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보라 Feb 02. 2020

'씬'에 대한 다양한 기억을 모아둔 <씬의 아이들>

에세이와 인터뷰를 읽으며, 공감가는 지점을 찾는 재미 

인디 음악을 좋아한다. 많이 좋아했다. 지금은 ‘적극적인 헤비 리스너’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음악을 듣는다면 인디 음악이다. 여기서 ‘인디 음악’은 홍대 인디 씬에서 활동하는 뮤지션들의 음악을 뜻하는데, 그래서일까. 인디 ‘씬’을 다룬 <씬의 아이들>이라는 책을 정말, 너무 재밌게 읽었다.      


<씬의 아이들>(재미공작소)은 인디 씬을 보면서 꿈을 키웠고, 그 안에서 성장하여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는 5명의 이야기를 에세이와 인터뷰로 엮은 책이다. 뮤지션 연진, 몬구, 전자양의 인터뷰 그리고 인디 레이블을 운영하는 하박국, 음악평론가 김윤하의 에세이가 실렸다. (*글 아래에 책에 나온 사람들의 소개글을 옮겨두었습니다. 참고해주세요.)


지난해 11월 독립출판페어인 언리미티드에디션에서 이 책을 처음 봤다. ‘재미공작소’ 부스에 놓인, 쨍한 연두빛의 책. (재미공작소는 문래동에 위치한 문화예술공간이고, 이 책을 기획하고 편집했다.) 그런데 난 그날 <씬의 아이들>을 사지 않았다. 책에 나오는 사람들을 잘 알지 못 했기 때문이다. 인디 음악 좀 들었다면서 왜 몰랐냐고 할 수도 있다. 연진, 몬구, 전자양. 이름은 많이 익숙했고, 그들의 음악을 듣기는 했지만 ‘팬’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내가 잘 모르는 음악가들의 이야기, 재밌게 읽을 수 있을까? 고민했고 책 사는 걸 주저했다.  그러다 최근에 책방 제로헌드레드 사장님이 마포FM 라디오에 출연해서 <씬의 아이들>을 소개한 걸 들었다. 듣고나니 읽고 싶어졌다. 읽기 시작했다.      


잘 공감 못 할까봐 걱정했지만, 내가 좋아하는 뮤지션들과도 삶의 시간이 꽤나 겹쳐서 흥미로운 지점이 많았다. 분명 내가 좋아하는 뮤지션들도 이 나이 또래(1980년대초 태어남)였으니, ‘이들과 비슷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자연스레 하며, 더 흥미롭게 빠져들었다. 나와는 10년 정도의 차이가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와 비슷한 지점들을 발견하는 재미도 꽤나 컸다. 책을 읽으며 마음에 드는 부분에 포스트잇을 붙이는데, 계속 붙이고 붙였다.       


왼쪽에서부터 하박국, 연진, 몬구, 김윤하, 전자양. @재미공작소 홈페이지


그들은 어떻게 에 발을 들여놓았고 계속 음악을 할 수 있었나       


인터뷰를 읽으며 흥미로웠던 부분은 ‘나는 왜 음악을 사랑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나는 왜, 어떻게 음악을 직접 하기 시작했는지’가 나올 때다. 여기서 아마도 하박국, 김윤하 평론가 그리고 이 글을 읽던 나와의 차이점이 드러난다. 음악을 좋아하는 리스너와 음악을 직접 하는 뮤지션.      


뮤지션 중에서 가장 먼저 인터뷰이로 등장하는 연진에 대해 말해보면, 연진은 고등학교 때 학원 영어 선생님을 통해 메탈리카, 비틀즈, 스키드 로의 음악을 알게 됐다. 이후 학교 근처에 있던 레코드샵(마침 유명한 레코드샵이라 음반도 많았음)을 다니기 시작한다. 헤비메탈로 시작해 하이브리드 록, 힙합, 알앤비 등을 듣는데, 그러다 PC 통신 소모임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연진을 잘 모르더라도, 라이너스의 담요 'Picnic' 이 노래를 들으면 바로 알 수도 있다.) 


음악 듣는 걸 좋아하던 연진은, 전자양 때문에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대학 때 어느 음악 감상회 모임에 참여하기 시작했고, 그 모임의 주축이었던 전자양이 자신은 음악을 할 거라며 직접 만든 음악을 들려주기도 했다고 한다. 그때 연진은 전자양이 추천해 준 소프티스의 음악을 듣고 완전 반해버린다. “‘내가 이걸 해야 되겠다’가 아니라 주위에서 주는 정보들을 취합하면서 ‘이게 나랑 어울릴까? 아니면 이게 나랑 어울릴까?’ 나랑 어울리는 옷을 찾는 기분으로.”   


