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쎗쎗쎗, 서로의 데드라인이 되어'(이하 '쎗쎗쎗')는 꼭 세 살씩 차이 나는 세 사람이 글쓰기 모임에서 만나 인연을 이어가면서 함께 데드라인을 정하고 쓴 글들을 엮은 책이다. 제목 그대로 서로의 데드라인이 되어주었던 인연이 공동작가로까지 이어졌다. 배서운, 구슬, 도티끌 세 작가의 글에서 글쓰기의 일상성과 글쓰기만의 힘을 긍정하는 문구가 곳곳에 등장하는 건 이 때문이다. 세 사람의 개성 넘치는 에세이를 읽어나가면서 종이를 넘기면, 세 사람이 단톡방에서 글을 공유하고 나눈 감상들이 부록처럼 실려 있다. 또 책의 마지막에는 '쎗쎗쎗' 활동 시간을 정리하며 서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답하는 ‘안물안궁 인터뷰’가 담겼다.
“예전에는 다른 사람들이 ‘쓰다 보니 하고 싶은 말이 생겼다’ 이런 말 하면 뭔 에어컨 실외기에 앉은 비둘기 우는 소린가 했는데 실제로 경험을 하니까 글쓰기의 효험을 믿게 되었어요. 게으르지만 계속 글쓰기를 하는 원동력을 만들어야 한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그 원동력을 쎗쎗쎗에서 찾을 수 있었지요. 저희에게 이 책은 끝맺음의 의미가 아니라 ‘이 봐라, 얼마나 좋으냐. 앞으로도 열심히 하면 더 좋아진다’라는 의미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배 작가는 '쎗쎗쎗' 활동을 회상하며 이같이 말했다. 세 작가가 각자 쓰고 싶은 글을 써 내려갔지만 어쩐지 끈끈하게 느껴지는 이유이다. "쎗쎗쎗" 입으로 소리를 내 말하고 싶어지는 경쾌한 단어처럼, 글을 쓰자는 약속과 개성 있는 문장, 그리고 감상을 핑계로 하는 칭찬 세례들이 만들어내는 리듬이 이토록 가볍고 정답다.
구슬 작가는 어머니의 암 치료기에 관한 에세이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에서 어머니를 허벅지에 베개삼아 뉘이고 "앞으로 어떻게 치료를 해야 할지 엄마랑 이야기를 나눴"던 풍경에 대해 묘사한다. "막연하고도 불안했다. 우리 마음과는 다르게 햇살은 참 좋았다." 구 작가는 안타깝고 소중한 사람과 같은 공간에서 있으면서 느끼는 감정을 담담하게 기록한다. 그래서 허벅지를 베고 모녀가 서로 포갠 모습이 더욱 더 아련하게 다가온다. 어머니와의 시간을 기억하기 위해서 사진을 찍듯 써 내려간 문장들은 구 작가가 글을 쓰고자 하는 동기와 맞닿아 있다. 작가는 이어지는 에세이 '그 이후, 블로그와 SNS 기록들'에서 "기억하고 싶어서 엄마와 함께하는 순간들을 자주 기록했다. 집에서든 밖에서든 순간순간 사진을 찍고 노트북에 쓰고 블로그에 메모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 기록들로 글을 써볼 생각"이었다는 구 작가는 마침내 '쎗쎗쎗'을 냈고 다음 책을 쓸 요량이라고 한다.
구 작가에게 어머니 간병에 대한 글쓰기는 화자이자 청자가 되는 과정이다. 그림 같은 묘사와 뒤이은 독백은 구 작가에게 어머니를 향한 애틋한 감정을 나눌 사람이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는 글에서 자신이 외동이라고 밝히고 있는데 "지나친 무거움을 전하는 게 미안"해서 "늘 형제자매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단다. “지금 엄마에 대한 나의 걱정과 불안함은 나만 쓸 수 있는 거다. 일단 써내야겠다. 그래야 살 것 같다.” 구 작가는 글쓰기를 통해 흔들리는 삶에 대한 회복 가능성을 찾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톡톡 튀지만 인간 본성을 찌르는 배 작가는 '엘리베이터 거울 속의 나와 내 머릿속의 호랑이 또는 하이에나'에서 아파트 이웃들과 마주치면 공연히 시시콜콜하고 무례한 대화를 나누게 되는 순간을 포착한다. 재치 있고 날카로운 문장들에서 인간에 대한 서늘한 관찰이 돋보인다.
“엘리베이터에선 아침에 젖은 머리로 신발을 구겨 신고 나올 때는 “회사 가니?”하고, 초저녁에 백팩 메고 후줄근하게 나가면 “학원 가니?” 한다. 집에 들어올 때는 “넌 요즘 뭐하니?”라는 질문을 보통 한다.”(p.46)
“한동안은 내가 여기저기 다니며 모르겠다고 말하고 다니는 기계인가 생각하기도 했다. (...) 모른다고 해도 사람들은 나의 혼란과 피로를 내숭으로 착각하고 “에이~ 그러지 말고”하며 끝끝내 물어온다”(p.47)
따뜻하고 솔직한 문장이 돋보이는 도 작가는 ‘일탈의 기억’에서 아주 어린 시절, 친구와 채 마르지 않은 시멘트 위를 달렸던 경험에 대해 털어놓는다.
“두리번두리번. 아무도 없었다. 이때다! 약간 폭신할 정도로 물컹한 시멘트 위를 잽싸게 달렸다. 신발이 더러워지든 말든 상관치 않고 후다닥 신나게 뛰어 이윽고 딱딱한 길에 닿았다. (...) 저 발자국이 내 발자국이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지만 그 길을 걸을 때마다 저건 바로 내 발자국이지, 하고 속으로 뿌듯해했다.”(p.106~107)
도 작가는 한 자릿수 나이 때의 ‘시멘트 발자국’ 일탈에 이어 곧바로 10대의 일탈을 회상하며 억압당했던 기억을 떠올린다. 야간자율학습을 빠지고 인근 대학 축제에 놀러 갔다는 이유로 뺨을 맞는 체벌을 당했던 기억을 묘사하며 “야자를 하루 빠진 게 이렇게까지 맞을 일인지, 맞으면서도 의아했다.”고 쓰고 있다. 뺨을 맞은 도 작가와 친구들에게 위안의 말을 건넸던 젊은 선생님이 있었는데 “어른이 우리 입장을 이해해준다는 것 자체로도 위안이 됐다. 선생이라고 다 같은 선생이 아니고 어른이라고 다 같은 어른이 아니라는 걸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고 했다. 김보라 감독의 <벌새>(2019) 속 영지 선생님(김새벽 분)과 같은 존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의 일생에서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도 작가의 문장에서 그때 위안을 준 선생님에 대한 고마움이 읽는 이에게까지 고스란히 전달된다.
덧1. 독립출판물 <쎗쎗쎗>은 독립책방 이후북스, gaga77page, 헬로인디북스, 스토리지북앤필름, 다시서점, 노말에이, 책방비엥, 책방이웃, 니은서점, 올오어낫싱(이상 서울), 오키로북스(부천), 코너스툴(동두천), 서점안착(인천), 온다책방(충주), 에이커북스토어(전주), 북그러움(부산), 마이유니버스(부산), 페브레로(김해), 라바북스(제주), 나이롱(제주)에서만 구매할 수 있습니다. 온라인에서는 오혜와 파라그래프 홈페이지에서 구매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