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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보라 Feb 25. 2020

요즘 나의 관심사 '책방'

[구보라의 책방 일기] 1  읽고 쓰고 책을 내고...책을 팔기까지 

* 이 글은 2019년 10월 7일 작성했습니다. 


읽는 마음에서 쓰는 마음으로      


“독립출판물 내고 싶어요.”, “독립출판물 낼 거예요!” 지난해부터였을까, 주위 사람들에게 이렇게 늘 말하고 다녔다. 회사를 다니던 시절에는 회사 이야기를 써서 책을 낼까 싶었다. 즐겁고 보람 있던 2년 남짓의 회사 생활 이후, 회사에서 내가 고인 물처럼 느껴졌다. 괴팍한 상사나 강약약강인 회사 선배 때문에 회사가 너무 싫어졌다.      

그럴 때마다 <일개미 자서전>(구달), <두 번째 퇴사>(지혜), <회사가 싫어서>(김경희), <월간 퇴사> 등의 회사 관련 독립출판물을 마치 경전처럼 읽고 또 읽었다. 이 책들은, ‘회사 그만둬도 괜찮아~’, ‘열심히 안 살아도 돼’같은 에세이는 아니었다. 부당한 건 부당하다고 낱낱이 속 시원하게 까발렸다. 퇴사를 미화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좋았다. 용기를 얻었다. 자연스럽게 써보려는 마음이 생겼던 것 같다. 회사를 그만둔 이후에도 그 마음은 여전했다. 꼭 회사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내 생각이 담긴 에세이를 쓰고 싶었다. 그런데 마음만 컸고, 실행하진 않았다. 지난해 가을, 나는 ‘돌아온 취업준비생’ 입장이었고 통장 잔고를 보다보면 마음이 빠듯해졌다.


글을 쓰는 마음에서 책을 내는 마음으로     


그러다 올해 9월 말, 바람이 현실이 됐다. 구보라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혼자서라면 아직도 말만 하고 다녔을 텐데! 배서운, 도티끌. 글쓰기 동지들 덕분이다. 지난해 3월, 책방 이후북스에서 독립출판물글쓰기워크숍을 들었다. 워크숍은 6주였지만, 끝나고 나서도 그곳에서 만난 두 사람과는 인스타그램 친구를 맺으며 그 끈을 놓지 않고 있었다. 가을, 우리 셋은 만났고, 즐겁게 이야기를 나눴다. 글쓰기 모임을 만들려고 만난 건 아니었지만, 너무나 자연스럽게 우리는 글쓰기 모임을 만들었다.      


매주 목요일마다 카톡 방에 글을 올렸다. 서로의 글을 읽고, 감상을 나눴다. 그 코멘트들이, 글을 계속 쓰게 했다. 서운님과 티끌님. 두 사람의 글이 재밌었다. 나와는 다른 스타일의 글이 흥미로웠고 계속 읽고 싶었다. 내 글을 쓰는 건 쉽지 않았지만, 다른 두 사람의 글을 읽고 싶은 마음에 뭐라도 끄적이며 쓰는 날도 있었다. 내 글을 내지도 않고 다른 이의 글을 읽는 건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며칠 늦는 경우가 있어도 심각하게 압박을 주지 않았다. 다만 ‘아, 티끌님 글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어요’, ‘보라님, 저 아직도 목 빼고 있어요!’라며 나름대로 위트있게(?) 압박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데드라인이 되어 준 셈. 우리의 책 제목도 그래서 《쎗쎗쎗, 서로의 데드라인이 되어》.     


글을 나눌 때도 좋았지만, 책을 내기로 결정한 이후로 만드는 과정 또한 좋았다. 최종 원고를 인쇄소에 넘기던 날, 셋이서 다함께 원고를 봐야만 했다. 뉴욕에 있는 서운님과, 집에서 인디자인 작업해야 하는 티끌님, 도서관에 온 나 셋이서 1시간 넘게 카카오 그룹콜을 하며 원고를 검토했다. 마포하늘도서관 옥상 벤치에 앉아 노트북을 보며 셋이서 통화를 하는데, 그 순간이 좋았다. 오랜만에 서운님 목소리도 듣고, 안부도 묻고. 날씨도 맑고, 책은 곧 나올 테고, 같이 이야기 나누는 시간은 즐거우니까. 누가 쓰라고 시키지 않았고, 책을 내라고 시키지 않았다. 모두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이었기에 과정도 전부 즐겁게 다가온 것 같다.     