어울리는 옷을 찾는 기분으로, 자연스럽게 음악을 시작했다는 그 표현이 참 멋지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좋다’에서 그치지 않고 나도 이런 음악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실제로 해버리는 것. 나로서는, 엄청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진은 자신이 마침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치기도 해서, 음악을 들으면 따라 칠 수도 있었고 그래서 음악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나도 어린 시절부터 피아노를 쳤지만, 직접 음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었다. 역시, 뮤지션은 다르다는 생각을 하면서 계속 읽어나갔다.  연진은 조금 더 분명하게, 자신이 왜 음악을 시작하게 됐는지 말한다. “딱히 들려주고 싶은 음악이 있어서 뮤지션이 된 케이스가 아니라 ‘나도 여기(씬)에서 영향력을 갖고 싶다’는 욕망”이라고. 씬에서의 영향력이라, 꽤나 솔직하고 분명하다! 


[라이너스의 담요 - Rag Time + Show Me Love] 


강원도 산골에서 살던 몬구의 아버지는 교회 목사였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자연에서 오는 바이브’도 느끼며 살아갈 수 있었고, 교회에 있는 악기도 접할 수 있었다. 그러다보니 또 자연스럽게 음악을 많이 찾아서 듣기 시작했는데, 다양하게 듣다가 고등학생 때 밴드에도 참여한다. ‘준수(몬구) 너는 착하게 생기긴 했지만 왠지 음악 잘할 것 같아. 기타 못 치고 드럼 못 치면 베이스 쳐’라는 말에 베이스로 참여한 그는 마음껏 연주를 즐긴다.      


대학 때도 그 관심은 이어졌다. 중고장터에서 레코더를 사서 노래를 녹음하기 시작한다. 녹음한 이후에 대해서 몬구가 한 말이 인상적이다. “‘진짜 좋다’는 말은 못하겠지만 ‘내가 듣고 싶었던 음악이다, 개성 있고 좋아할 사람들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145)      


전자양도 마찬가지다. 그는 자신은 음악하는 사람과는 멀다고 생각했다는데, 크라잉넛의 공연을 보고 ‘아, 나도 밴드 해야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엄청나게 유명한 밴드가 되겠다는, 정도의 야망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일단 시작했다. “‘나는 음악을 해야겠다, 취업을 하더라도 회사 다니면서 하면 되지’ 막연하게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185)     


이렇게 ‘씬의 아이들’은 음악을 시작한다. 음악을 하다보면, 같이 할 사람들이 모이고, 처음엔 취미처럼 시작하다가, 정식으로 밴드를 결성한다. 왜? 같이 하고 싶으니까.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좋은 시너지들을 만들어내고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다들 곡을 써오고, 같이 만들기도 하면서 곡이 쌓여갔어요.”  (89)”     

음악을 공개하더라도, ‘씬’의 반응이 없었다면 이들이 음악을 계속할 수 없었을 것이다. 씬에서의 반응은 계속해서 음악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음악 하는 동료들, 선배 뮤지션들, 팬들의 따스하고도 꾸준한 반응들.      


연진은 밴드 체제의 담요일 땐 멤버들로부터 음악적으로 인정을 받지 못 해서 외로웠다고 한다. 그런데 ‘트리오 봉봉’이라는 팀을 만나면서, 같이 음악을 했는데 이 멤버들은 ‘아니, 이런 곡을 어떻게 썼어? 이런 멜로디 라인은 어떻게 쓴 거야? 너무 라인이 좋은데?’라는 피드백을 했다고 한다. “같이 합주할 때마다 이런 피드백을 받으니까 너무 행복하더라고요.”(118)      


정말, 얼마나 그 피드백이 소중하고 힘이 되었을 지... 나의 경우엔 음악을 만들진 않아도, 글을 쓰니까. 이 느낌이 어떤 느낌인지는 알 것 같기도 했다. 글을 쓰고, 독자들의 반응도 중요하지만 함께 글을 쓰고 읽는 ‘동료’들의 반응이 무엇보다도 힘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 존재들을 인생에서 만난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소중하다.)  몬구에게 큰 힘을 해 준 건 신해철이었다. 1집이 나오고 나서 매체들에서 관심 가지지 않았냐는 질문에 단호한 답변을 한다. “아뇨, 매체들은 관심 없었고, 유일하게 저희한테 관심 가져준 건 신해철 형밖에 없었어요.”(149) . 고스트네이션에서 몽구스의 음악을 많이 틀면서 꽤나 알려질 수 있었고 2집 활동으로도 이어질 수 있었다.   

