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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보라 Mar 15. 2020

읽고, 위로받으며/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 (강창래, 루페, 2018)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 (강창래루페, 2018)는 암 환자인 아내를 위해 남편이 음식을 하는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책을 쓴 강창래 작가는 요리에 익숙하지 않아도 콩나물이랑 시금치를 무쳐본다. 물론 처음엔 어려웠지만 잡채, 채소스프, 오믈렛, 돔베고기국수 등 점점 할 수 있는 요리의 가짓수가 늘어난다. 요리 재료를 준비하고, 손질하는 문장에서 조심스러움과 묻어난다. 아내 건강에 좋지 않은 설탕, 소금 대신 청양고추, 작은 쥐똥고추, 산초, 고추기름 등으로 간을 내려 노력한다. 그런데 이렇게 맛을 내도, 아내가 먹을 수 있는 최대치는 적다.   


‘오늘 처음 해봤다. 그래야만 했으므로. 아내가 맛있게 먹었다. 아주 조금이었지만.’ 이 문장들에서 많은 걸 읽어낼 수 있다. 아픈 아내를 위해 요리해야 했고, 아내가 맛있게 먹어주지만 아주 조금밖에 섭취하지 못하는 걸 바라보는 안타까운 마음까지. 읽다 보니 자연스레 내 기억의 조각들도 떠오른다. 비교적 최근이다. 9년 전 암 진단을 받았던 엄마는 5년 전 재발 이후로도 낫기 위해 노력했다. 2019년 초부터 몸 상태가 더 많이 안 좋아졌다. 그리고 그해 6월 말, 세상을 떠났다.      


엄마가 떠나기 석 달 전, 고향으로 가서 엄마 곁에 머물렀다. 병원 치료가 무의미해진 상황이었지만 엄마의 건강한 세포들이 부디 암세포에 밀리지 않길 바라며 식사를 준비했다. 하루라도 더 살라고. 몇 달이든 몇 년이든 엄마의 밥을 만들 수만 있다면 계속 만들고 싶었다. 작가도 아내가 어떻게든 음식을 먹고 버텨내 주길 바라며 밥을 지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대단한 희생’이라고 감동할 수 있다. 하지만 환자의 보호자들은 안다. 가족이 아닌 누군가가 대신해주지 않는 일,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이라는 걸. 그리고 ‘돌봐야 한다’는 생각할 틈도 없이 아픈 이에게 밥으로 사랑을 전하는 일이라는 것을 말이다.      


죽음은 다가오고 있지만 정확히 언제 닥칠지 예측되지 않고, 보호자는 죽음을 외면하고 싶지만 떠올릴 수밖에 없어 고통스럽다. 병원에선 으레 ‘마음의 준비’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결코 준비되지 않는 것이 마음이다. ‘아내를 간호하면서 힘든 하루하루를 누군에겐가 털어놓고 싶었다. 아무리 슬픈 이야기라도 글로 쓰면 위로가 되었다’던 작가는 아내 곁에 있던 시간들을 기록한다.      


‘암 투병이라는 끝이 없어 보이는 고통의 가시밭길을 헤쳐가면서 드물게 찾아오는 짧은 기쁨의 순간을 길게 늘이고 싶었다.’ 


극한의 상황이지만 늘 암흑은 아니었다. 마약성 진통제로도 통증이 잡히지 않아 괴로운 날도 있지만, 어느 날엔 아프지 않아서 병이 다 나을 것만 같은 희망이 생길 때도 있다. 그날은 햇살이 좋았고 가족들은 서로를 마주보며 웃었다. 작가는 그 순간이 영원하길 바랐다. ‘짧은 기쁨의 순간’들이 있었기에 힘든 시간들을 버텨냈다. 모처럼 아내가 밥을 많이 먹은 날, 기분 좋을 때도 ‘입맛이 없어 밥상에서 늘 제사를 지내던 사람이 맛있게 먹었다. 두 그릇씩이나.’처럼 과장하지 않고, 짧고 간결한 문장들로 담았다. 요리법 위주로 풀어낸 글에서, 꾹꾹 눌러 담은 슬픔과 기쁨을 읽었다. 그래서 강창래 작가의 글을 읽는 것 자체가 위로였다.       




이 글은 2019년 7월 중순에 썼다. 엄마가 세상을 떠난 지 한 달도 되지 않았던 때였다. 솔직히 책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을 때였다. 그때, 한 출판사에서 채용공고가 떴다. 다른 출판사였다면 그냥 지나쳤을텐데 그 출판사의 그 팀은 꼭 지원해보고 싶었다.      


마음을 추스르고 자기소개서를 썼다. 서평 에세이도 내야 했다. 엄마 병간호로 써놓은 서평 에세이가 있을 리 없었다. 그래도 새로 읽은 책으로 글을 짓고 싶었다. 그때 읽은 책이 강창래의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였다. 이 책은 다시 읽는다고 해도 슬플 책이다. 당시 나는 이 책이 더 슬프게 다가왔는데, 책에 나오는 일화와 감정들이 구구절절 내 이야기인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이 당시, 서평 에세이에 글에 나의 이야기를 쓰는 것도 쉽지 않았다. 주저했다. 내가 왜 이 책을 그때 읽었고, 그 감상을 써내야만 했는지는 지금 생각하면 이해가 간다. 하지만 아쉽게도 지원서에 맞는 글은 아니었던 것 같다. 글이라는 것도 그 상황에 맞는 게 필요한 법이니까. 다시 읽어보니 책에 대한 이야기보다도 나의 이야기가 더 강하다. 서평+에세이면 그 균형이 적당히 맞아야 하는데.      


그럼에도 전해지는 건, 책을 경유해서라도 내 이야기를 적어두고, 전하고 싶었던 그 마음이다.    

   

며칠전부터는 『새벽 세 시의 몸들에게-질병, 돌봄, 노년에 대한 다른 이야기』(김영옥․메이․이지은․전희경, 봄날의 책, 2020) 라는 책을 읽고 있다. 이번주 수요일에 이 책을 알게 됐다. 이 책을 낸 봄날의 책 편집자분이 니은서점에 오셔서 이 책을 전해주고 가셨다. 일하면서 조금씩 읽기 시작했었는데, 또 그 생각이 들었다. ‘와, 나도 이 생각했는데...’ 문장들에 줄을 긋고, 포스트잇을 붙여가고 있다. 아픈 엄마와 함께하지 못 했던 시간, 함께했던 시간, 그 이후의 시간 모두. 아직 내 머릿속에만 있는 것들이 가득하다.      


조만간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이 책을 통해서, 나는 또 내 이야기를 써내려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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