지난 주말(9월 30일)에는 독립출판물페어인 ‘퍼블리셔스테이블’에 다녀왔다. 원래 독립출판물 마켓에 가서 책을 구경하고 사는 걸 좋아하는 편이다. ‘책을 내고 싶다’는 자각조차 없던 2014년부터 매년 언리미티드에디션을 갔었다. 독립출판물 읽는 게 너무 재밌었다. 이제껏, 언제나 사는 사람의 입장으로 갔었는데, 처음으로 책을 파는 사람으로 참여해보니 확실히 달랐다. 나를 모르는 누군가가 내 글이 담긴 책을 보는 게 쑥스러웠다. 손님이 다가와도 책에 대해 말 꺼내는 게 어려웠다. 티끌님이 자신감 있게 설명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배웠다. 뭐 어차피 책은 나왔고, 이왕이면 많은 독자들이 읽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커졌다. 나도 연신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였다가, 나중엔 타이밍 잘 봐가면서 말 걸었다. 글을 쓰는 마음, 책을 만드는 마음을 넘어서, 책을 파는 사람의 마음에 대해서도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책을 내는 마음에서 파는 마음으로     


책을 파는 사람의 마음. ‘이 좋은 책을 왜 안 읽어!’ 이런 태도는 곤란하다. 대부분의 책은 좋으니깐. 다만 내가 만든 책이, 어떤 특정 독자들에게 잘 가 닿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더 강해지고,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서점에 가면 좋을지, 어떻게 알리면 좋을지 등을 고민하게 된다.    

 

사실, 내가 가장 하고 싶은 건 글 쓰는 작가지만, 그걸 전업으로 할 마음은 없다. 일을 해야 글 소재도 나오고… 아, 전업 작가는 하고 싶다고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닌데…     

 

암튼 그래서 일로서는 책방 겸 북 카페 사장이 되고 싶다. 지난해부터 이 마음이 엄청 커졌다. 책이 있는 공간이 주는 힘이 내게 매우 크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방 주인’은 너무 먼 이야기라고 느껴졌다. 그래서 생각했다. 일단 방송사를 들어가서 PD 일을 하고, 거기서 하고픈 일도 하다가, 돈도 좀 모아두고, 그러다가 나와서 책방을 차리자. 그럼 그때의 나는 아는 것도 좀 더 많아지고, 뭐 아무래도 책방 운영하기 수월하지 않을까? 였다.     


최근 들어 PD만을 바라보는 인생 행로가 좀 바뀌고 나자 시야가 더 넓어졌다. 마음도 조금은 더 낙낙해졌다. (물론 금전적으로야 반대) 쉬는 동안 돈을 벌어야한다면, 글쓰기와 관련된 직업을 제외하고서 꼭 하고싶은 건 책방 아르바이트 혹은 북카페 아르바이트. 그렇게 일하면서 책방과 북카페에 대해서 서서히 알아가고 배워 가면 좋겠다.     


며칠 전, 서점리스본 인스타그램 계정에서 ‘미래 책방 주인 스터디’ 공지글을 봤다. 

    

‘지금은 아니라도 언젠가 나의 서점을 만들고 싶다면. 세상에 없는 색다른 서점을 만들어 보고 싶다면. 책방을 곧 시작할 건데 사람들이 책방에 대해 어떤 것을 기대하는지 알고 싶다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운영해도 책을 팔아먹고 살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면.’     


조금 고민하다가 바로 댓글을 달고, 신청했다. ‘안녕하세요, 지금은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미래에는 책방과 북카페를 하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 많은 경험을 잘 쌓아두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아직 꿈을 실현할 단계는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시간적 여유가 있는 지금 미리미리 조금씩이라도 고민해두면 좋을 것 같아요. 관심만 많지, 제대로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이번 기회에 조금 더 생각해보려구요.’ 다음주 일요일이 그 첫 시간이다.      


