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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보라 Feb 16. 2020

나도 그레이스 & 프랭키처럼

넷플릭스 <그레이스 앤 프랭키> 시즌1~시즌6

넷플릭스에서 단 하나의 작품만 추천한다면? 주저 없이 <그레이스 앤 프랭키>(이하, 그앤프)다. 콘텐츠를 많이 보는 선배로부터 <그앤프>를 추천받았었는데, 그 선배의 추천작은 모두 내 취향에 맞고 재밌었다. 역시나 이 작품도 마찬가지! 자취생이라면 공감하겠지만, 밥 먹을 때 벽을 보면서 먹진 않으니 무언가 볼거리가 필요하다. 20~30분짜리 1회는 금방 본다. 특히 재미있는 콘텐츠라면 계속 볼 수밖에. 다음 일정이 있거나, 엄청난 자제력을 발휘해야 비로소 ‘멈춤’을 누르고 화면을 끈다.  


<그앤프>는 그 자제력을 발휘하는 게 굉장히 힘들었다. 시즌6가 최근 공개됐다. 다른 넷플릭스 콘텐츠로 밥 먹는 시간을 버텨가며 최근에 나온 <그앤프> 시즌6를 4,5일에 한 편씩 본다. 시즌7이 마지막(넷플릭스는 왜 그런 결정을?)이라고 해서 엄청나게 아껴보는 중이다. (그래도 이미 12화...)    


 

70대에 이혼? 끝 그리고 시작     


만약 당신이 70살이 넘은 여성이고, 남편과 자식이 두 명씩 있는 상태라고 하자. 나름 어느 정도 사회적으로도 지위가 있고 경제적으로도 안정적인 편이다. 인간관계도 썩 괜찮(다고 생각하)고.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이 자신은 게이라고 이야기한다면? 남편과 사이가 좋았든 안 좋았든 간에 이는 매우 충격적인 일일 것이다.      


바로 <그레이스 앤 프랭키>의 시작이다. 그레이스(제인 폰다)와 프랭키(릴리 톰린)에게 일어난 일이다. 시즌1 1화는 부부 동반으로 만난 식사 자리에서 시작한다. 남편들은 그레이스와 프랭키에게 다짜고짜 이혼하자고 한다. (그레이스의 남편은 로버트, 프랭키의 남편은 솔) 


- 어떤 여자야?

= 남자야.”

- (로버트) “솔과 나는 사랑하는 사이에요.”     


! 결혼생활이 40년. 20년전부터 사겨왔으니 두 남자들은 20년 동안 그레이스와 프랭키를 속여왔던 셈이다. 머리가 터져버릴 지경이었던 두 사람은 모두, 비치하우스로 향한다. (비치하우스는 두 부부가 공동 명의로 구입해둔 해변 별장이다) 두 사람은 매우 친하지 않은 사이기에 한순간도 같이 있고 싶어 하지 않는다. 제발 나 혼자 있게 해달라고 고함을 지를 정도! 왜 고함까지 지르냐면요? 그레이스랑 프랭키는 달라도 너무 달랐고, 데면데면한 정도가 아니라 서로를 싫어했거든요..      


두 사람은 성향이 정반대다. 외모에서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르다.      


그레이스: 이성적, 합리적, 우아함, 까칠함, 사업가. 언제나 하이힐. 깔끔한 비즈니스 정작 스타일. 보드카 마티니를 물처럼 마심. 딸 두 명. 둘째딸의 자식이 3명인데 아이들 그다지 안 좋아함.       

프랭키: 감성적, 비합리적, 유쾌함, 푸근함, 예술가, 명상가, 목걸이 기본 2~3개. 치렁대는 옷 좋아함. 치즈 퐁듀 사랑함. 아들 두 명. 아기 너무 좋아함. 뱃속에 있는 손녀에게 태교로 <백래시> 읽어줌. 


결국 두 커플은 이혼을 한다. 이후 그레이스와 프랭키에게 펼쳐지는 이야기들은 꽤나 흥미롭다. 정반대인 다른 두 사람이 비치 하우스에서 같이 살아가고, 사사건건 부딪힐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부딪힘 속에서 서로를 알아간다. 한 발짝 다가가고 사건이 생기면 두 발짝 떨어지고, 다시금 화해하고... 그 반복이다. 두 사람에게 이혼은 결혼생활의 끝이었지만, 자신들의 삶을 살아내는 시작이기도 하다. 


