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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보라 Mar 05. 2020

봄맞이 미니멀리즘

숨통이 트였다. 공간을 가득 채우던 물건을 버리자, 마음이 여유로워졌다

옷이 많았다. 옷을 좋아하거나 잘 입는 편도 아니었는데 많이 지니고 있었다. 옷을 둘 공간이 충분했다. 4단짜리 깊고 넓은 붙박이장. 5단 서랍장. 3단 서랍장. 행거까지. 공간이 충분하니까 옷 정리를 하지 않고 살았다. 지지난집에서 지난집으로 이사 올 때도 옷이 줄지 않은 채, 그대로 왔다. 이삿짐 정리를 도와주던 친구들이 안 입는 옷들은 좀  제발 버리라고 했었는데…….       


12월초에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를 왔다. 아, 집이라기보다는 아직은 방이라는 단어가 더 잘 어울린다. 이사 온 방은 서울주택도시공사에서 매입한 원룸건물인데, 청년들을 대상으로 임대해주고 있는 곳이다. 당첨돼서 정말 기뻤다. 입주하기 전, 순위에 따라 들어갈 방을 정해야했다. 회사를 다니지 않는 나보다도 더 소득이 적은 사람들이 있었는지 내가 1순위는 아니었다. 넓은 방은 내 앞의 3명이 선택했다. 난 그 다음 방들 중에서 선택권이 있었다. 고만고만한 작은 방들에 대한 선택권만.      


원래 살던 방이 8평 정도였다면, 지금 사는 방은 6평이 채 되지 않는다. 그 2평 차이가 꽤 크다. 방을 보고 난 이후부터 머릿속엔 ‘대체 어떻게 짐을 다 옮기지?’, ‘수납을 하려면 가구를 그대로 옮겨가야 할텐데 가능할까?’ 등등...수납에 대한 고민이 온통 가득했다.      


어떡하긴. 정리하는 수밖에! 봄여름가을겨울 옷 전체를 다 집에 둘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일단 아직 겨울이니까. 간절기와 한여름 옷들을 차곡차곡 모아서 박스에 쌓았다. 가방이나 신발도 마찬가지. 이제껏 안 입었고, 앞으로도 입지 않을 옷들도 따로 모았다. 그 모음을 들고서 헌옷수거함을 여러 번 오갔다. 4박스는 나온 듯하다.      

옷을 정리하면서 깨달았다. 생각보다 내게 옷이 많이 필요치 않다는 것이다. 입는 옷만 입었다. 그때 진민영 작가의『조그맣게 살 거야』가 떠올랐다. 그 책에서 이런 내용이 있다.       


‘매번 같은 옷을 입어도 늘 세제 냄새가 폴폴 나면서 옷깃이 빳빳하게 다림질 되어 있다면, 도리어 깔끔한 인상을 만든다. 나는 옷에는 큰돈을 들이지 않지만 운동으로 신체를 단련하고, 피부와 정신 건강을 위해 아낌없이 투자한다. 중요한 건 가진 옷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지, 얼마나 다양한 옷을 입느냐가 아니다. 매일 다른 옷을 입어도 실상은 누구도 눈치 채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그래 옷이 많지 않더라도, 자주 입는 옷을 깨끗이 관리해서 입기만 한다면야. 의복으로서의 기능도 충분히 하고 남 보기에도 괜찮지 않을까? 『조그맣게 살거야』는 미니멀리즘을 실천한 이야기가 담긴 책인데, 일반적인 미니멀리즘 실용서가 아니다. 작가는 미니멀리즘을 실천하면서 삶도 간소해졌고 분명해졌다고 말하는데 그 내용들이 깔끔하고 밀도 있다. 문장들도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이 책을 정말 좋아해서 자주 읽었지만, 막상 미니멀리즘을 실천할 계획은 세우지 못 했다. 이번에 이사 오며 생각에만 머물던 미니멀리즘을 옷 정리하기로, 강제로 실천하기 시작했다.       


이사 오면서 가구를 그대로 가져왔다. 다행히 다 들어가긴 했지만 방이 온통 가구로 가득 차버렸다. 2칸짜리 장롱, 5단 서랍장, 3단 서랍장. 5단 서랍장을 계속 쳐다봤다. 저 서랍장만 치우면 숨통이 트일 것 같았다. 그래서 그 서랍장에 있는 옷을 싹 다 다른 곳으로 옮겨 넣었다. 안 될 줄 알았는데, 신기하게도 옮기니까 다 옮겨지긴 했다.      


이렇게 5단 서랍장은 빈 채로, 1월 중순부터 몇 주째 방 안에 머물렀다. 비워두긴 했어도 고민했다. 버릴지 그냥 둘지. 환절기 옷을 다시 가져오면 옷을 넣을 공간이 더 필요할 거야 vs 아니야 필요하더라도 이정도 크기의 서랍장은 버리는 게 맞아. 고민했다. 내가 옷을 더 사서 서랍장을 채워 넣을 것 같진 않았다.       


최근 들어 옷에 대한 소유욕이 더 줄어들었는데, 그건 지난 가을부터 새롭게 이용한 서비스 탓도 있다. 친구가 애용하던 옷 정기구독 서비스가 있는데, 3개월에 4박스를 빌릴 수 있다 1박스에는 옷이 2벌씩 들어있고, 10일 동안 빌린다. 외투랑 원피스 등 다른 옷 한 벌을 신청해서 요긴하게 입고 살았다. 회사를 다니지 않다보니 매일 같은 장소를 가지 않았고, 매일 같은 사람을 만나지도 않아서 괜찮았다. 빌린 옷을 기존 옷과 잘 매치해서 입고 다니면 충분했다. 옷을 사는 것보다 더 경제적이었다. 다양한 옷도 경험할 수 있었다. 옷을 사지 않아도 괜찮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신기하게도 글을 쓰다 보니 마음이 정리가 됐다. 5단 서랍장을 치워야겠다고. 눈이 펑펑 내리던 주말에 실천에 옮겼다. 창문을 가리고, 책상 옆 공간을 많이 차지하던 5단 서랍장을 치웠다. 숨통이 트였다. 공간을 가득 채우던 물건을 버리자, 마음이 여유로워졌다. 봄맞이 미니멀리즘! 앞으로도 필요한 것만 두면서 간소하게 살아보고 싶다.      


[에세이 드라이브] 3기 _ 2020년 2월 17일 작성  


구보라 


보고 듣고 씁니다. 

주1회 동네 책방에서 일합니다. 

하고 싶은 일을 찾아가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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