책방 스터디 신청한 다음날(10월초) 택배보 낼 책 포장 작업을 같이 책을 낸 티끌님 집에서 했다. 티끌님 집에는 독립출판물이 정말 많았는데 그중 읽고픈 책 있으면 빌려 가라고 해서 3권을 빌려왔다. 그중에서 스토리지북앤필름을 운영하는 마이크 사장님이 만든 책 <내가 책방 주인이 되다니>가 있었다.     


해방촌의 바로 그 스토리지북앤필름. 독립출판물을 파는 서점 중에서 거의 원조격이라고 할 수 있다. (유어마인드이 있지만 그곳은 좀 더 아트북 위주) 이 책에는, 2008년 필름카메라를 파는 '카메라스토리지'가 오롯이 책만 소개하고 만들고 판매하는 '스토리지북앤필름'이 되기까지의 시간을 일기 형식으로 기록해두었다. 스토리지북앤필름의 마 사장은 은행을 다녔었는데, 주말마다 필름카메라와 독립출판물을 판매하곤 했다. 그때의 생활부터, 직장 생활에서의 스트레스, 책방을 하며 알게 된 즐거움 등이 모두 책에 담겼다. 밑줄 긋고 싶은 문장들이 한두 문장이 아니었는데, 그 중 아래 두 부분을 공유하고 싶다.     


“시작할 때처럼 다시 조용해진 무대륙에서의 그 이틀은 마치 아주 기분 좋은 꿈을 꾼 것 같은 느낌이었다. 깨고 싶지 않은 그런 기분 좋은... 단순히 판매가 되어 그런 건 아니었던 것 같고, 내가 만든 책을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게, 정말 즐겁고 즐겁고 즐겁고 즐거웠다.” (65)     


“자다가 죽는다, 해도 후회는 없을 것 같다. 이래저래 힘들고 어려운 점들이 있어도 이렇게 선택한 삶을 통해 더 많은 것을 보고, 더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더 행복한 경험들을 많이 할 수 있었다. 만약 그냥 그렇게 회사만 다녔다거나 부업으로 책방을 했었다면 이런 즐거움들을 제대로 느끼지 못했을 것 같다. 모두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꿈나라로 고고씽-해야지” (71)     


첫 번째 문단은 마 사장이 처음으로 독립출판물을 만들어보고, 언리미티드에디션에 가서 책을 팔았던 때의 기록이다. 즐겁단 말이 무려 세 번이나 들어간다. 불과 1주일 전 퍼블리셔스테이블에서 그 경험을 했던 나로서는 격하게 공감하며 읽었다. 정말 ‘돈’ 생각했더라면 이렇게 내 돈 들여가면서 책을 만들고, 시간 들여서 직접 책 팔러 다니고 그러지 않았을 거다. 일단은 내가 만든 책을 많은 사람들에게 나눌 수 있다는 것, 이를 통해 소통해볼 수 있다는 것. 정말 ‘즐겁고 즐겁고 즐겁고 즐거운 일’이다. 그 즐거움을 알았기에 그는 책방 주인이 된다.     


“내가 책방을 하고 있을 줄은 대학 졸업 때만 해도 몰랐었다. 그렇게 예상치 못한 일들이 생기고, 변화가 있었고, 그 변화 속에서 원하는 삶을 찾아가고 있는 길인 것 같다.” (‘나가며’ 중에서)      


변화 속에서 원하는 삶을 찾기. 정말 중요한 것 같다. 올해 9월 들어서부터 하고 싶은 일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가 더 넓어지는 느낌이랄까? 굉장히 오랜만에 느껴보는 기분이다. 회사 다닐 땐 정체된 느낌이 들었었고, 퇴사 후 취준생 땐 정체를 뛰어넘어 원래 있던 세계가 쪼그라들고 말라버리는 기분이었으니까. 독립출판물을 낸 새로운 변화가 책방에 대한 관심을 더 크게 만들고 있다. 이 변화 속에서, 나는 원하는 삶을 잘 찾아갈 수 있을까? 부디 그러길 바라면서 이 변화를 즐기되 중심은 잘 잡고 있어야겠다. 그러다 나중에 언젠가 나도 이렇게 말할 날이 오지 않을까.


“내가 책방 주인이 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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