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선 작가를 좋아한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도서관 사서 실무>를 통해 작가의 글을 처음 접했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도서관 사서 실무>에서는 강민선 작가가 사서로 일하기까지의 과정과 사서로 일하면서 느꼈던 점들이 매우 생생하면서도 담담하게 쓰여있다. 조곤조곤 낮은 목소리로. 그러나 할 말은 다 하는 느낌. 도서관의 불합리한 점에 대해서도 분명히 말하는 지점들이 많다. 그 태도가 멋졌다. 그러기 쉽지 않다는 걸 아니까. 태도도 멋지지만, 글이 좋다. 술술 읽힌다. 활발하게 책을 만들어가고 있다. 성실하게 글을 써내는 작가다.
이번 글에서는 그의 글이 담긴 <도서관의 말들>을 소개하려고 한다. 이 책은 독립출판물은 아니다. 유유 출판사에서 나온 ‘말들’ 시리즈 중 하나다. 왼쪽 페이지에는 도서관에 대한 문장이 있고, 오른쪽 페이지에는 그 문장과 관련된 작가의 글이 쓰여져 있다. 이 책에는 도서관에 대한 100가지 문장들이 있다.
<도서관의 말들>에는 강민선 작가의 삶 이야기가 펼쳐진다. 강민선 작가는 문예창작을 전공했고, 20대부터 30대 초반 시절, 등단을 준비하며 소설을 써나갔다. 물론 아르바이트도 하면서. 글을 써야할 땐 언제나 도서관으로 향했다. 도서관은 그가 갈 수 있는 곳이었다. 작가는 이 시기를 떠올리며 ‘희망찬 불안’, ‘불안한 희망’이라고 표현하는데, 나 또한 그런 시기가 있었기에 공감이 갈 수밖에 없다. 도서관 사서로 일하던 지난 시간 이야기도 있다, 사서를 그만둔 이후에는 도서관 이용자로서 느낀 점들, 독립출판을 시작하며 꾸준히 글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도 있다.
’직장 동료와 선후배, 관장과 이사장이 좋아할 만한 이야기를 썼다면, 도서관의 이름을 부끄럽지 않게 할 이야기를 썼다면. 하지만 그런 글이라면 굳이 내가 써야 할 필요가 없었다. 도서관의 좋은 면을 보여 주는 책은 이미 많으니까. 나는 비밀을 지키기보다 알리는 쪽을 선택했다.'(p.45)
책을 읽은 독자가 본인의 경험을 떠올리게 만드는 책을 좋아한다. <도서관의 말들>은 그런 책이다. 도서관에 대한 추억이나 경험, 생각들이 끊임없이 떠올랐다. 사서로 일을 했던 것은 아니지만, 나도 도서관을 자주 다니는 사람이고, 도서관을 좋아한다. 책을 좋아하다보니 동네책방도 좋아하지만, 그만큼이나 도서관을 사랑한다. 도서관이라는 공간은 책방과는 다르다.
잠시, 도서관에 대한 내 기억을 떠올려보자면, 중학생 때는 독서 동아리 도서관 일을 했고, 대학생 때도 국가근로장학생으로 도서관에서 2년 동안 일을 했었다. 데스크에 앉아 책 정보를 입력하고 서가를 정리했다. 책을 빌려가는 일을 도와주고, 책을 찾는 일도. 도서관에 들어온 신간 중에서 읽고픈 책들을 발견하고 적어두기도 했는데 읽고싶은 책을 희망도서로 신청했다. 내겐 그 책들을 살 돈이 없었고, 읽고는 싶었으니까. 희망도서 신청하면 신청자에게 먼저 빌릴 권한이 있었다. 다 읽어내지도 못 할 거면서 신청했다. 꼭 내가 안 읽더라도, 다른 학생들이 이 책을 좋아하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그렇게 도서관을 좋아하던 나인데... 지난해에 이맘땐 시험 준비로 6개월 째 거의 매일 도서관을 다녔었다. 도서관이 아니면 갈 곳이 없던 시기. 여러 도서관들을 번갈아 다녔다. 반복되는 루틴에서 조금이나마 변화를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마포중앙도서관, 마포하늘도서관, 은평구립도서관, 구산동도서관마을, 내를건너서숲으로 도서관, 이진아도서관, 남산 도서관 등등... 도서관마다 강점이 달랐다. 아쉬운 점도 천차만별. 특색들을 잘 파악하면서, 그날그날 내가 필요하거나 끌리는 곳으로 갔다.