[몽구스- 나빗가루 립스틱 ]


그리고 그 누구보다도 씬에 있는 뮤지션들에게 큰 힘이 되는 건 팬이다. 재미공작소도 이를 분명히 짚는다. “씬을 지탱하는 건 창작자들이기도 하지만 팬들의 역할도 크다고 생각합니다.”  (122), “창작자들이 결과물을 적극적으로 소비해주는 사람들이 있어야 씬이 존재할 수 있죠.” (123) 나또한 그 팬이기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었다. 이어지는 연진의 답변도 인상적이다. “저는 창작자들도 다른 창작자들에게 계속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인 소비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게 씬을 지속시키는 힘인 것 같아요.” 


씬이 계속되길 바라는 팬의 입장에서는, 지속적으로 다양하고 많은 사람들이 씬의 음악을 듣고, 팬으로 유입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씬의 음악'을 누구라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져야하지 않을까. 나같은 경우는 지방에서 살았기에, 아무래도 접할 수 있는 문화의 범위가 좁았다. 라디오인 신해철의 <고스트네이션>을 듣지 않았더라면, 아마 이 씬에 대해서 알지 못 한 채 학창시절을 보내버렸을 가능성이 높다. 여튼, '씬의 음악'만 들었으면 하는 게 아니니까. 다양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기회들이 많아진다면, 사람들은 그 중 자신의 취향을 선택하고 만들어갈 것이기에 기회들이 더 많아지길 바라는 마음이 크다.  


<씬의 아이들>에서는 인디 씬에 대한 좋은 이야기만 하진 않는다. 몬구는 한때 인디 씬을 벗어나고 싶었다고 솔직하게 말한다. 활동을 가장 많이 하던 4집 때(2011년) ‘우리 이제 드디어 홍대 씬 벗어나는구나. 탈홍대 하는구나. 우리 전국구 가고 있구나’ 생각했다고 한다. 재미공작소가 탈홍대라는 것은 더 큰 곳으로 나간다는 의미인지 묻자. 그렇기도 하지만 합리적인 것과 거리가 먼 주먹구구식의 시스템과 이제 결별을 하고 싶었죠.재미와 낭만은 가득한데 그것만으로는 음악을 계속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라고 분명히 인디씬에서 느꼈던 답답함을 말한다.       


음악을 열심히 하면 오히려 주위에서 뭐라고 하는 분위기도 있었어요. 저는 음악을 열심히 하는 축이었거든요. ‘야, 작업은 즉흥적으로 해야지’, ‘낭만을 갖고 음악 해야지’ 이런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에게 ‘난 아닌데, 난 돈 더 잘 벌고 싶고, 음악 오래 하고 싶은데’ 그랬어요. 저는 그런 문화와 선을 긋고 싶었던 거죠.(161)     


몬구의 이 멘트가 좋았다. 열심히 하면 뭐라하는 분위기, 낭만만 중시하고 정작 ‘음악을 오래’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은 하지 않는 사람들... 이는 ‘음악’ 씬에서만 유효한 이야기는 아니다. 영화든, 책이든, 무슨 씬에서든 이 태도를 지닌 사람들은,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들을 비웃거나 거리를 둔다. 그게 마치 ‘인디’의 정신인 양. 이제는 이런 태도들이 조금씩은 더 없어지길. 


* [전자양-멸망이라는 이름의 파도]


인디씬을 떠나 메인으로 갔다가 다시 돌아온 연진. 메인으로 가고 싶었던 몬구. 인디씬을 지키던 전자양. 각자 개인적 행보는 달랐지만 ‘씬의 아이들’ 모두에게 인디씬에서의 시간은 분명히 즐거웠다. 몬구는 “제가 음악을 했던 지난 시간을 돌이켜 보면 너무 행복하고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어쩌다 지금 죽는다고 해도 ‘아, 재밌었다!’ 이러고 웃으며 죽을 수 있는 느낌.” (웃음) (230)이라 말한다. 지금 죽어도 ‘아, 재밌었다!’라고 말할 수 있을만큼 일을 즐기며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나도 이렇게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 평론가가 되기까지      


이제까지 책에 등장한 뮤지션들에 대해서 이야기했는데, 사실 내가 이 책에서 가장 인상깊게 읽은 부분은 김윤하 음악평론가가 쓴 글이다.      


