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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동미 Feb 09. 2020

스크루볼 코미디를 현대적으로 결합한 <결혼 이야기>



  ‘천재 연극 연출가’ 찰리(아담 드라이버)와 ‘한때 잘 나갔던’ 영화배우 니콜(스칼렛 요한슨)은 부부 사이이다. 니콜은 찰리를 따라 고향이자 일터였던 LA를 떠나 뉴욕에 정착했다. 니콜은 찰리의 삶에 스며들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수용했지만 상승세를 탄 찰리는 자신의 예술 세계에만 몰두한다. 니콜은 어느 날 자신만 멈춰있고 찰리가 멀리 떠나고 있다고 느낀다. 니콜은 이혼 소송을 낸다. 감독 노아 바움백은 본인의 이혼 소송을 통과하고 <결혼 이야기>를 연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예술가로서의 그의 기질이 이혼 경험을 <결혼 이야기>로 만든 셈이다.


  빠른 대사, 갑작스러운 춤과 노래,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남녀 간의 갈등. 영화 <결혼 이야기>의 구조가 아닌 스크루볼 코미디 장르의 공식이다. 스크루볼 코미디는 1930년대 경제공황기 할리우드 스튜디오에서 나타난 장르로 계급적, 사회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남녀의 갈등을 다루는 것으로 유명하다. 두 사람의 차이는 위트 넘치는 대사로 전달되며 남녀가 서로에게 비아냥을 보내는 건 기본이다. 스크루볼 코미디는 주인공 두 사람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이 어리둥절해하는 코믹한 상황도 자주 연출되는데 <결혼 이야기>에서는 찰리가 LA에 있는 니콜의 친정에 방문하는 장면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났다고 생각한다.


  찰리는 니콜의 가족들과 친밀한 사이다. 잠시 떨어져 있기로 했지만, 니콜과의 이혼하겠다는 결심이 서지 않은 찰리는 익숙하게 장모의 집에 들어서자마자 음식을 집어먹는다. 니콜은 이혼 서류를 모두 준비한 상태. 찰리가 오면 니콜의 언니가 서류를 건네주기로 이미 약속해뒀다. ‘언니가 해라’, ‘네가 해라’ 등등 찰리 한 사람을 속이기 위한 빠른 대화와 몸 연기가 이뤄지는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네 사람이 대사만으로 절묘한 긴장감을 만들어내는데 보는 재미가 대단히 크고 웃음이 터지는 장면이다.


  미국 사회의 흠을 찾아내지만 다시 그를 긍정하는 것이 스크루볼 코미디의 특징이다. 결국에는 미국적인 가치를 강조하며 마무리되는데 <결혼 이야기> 또한 자발성과 활력, 자기표현, 자유 등을 찬미한다. 찰리와 니콜도 이혼 과정을 거치지만 두 사람 모두 성공과 자아 찾기에서 있어서 완벽한 조화를 이뤄낸다. 젠더 불평등과 동부, 서부 사이의 차이를 영화는 나타내지 두 사람은 궁극적인 의미에서 자유를 성취한다. 니콜은 LA로 돌아가 배우로서 성공할 뿐 아니라 연출자로서 에미상에 노미니 된다. 찰리도 동부에서의 성공을 발판 삼아 교수로 일할 기회를 얻는다. 두 사람의 갈등은 봉합되면서 미국 사회를 긍정하는 것으로 영화는 마무리된다. 스크루볼 코미디는 결국 새로운 가능성과 상상력보다는 지금 그대로의 것을 인정하면서 끝나기 마련이다.


  바움백 감독은 영국 영화 매거진 ‘White little lies’에서 이러한 체제 ‘유지’의 상태를 긍정한다. 그는 결혼 제도 자체가 변화할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하거나 기존 결혼 제도의 정치적 함의에 대해서는 질문하지 않는다. 바움백 감독은 “본질적으로는 사랑은 여전히 사랑이고, 사랑으로 남을 것이고, 사랑이 될 수 있다. 당신이 더 이상 결혼을 유지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끝난 결혼 생활은 여전히 결혼이었으며, 이 모든 것들이 영화 속에 담겨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그런 의미에서 변호사 버트(알런 알다)의 대사 “이혼이란 시체 없는 죽음과 같다”가 중요하다고 꼽았다. 죽음이란 생동하지 않는 신체에 대하여 바깥사람들이 상태를 인정하고 판단하는 것이다. 이혼도 마찬가지란 의미다. 죽었다고 해서 그 이전의 삶이 부정되는 것이 아니고, 이혼했다고 해서 앞선 사랑의 순간들이 모두 무의미했다거나 존재하지 않았던 게 아니다.


 영화 속에서 변화하는 가치와 기존 가치가 충돌하지만 미국 사회는 개인들이 자유를 성취해낼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사회인 것으로 마무리된다. <결혼 이야기>의 매력적인 두 배우는 빠른 대사로 서로를 깎아내리고 노래를 부르고 눈물을 터트리지만 결혼 생활은 시작해볼 만한 가치 있는 것이고, 영화가 끝난 뒤에도 긍정하게 되는 유일한 체제로 남는다.




덧1. 물론 <결혼 이야기>는 총체적으로 보자면 드라마 장르입니다. 하지만 최루성 로맨스 드라마는 아니고 무언가 유쾌한 잔상이 남습니다. 음악과 춤, 배우들의 빠른 대화도 특징적이고요. 어떤 면에서는 스크루볼 코미디 장르를 많이 가져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덧2. 바움백 감독의 ‘이혼-죽음’ 비유는 찰떡입니다. 니콜과 찰리는 영화의 초반과 후반 장면에서 이혼 조정을 시도하다가 서로를 어떻게 생각하고 사랑했는지 적은 메모를 읽어주는데요. 이 쪽글은 니콜과 찰리의 결혼 생활 종료에 따른 추모글인 셈입니다. 오롯이 상대만을 생각하며 쓴 글이고요.


덧3. <결혼 이야기>의 음악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음악이 너무 훌륭했다고 생각하면서 극장을 빠져나왔던 기억이 나네요.(개봉일에 상암동의 한 극장에서 봤는데 오리지널 포스터도 얻어서 집에 걸어뒀습니다 흐흐) 랜디 뉴먼. 훌륭한 음악 감독이죠. 최근 영화 음악들은 멜로디가 거의 느껴지지 않게 아사무사하게 들리는 것이 유행인데 <결혼 이야기>의 음악은 귀에 꽂히면서도 정말 부드럽고 아름다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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