그때 도서관을 다니면서, 생각했다. ‘도서관이 없었다면 나는 어디서 이 시간들을 보내야할까?’. 그리고 이 수많은 사람들은? 회사를 다니지 않는 것 같은 50~60대 아저씨들, 공무원 준비하는 것으로 유추되는 2030대, 시험 준비하는 중고등학생들, 프리랜서 작업하는 사람들 등이 많이 보였다. 나도 그렇고, 이들 모두 도서관이란 곳이 없었다면? 아마 돈을 주고 사설 독서실을 가거나 북카페 등을 전전했을 거다. 하루하루를 보낼 공간이 필요하니까. 돈이 없으면 다른 공공 공간을 헤매야 한다.
‘도서관은 세상을 보는 창이고 세상으로 나가는 문이다. 이 모든 것을 어떤 이는 손가락 하나로 앉은 자리에서 뚝딱할 수 있지만, 이 세상에는 그런 삶이 있는지조차 모르고 사는 사람이 더 많다. 도서관은 세상 모든 사람의 균등한 기회이자 기반이다. 이것이 이 불균등한 세상에서 도서관을 더 많이 짓고 더 많이 알려야 하는 이유이다.’ (p.97)
도서관에서는 다양한 일들을 할 수 있다. 책을 읽고, 빌리고, 공부하고, 노트북 작업하고, 신문이나 잡지를 맘껏 읽고, 컴퓨터실의 컴퓨터를 사용하고, 인쇄나 스캔을 할 수 있다.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서 시간을 때울 수도 있다. 구내식당이나 매점에서 밥을 먹을 수도 있고, 간단히 화장실에 들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이 모든 게, 무료라는 점. 도서관은 공적인 공간이다.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 시간은 있어도 자신만의 공간이 부족한 사람들. 무엇보다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 사람들에게. 도서관은 단순히 책을 읽는 공간만이 아닌 것이다. 도서관이 지금보다는 더 많이 생기고, 더 다양해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더 많은 이들이 ‘자기만의 방’은 아닐지라도, 도서관이라는 공간에서 자기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도서관의 말들> 후반부에 나오는 문단을 인용하면서 마무리하고 싶다.
‘나는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도서관이 좋으니 거기 가 보라고 말할 생각은 없다. 세상에는 도서관보다 더 좋은 곳이 많을 테니까. 도서관에 모든 게 있다고 말할 수도 없다. 찾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뿐더러 온종일 찾아도 아무것도 얻지 못했던 때가 내게도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암흑의 한가운데를 비행 중인 사람에게 언제부터 시작했는지, 어디까지 이어질지 모를 그 여행을 위한 임시 정차 구역이 있다는 것만 알려 주고 싶다. 거기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지만 무언가가 하고 싶어질 수도 있다고.’ (171)
마지막 문장을 읽으면서는 뭉클했다. 암흑에 있는 사람에게 그 임시 구역이라는 공간 그리고 이 말 한 마디는 큰 힘이 되니까. 지금의 나에게도. 그리고 과거의 강민선 작가에게도 그랬듯이.
이제는 곧 봄이다. 꼭 봄이라는 날씨와는 상관없더라도, 3월은 무언가 시작하고 싶은 마음들이 일어날 시기다. 이럴 때 <도서관의 말들>을 읽다보면 무언가가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수 있다.집 근처 도서관으로 한 번 가보고 싶어질 수도 있다.
책을 사랑하고, 도서관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이 책을 읽으며 자신만의 도서관 이야기를 한 번 떠올려보고 써나가는 건 어떨까?
혹여나 도서관을 잘 이용하지 않는 사람일지라도, 단단한 글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도서관의 말들>은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믿고보는 작가 리스트가 한 명 더 추가될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