나이든 여성의 사랑과 성 그리고 일 


이와중에 그레이스와 프랭키는, 서로에게 연애 좀 하라고 부추긴다. 깨알같이 서로의 연애를 챙긴다. 응원과 부추김 속에서 그레이스랑 프랭키는 연애를 곧잘 한다. (다만 그 시기가 서로 살짝 다를 뿐.) 시즌1 에피소드 8에서 그레이스는 남친과 첫 섹스를 하기 전, 침대에서 거울을 보며 여러 가지 포즈를 취해본다. (그 모습은 마치 넷플릭스 <내가 사랑했던 남자들에게>의 10대 여주인공 같다.) 그레이스는 늙어버린 자신의 몸을 안 보여주기 위해서 불도 꺼두기까지 한다. 나이가 들었어도 누군가와 마음을 나누는 일, 사랑을 나누는 일 모두 여전히 어렵고 낯설고 수줍은 일이다. 이 당연한 진리를 <그앤프>를 보며 새삼 깨달아갔다.      


"노인네들도 자위하거든!" "우리들도 질이 있다고!"라는 말을 듣자 놀라는 프랭키의 아들들. 버드(왼쪽)의 표정 ㅋㅋㅋㅋㅋ 귀를 막는코요테(오른쪽)ㅋㅋ 


두 사람은 시즌2에서 함께 사업도 시작한다. 바로 관절염 여성을 위한 바이브레이터! 보통 <그앤프>를 소개하는 글을 보면 ‘두 할머니가 바이브레이터 사업도 해요!”라며 살짝 자극적인 웃음의 소재로 소개되는 경우를 왕왕 봤다. 그런데 이 바이브레이터가 그렇게 소개되고 소비되는 건 좀 안타깝다. 그 시선은 이 드라마 속에서 그레이스, 프랭키의 아들과 딸들이 똑같이 보여준다. 그리고 사회에서도. 두 사람의 사업 아이템에 선뜻 투자자로 나서는 이가 없다.    


드라마에서는 이들을 '그레이스', '프랭키'로 보지 않고 나이든 사람으로만, “무능하고 보살펴줘야 하며 구해야할 대상”(그레이스, 프랭키의 대사 중에서) 취급하는 시선들이 굉장히 많이 나온다. 그런 시선과 발언들을 보면서 마치 내가 그레이스랑 프랭키가 된 것처럼 화가 나기도 했다. 근데 생각해보면 나 또한 노인들을 그렇게 바라봤다. <그앤프>를 보다보면 자연스럽게 노년의 사랑과 성뿐만 아니라 나이들며 겪는 어려움과 편견까지 알 수 있다.  


성소수자, 입양아, 환경 보호, 은퇴 시기, 알콜 중독, 안락사, 결혼 등등. 여러 가지 사회에 있는 차별이나 이슈들도 거침없이 나온다. 특히 베이브 에피소드는 <그앤프>를 본 사람들이라면 다들 기억할 것 에피소드다. 그레이스와 프랭키의 절친인 베이브는 이들에게 본인이 자살하도록 도와줄 것을 부탁한다.   

   

- 왜 죽으려는 거야? 우울증이야? /= 그럴 리가. 나처럼 행복한 사람이 어딨다고. 

- 제정신 아닌거지?/ = 내가 계획한 것 중에 가장 제정신으로 한 거야. 암이 재발했어. 온몸에 퍼졌지. 이번엔 치료 안 받기로 했어. 또 수술하고 싶지 않아.      


그레이스는 혹시나 기적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자살을 말린다. 그에게 베이브는 이렇게 말한다. “기적은 필요 없어. 좋은 인생이었는걸. 매순간 진심으로 살아냈지.” 너무 가슴 뭉클한 장면이다.(눈물이...) 베이브는 인생을 살아오면서 만난 사랑하는 모든 친구들을 초대해 즐거운 파티를 연다. 그리고 그레이스 & 프랭키의 도움으로 세상을 떠난다. 논란이 될 수 있는 이슈, 그렇지만 한번쯤 꼭 생각해 볼 이슈인 안락사에 대해서 이렇게나 따스하고 사려깊게 보여줄 수 있다니. 이 에피소드 이후로 <그앤프>가 더욱 좋아져버렸다. 


