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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보라 Mar 05. 2020

촉촉

수분크림을 바른다. 듬~뿍. 나를 돌보는 느낌이 든다.

피부 관리에 신경을 쓴 적이 거의 없다. 피부가 예민한 편이 아니어서 저렴한 화장품을 써도 무난히 괜찮았다. 30대 초반인 지금까지도 언제나 로드샵의 스킨로션을 사곤 했다. 더페이스샵, 토니모리, 이니스프리... 스킨로션이 떨어질 무렵 세일하는 곳에서. 저렴한 제품으로. 얼굴에 바르는 것은 그게 전부였다.

       

언제나 스킨과 로션. 그 다음은 없었다. 지난해부터 ‘조금 관리해볼까?’란 생각이 들었다. 서른이 되어서였을까. 지금의 내 피부는 20대 초반의 피부와는 다를테고... 로션을 바르고 나서 수분 크림도 바르면 피부의 노화가 덜 빠르지 않을까? 나이가 들면서 피부가 늙어가는 걸 막을 수는 없단 건 알지만, 지금 할 수 있는 걸 조금은 해도 되지 않나. 60대의 내가 ‘30대부터는 수분크림을 발랐어야 하는데!’하고 후회하진 않길 바랐다.      


그래서 샀다. 역시나 세일하는 기간에! 수분 크림을 골랐다. 용량은 로션보다도 작으면서 가격은 더 비쌌다. 얼굴아 촉촉해져라~ 비슷한 시기에, 몸에도 바디로션을 바르기 시작했다. 피부 관리 철저하게 하는 사람들이 이 글을 보면, 세상에 이 사람은 수분크림도 안 바르고 살았다더니, 바디로션도 안 발랐다고? 하며 놀랄 수도 있을 것 같다. 겉모습을 중시하지 않는 건 아닌데, 피부와 몸에는 무심하게 살았다. tmi같지만 전 남친이 선물해줬던 바디로션도 거의 쓰지 못 한 채로 유통기한이 지나버렸다.(연애의 유통기한도...) 바디로션을 선물한 건 몸에 바디로션 좀 발라라~는 완곡한 표현이었는데 내가 그걸 못 알아차렸을 수도.     


마감 하루 전이었던 일요일 오후. 이 정도 초안을 쓰고는, 아~ 글이 써지지 않는다며 답답했다. 저녁을 먹고 나갔다. 집근처 불광천을 걸으면서 팟캐스트를 들었다.      


최애 팟캐스트인 <송은이, 김숙의 비밀보장>. 가장 최근 방송인 249회 ‘배우 이제훈 비밀보장 출연 실화냐? 우윳빛깔 꿀피부 비법 대공개!’  뭐지? 영화 <사냥의 시간>의 한 스태프가 고민 상담을 보내왔다. 영화 스케쥴이 바빠지면서 피부가 퍼석해지는데, 동갑내기 배우 이제훈은 점점 피부에 광이 나는 것 같다, 대체 비결이 뭔지 물어봐달라는 사연이었다.      


송은이와 김숙의 표현대로라면, 본인이 직접 촬영 현장에서 물었어도 되는 질문이었지만! 이제훈의 매니저에게 연락해서 이제훈과도 직접 전화 연결 성공! 그는 스스로 본인 피부가 좋은 걸 인정하면서(ㅋㅋ) 자신의 피부 비결을 알려줬다. 요약하자면 “물을 많이 마시고요, 마스크팩을 좀 자주 하구요, 그리고 금연을 합니다.” 너무 뻔한 비결인 걸! 본인도 그걸 아는지 계속 웃으면서 말하기도 했고. 여하튼, 그 와중에도 그걸 들으며 내일 마스크팩을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역시 얼굴에 수분을 넣어줘야 하는 거구나. 그리고 하나만 더 알려준 비법이 있다.      

수분크림이었다. 안 그래도 머릿 속은 계속 글감인 ‘크림’으로 차 있었는데, 팟캐스트에서도 수분 크림을 이야기하네? 역시 수분크림을 글에 써야하는 건가보다, 라는 깨달음과 함께 더욱더 수분크림을 잘 발라야지 다짐했다. 이제훈은 자신은 피부과 시술도 안 좋아한다고, 굳이 비싼 수분 크림이 아니어도 된다면서 뭐든 수분크림을 바르는 게 피부에 도움이 되는 것 같다고 했다. 끄덕끄덕. 피부 관리엔 수분크림이었어.      


요즘은 자기 전에 샤워하고 나서, 스킨과 로션을 바르고 나면 이제는 수분크림을 듬뿍 바른다. 듬~뿍. 나를 돌보는 느낌이 든다. 수분크림이 뭐라고, 그런 느낌이 든다. 신기하게도. 피부에 바르는 수분크림 덕분에, 나를 돌보는 느낌도 들고 내 삶이 조금은 더 촉촉해지는 것 같다. 이제 이 글을 보내고 나면, 자기 전 수분크림을 발라야겠다. 건조한 겨울, 모두 촉촉하게 보내시길. 



[에세이 드라이브] 3기_2020년 2월 24일 작성 


구보라 

평소엔 크림치즈를 잘 먹지 않습니다. 

이번 글을 쓰면서 오랜만에, 아이비에 발라서 먹었어요.

맛있네요. 잘 안 먹던 것도 먹어보며 지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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