김윤하 음악평론가에 대해서 잘 몰랐다. 인디 음악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음악 평론을 잘 읽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윤하 평론가가 <씬의 아이들>에 적은 소개글에서부터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애정에 기반한 글쓰기를 지향한다.’! 나도 그렇다. 비판보다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서, 잘 알리고 싶은 마음이 강하다.       


김윤하 평론가는 PC통신을 통해서 음악 친구들을 알게 된다.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좋아하는 일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게 된 그는 음악을 통해 글이라는 세계를 만난다. 그에게 국내 음악을 깊이 있게 알려준 건 나우누리 음악 비평 동호회 뮤즈였는데, 회원들은 ‘지금 우리와 함께 시대를 통과하고 있는 한국 대중음악에 깊은 애정’을 지니고 있었고, 이를 제대로 비평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에 결국 ‘우리가 듣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우리가 직접 하기로 한다.      


“아무도 하지 않으면 우리가 직접 한다”라니. 와... 이 정신이 정말 '인디' 그 자체가 아닌가. 멋지고 좋았다. 더 멋진 건 이때가 거의 20여년 전인데, 그때부터 지금까지 음악에 대한 애정이 식지 않았다는 점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때도 지금도 매사 끈기 없고 자주 질리는 내가 음악만큼은 단 한 번도 질리거나 싫어지지 않았다.’ (259)     


가장 와닿은 문장은 이제 다음에 등장한다. 아무래도 내가 지금, 글을 쓰면서 살아가고 싶어하고, 명확한 직업은 없이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가는 상황에 있다보니 더 와닿았던 것 같다.      


‘지금까지 나를 먹고살게 만들어 준 고마운 일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일과 놀이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하나가 둘을, 둘이 넷을 물어오며 주렁주렁 가지를 뻗어 나가는 음악 지식과 그로 다져진 취향은 내가 쓸 수 있는 글과 할 수 있는 말의 범위를 넓혀 주었다. 경험은 일이 되었고, 일은 다시 새로운 경험으로 향하는 문을 열어 주었다.' (272)      


마음이 벅찼다. 글을 읽으면서. 나 또한 지금, 해보려고 하는 일들이 사실상 ‘돈’이 되는 일들은 아니기 때문이다. 친구와 팟캐스트를 시작했고 어떤 친구들과는 독립출판물이든 잡지든 뭐든 같이 만들기로 했다, 같이 유튜브도 도전하자는 이야기도 하고 있다. 다 내 돈을 들여야만 할 수 있는 일이다. 일과 놀이의 경계가 분명치 않다. 하지만 나 또한 이 경험들을 쌓아가다 보면 이 경험이 새로운 경험으로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기대감이 생긴다.                


씬에 대한 그들 각자의 기억들이 더 많이      


‘<씬의 아이들>은 과거를 이야기하지만 미래로 나아가는 책이다. ‘씬’은 늘 변하고, 새로워지니까. ‘씬’이 그럴 수 있는 데에는, 다름 아닌 지금 이 책을 읽고 있는 독자 여러분의 역할도 있음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편집자의 말을 읽으며, 고등학생 때 인디 음악을 듣고, 늘 홍대 인디 씬을 궁금해하기만 하던 내가 떠올랐다. 서울로 대학을 오면서, 마음껏 즐기고 즐겼다. 그리고 그 열정이 사그라든 적도 있고, 새로운 형태로 다시 열정이 생기기도 했다. 그래서 읽다보니 공감할 수 있는 지점들이 많았다. 내가 인디 음악을 만들거나, 평론하지 않더라도. 나도 팬으로서 인디 씬에 조금이라도 속해있던 사람이라고 볼 수 있으니까.      


이 책을 읽는 다른 독자들도, 자신이 홍대 인디 씬을 좋아했든 안 좋아했든, 자신만이 좋아하던 씬에 대해서 떠올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팟캐스트 <영혼의 노숙자> ‘108화_그때 그 시절 [씬의 아이들]은 지금’에서 김윤하 평론가도 이렇게 말한다. (12:23:58부터 들으면 나온다) 그 멘트를 인용하며 글을 마친다. 다음번 글에서는 <씬의 아이들>을 읽으면서 떠올린 나의 개인적인, 씬에 대한 기억들을 써볼 생각이다. (나 자신과의 약속. 꼭, 마감해서 올리고 싶습니다...!) 