아, 생각해보니 바이브레이터 사업을 하게 된 것도 베이브 덕분이었다. 베이브가 죽은 후, 베이브로부터 깜짝 선물이 도착한다. 프랭키에겐 전시장으로 쓸 갤러리 대관(통 크다 정말). 그레이스에게는 바이브레이터였다(!) 


두 사람이 왜 사업을 함께하기 시작했는지 조금 더 덧붙여보자면. 그레이스는 프랭키 앞에서 바이브레이터를 써 본 척한다. 그러나 사실은 처음이란 걸 들킨다(ㅋㅋ) 다음날 아침, 그레이스의 팔이 불편해보인다. 알고보니 바이브레이터 때문... 밤새 바이브레이터를 쓰다가 관절염이 도져버렸다. 관절염 있는 여성들은 어떻게 쓰라는거야! 그러다 생각해낸다. 우리처럼 관절염 있는 여성들을 위한 바이브레이터를 만들자고! 자신들을 무시하는 자식들 앞에서도 즉흥적으로 선언한다. 우리 둘 사업한다고. 역시나 다른 성향 때문에 사업하면서도 굉-장히 심하게 다툰다. 그렇지만 두 사람이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 삶에 더 활력이 생긴다. 너무 주체적이고 당당하다. 또한 이렇게 70대에 '스타트업'처럼 새로운 일을 시작해내는 모습을 보는 것 자체가 신선하고 재밌다. (그리고 그레이스 & 프랭키가 만든 바이브레이터는 꽤나 잘 팔린다~ 우리나라에는 나이든 여성을 위한 바이브레이터가 있을까? 궁금해지기도 했다) 


평소 미디어에서는 나이든 사람들의 삶 자체가 아예 비춰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나오더라도 이렇게 삶을 살아가는 모습은 보기 힘들다. 특히나 나이든 여성들의 삶. <그앤프>는 그들의 삶을 보여준다.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사랑스러운 작품인데, 또 너무 잘 만들었다...! 


나도 그레이스 & 프랭키처럼! 


이 글을 쓰기 위해서 다시 시즌1을 봤다. 에피소드1에서, 충격적인 커밍아웃을 한 뒤로 로버트는 그레이스의 방에 들어와 말을 건넨다. “나랑 살면서 행복했었어?”라고. 왜냐면 둘 사이는 그다지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 그레이스는 이렇게 답한다. “난 충분히 행복했어. 대단한 로맨스는 없더라도. 보통은 된다고 생각했어. 다들 이렇게 살겠거니 이런 게 인생이겠거니 했어.” 반면 프랭키의 집 풍경은 조금 또 달랐다. 프랭키는 혼란스러우면서도 가장 ‘절친’이었던 솔에게 꼭 안겨서 잔다.       


그 장면을 다시 보면서, 그레이스는 이혼 이후 인생에서 그동안 맛보지 못 했던 ‘행복’을 찾았구나! 물론 여전히 실수도 하고, 힘든 일도 생기지만. 그래도 더 이상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지 않는다. ‘다들 이렇게 살겠거니’ 하는 인생을 살지 않는다. 진짜 자신이 원하는 일을 찾아나선다. 서로를 경쟁하고 비꼬는 친구가 아니라 진짜 친구를 만나 우정을 나눈다. 로버트처럼 쇼윈도 남편이 아니라 정말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 마음을 표현한다. 프랭키도 마찬가지. 그레이스라는 진짜 절친을 만나고, 즐기며 일도 하고 사랑도 한다.  


