퇴사준비생, PD지망생... 때도 늘 다음 진로를 고민하며 살아야 했다. 처음이었다. 8월부터는 글쓰기 친구들과 그동안 썼던 글을 모아 책으로 내는 작업을 했는데, 9월 말에 출간할 수 있었다. 덕분에 독립출판물 마켓도 몇 번 나가보기도 했다. 내 책을 주위 사람들에게 알리고 파는 경험이 새롭고 좋았다.      


그런 시간들 속에서 좋아하는 책을 손님들에게 알리고, 판매하는 책방이라는 공간에 대해서도 더 많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원래도 동네책방을 가는 걸 정말 좋아했지만, 그걸 업으로 생각한 적은 없었다. 새롭게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 “책방을 하고 싶다”고 말로 내뱉고 다니다보니, 좋아하는 책방들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책방 일에 대해 알아간다. 콘텐츠 기획도, 이제는 ‘방송사에 들어가면 해야지’가 아니라, 지금 당장 만들어볼 수 있는 콘텐츠를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시험을 준비할 땐 ‘언젠가 PD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확실하진 않지만 언젠가 다가올 수도 있는 미래가 정해져 있었다. 그러나 ‘시험을 준비하던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지금은 미래를 예측하긴 어렵다. 그런데 ‘행복’이라는 단어를 쓰기가 거창하다면, 그래도 만족스럽다. 하루하루, 당장에 해야할 일을 해내고 있다. 불안하지만 이 불안도 감당해볼만하다.                          




자기소개: 구보라 

보고 듣고 씁니다. 하고싶은 일을 찾아가는 중입니다. 책이 있고,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을 좋아합니다. 좋아하는 콘텐츠를 주위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동네책방에서 일합니다. 사람 만나기, 걷기, 자전거 타기, 팟캐스트 듣는 걸 좋아합니다. 


태재 작가의 [에세이 스탠드]를 수강하면서 썼습니다. 1월 11일에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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