“이 책이 씬에 남아있는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아마도 씬을 떠난 아이들이거나 궁금해 하는 사람일 가능성이 되게 높은데. 특히 그 가운데에서 떠난 아이들이 우연히 이 책을 봤을 때, 아, 내가 떠나온 그곳에 아직 살아있는, 아직도 열심히 밭을 일구는 아이들이 있구나, 내가 잠시나마 있었던 그 밭이 의미가 없거나 아무런 소용이 없는 곳은 아니었구나, 라는 그런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주면 너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더라구요.  이 책을 읽으신 분들이 각자 자기들도 씬의 아이들이니까. 그런 이야기들을 많이 해줬으면 좋겠어요. 그런 이야기들이 각자 모이면 또 약간 연대처럼 되는 거잖아요. 하나의 모임처럼 되는 거잖아요. 이 책이 그런 역할을 하면 좋겠어요.”      

+ <씬의 아이들>을 사고 싶다면? 이 주소를 클릭해주세요 

https://m.blog.naver.com/studiozemi/221712194737


+ 하박국, 연진, 몬구, 전자양, 김윤하에 대해서 잘 모르는 분들이 있을 수 있으니 

책에 담긴 인물 소개를 옮겨보겠습니다. (저작권 문제가 된다면 바로 알려주세요) 


1. 하박국 

싫은 걸 정말 싫어하고 좋아하는 걸 나름의 방식으로 좋아한다. 이 둘을 결합해 싫어하는 걸 줄이거나 피하고 좋아하는 걸 늘리는 일을 하고 있다. 2002년부터 음악 칼럼 기고, 음반 제작, 디제잉, 이벤트 기획 등의 일을 해왔고 2018년부터는 건물주가 되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하고  <기술인간>이라는 유튜브 채널의 주인이 되었다. 클라이언트와 대중 모두에게 잘 보여야 이어나갈 수 있는 일을 하는데 성격이 그러지 못해 미래를 걱정하고 있다.


2. 연진

어린 시절부터 마음의 평화를 찾아 헤맸고, 장성한 뒤 결국 평화가 자신의 내면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특별한 자가 되고자 음악을 시작했으나, 자신이 음악을 통해 위로받았던 것처럼 자신의 음악으로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음악인으로 살아온 2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본인을 리스펙트해준 모든 분들을 기억하고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다.


3. 몬구

2003년부터 밴드 '몽구스'에서 신시사이저와 보컬을 담당하며 홍대 씬에서 활동했다. 현재 솔로 '몬구'와 프로젝트 밴드 '춘천'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환상에 젖은 여름밤을 떠오르게 하는 음악을 만들고 있다. 여름에게 가장 많은 영감을 받고 겨울이 되면 파도 같은 기타 소리를 찾아 여행한다. 뮤지션이 천직이라고 생각하는 몬구는 음악이 흘러야 하는 곳에서 유니크한 뮤지션으로 씬과 함께 흘러왔다. 아니, 지금도 흐르고 있고, 앞으로도 흐를 것이다. 


4. 전자양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선인지 악인지, 혹은 둘 다인지 혼란스러운 덩어리가 귀여움의 탈을 쓰고 웅크리고 있다. 만지면 물릴 것 같지만 쓰다듬어 보고 싶은 동물. 우리는 전자양. 달뜬 상태로 물어뜯고, 맛보고, 둥지를 만들고, 헤집다가, 알을 낳고 이상한 소리로 울부짖다가, 금세 무관심해지기도 하고, 이상한 꿈을 꾸기도 하며 함께 놀 친구들을 찾아다니고 있다. 


5. 김윤하

대중음악 평론가.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케이팝부터 인디까지 다양한 음악에 대해 쓰고 이야기하며, 들어오는 일 마다 않고 가는 일 붙잡는 영욕의 세월을 20년째 영위하고 있다. (중략) 각종 티브이와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음악과 문화와 관련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현재 네이버 V LIVE 케이팝 전문 프로그램 <베스트 뉴 케이팝>을 진행하고 있으며, EBS <스페이스 공감> 기획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애정에 기반한 글쓰기를 지향한다. 장래 희망은 귀엽고 유쾌하며 건강한 할머니. 






매거진의 이전글 에릭 로메르 <수집가>(1967) 리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