두 사람이 자신이 원하는 삶을 찾아갈 수 있었던 건 세상에서 둘도 없는 친구가 곁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사랑하던 남자와 헤어지든, 새로운 사람과 결혼을 하든. 그레이스와 프랭키가 서로에게 여전히 친구로 남았기에 가능했다. 시즌5 마지막 에피소드에 나오는 대사가 떠오른다. 시즌5에서는 조금씩 서로를 오해하고, 그렇게 영 멀어져버린다. 그러다 마지막 에피소에서 서로의 존재가 얼마나 소중한 지 새삼 깨닫고 부둥켜 안는 장면이 있다.  이때 그레이스는 “we made it back together!”라고 말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You're my best friend and my parter and I need you”  


뾰족한 칼같던 그레이스는 프랭키 때문에 조금씩 둥글어지고, 너무 자유분방해서 형태없이 흐물거리던 프랭키는 그레이스를 만나 형태를 찾아나간다. 따로 또 같이, 서로를 존중하며. 그 모습이 참 좋다.


많은 이들이 <그앤프>를 보고, 나이 들어서 나도 저런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고 적어둔 걸 봤다. 나이 들어서 ‘젊고 잘생긴 연하 남친’을 만나는 것(그레이스)보다 그레이스나 프랭키 같은 친구를 만나는 게 더 어려울 것 같다. 70대에 만난 찐우정... 최고다!  


그레이스와 프랭키를 보며 저 나이 때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 지, 살아가고 싶은지 생각할 수 있었다. 


나도 그레이스 & 프랭키처럼, 사랑하고, 우정을 나누고, 일하고 싶다.  




<그레이스 앤 프랭키> 시즌6 예고편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BCx4-0iobU&feature=youtu.be 


+ 본문에 적질 못 했는데, 그레이스 & 프랭키의 자식들도 너무 웃기고 좋다. 각자 캐릭터가 매우 분명한데 나는 브리아나를 제일 좋아함. 엄마인 그레이스를 닮았는데, 독설이 더 심하다. 하지만 솔직하다. 


+ [좋아하는 장면]


1. 시즌1) 점심 데이트 나가는 그레이스에게 (서랍에 넣어두고 오래된) 콘돔 건네는 프랭키 


2.  시즌5에서 첫 번째 에피소드와 마지막 에피소드를 좋아한다. 비치하우스의 의자에서 손을 잡고 있는 두 사람. 되게 비장해보이는데, 그냥 머릿 속이 좀 복잡한 상태다. 


3. 시즌5. 에피소드1) 자식들의 계략(?)에 양로원을 갔다가 탈출한 두 사람... 양로원에 있을 예정이니 집이 필요없었기에 내놓았는데, 그사이 이미 팔려버렸단 걸 알게 된다. 그리고 그레이스 앤 프랭키는 비치하우스를 무단점거하기 시작하는데... 양로원에 갔다가, 엄마들을 찾아 달려온 자식들! 그들은 그레이스&프랭키에게 이건 말이 안 된다, 두 분은 다시 양로원 가야 한다고 설득하는데... 


여기에 대한 대답은? "엿까!" 


+ 프랭키의 웃는 모습이 넘 좋다.


콘텐츠 리뷰 팟캐스트  <아랫집윗집 여자, 리뷰합니다> 2회 '80대의 일과 사랑 그리고 찐우정 <그레이스 앤 프랭키>'에서도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아랫집윗집 여자, 리뷰합니다>에서는 영화와 책, tv드라마, 팟캐스트 무엇이든 저희가 보고 들은 것들을 리뷰합니다. 구보라, 배동미 두 사람은 아랫집 윗집에 사는 90년생 동갑내기 친구이자 전공을 살리지 못한 영화 비평 전공 선후배 사이입니다. 불러주는 대중문화 비평지가 없어서 직접 만들었습니다!

한 명씩 각자 인상깊게 본 콘텐츠를 리뷰합니다. 2주마다 한 편씩 업로드합니다.  


팟빵 http://www.podbbang.com/ch/1775045

네이버 오디오클립 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3874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podcastssumae/     

메일 podcastssumae@gmail.com

    

[0회] 무엇이든 우리가 보고 들은 것들을 리뷰합니다

[1회] 스크루볼 코미디를 현대적으로 결합한 <결혼 이야기>

[2회] 80대의 일과 사랑 그리고 찐우정 <그레이스 앤 프랭키>

[3회] 일터는 왜 조금 더 너그러워질 수 없는 걸까 : 천주희의 <회사가 괜찮으면 누가 퇴사해>와 장류진의 <일의 기쁨과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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