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세 시의 몸들에게>(메이(엮은이) 김영옥 이지은 전희경 지음)
아픈 몸, 돌보는 몸에 대해 말하는 <새벽 세 시의 몸들에게>
최근 몇 주 동안 책을 추천할 일이 있을 때마다 이 책을 언급했다. <새벽 세 시의 몸들에게>(메이(엮은이) 김영옥 이지은 전희경 지음, 봄날의 책, 2020) .(이 책밖에 안 읽은 거냐는 질문을 받을 수도 있지만, 그런 건 아니다.) 많이 인상적이었고, 신간이니만큼 빨리 더 많이 알려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벽 세 시의 몸들에게>는 나이 듦, 질병, 돌봄, 죽음 등을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고민하는 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의 연구활동가들이 펴낸 책이다. 4명의 글쓴이는 병명은 다르지만 모두 ‘아픈 몸’으로 살았거나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다.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에게 새벽 세 시는 어떤 시간일까? 자다가 뒤척여서 눈을 뜨는 시간일 수도, 재밌는 넷플릭스 콘텐츠를 보는 시간일 수도, 친구들과 놀다가 막차 끊겨서 24시간 카페에서 이야기 나눌 시간일 수도, 불면의 밤을 보내고 있는 시간일 수도 있다. 그런데 몸이 아픈 사람들에게는 이 시간은 통증에 시달리는 시간이다. 낮의 통증보다도 더 아프고 괴롭고 외로운 시간. 그 사람의 곁을 지키는 보호자에게도 얼른 아침이 밝아오길 바라는 어둡고 고독한 시간이다. 이 책에선 ‘아픈 몸’과 ‘돌보는 몸’들을 중심에 둔 글 6편이 담겨 있다. 그동안 사람들이 관심을 두지 않은, 외면하려고 한 고통과 질병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가장 인상 깊었던 ‘보호자’에 대한 글
2주 전 브런치 매거진에 올렸던 ‘읽고, 위로받으며’ 글을 읽은 분이라면 알 수 있지만 아픈 엄마의 보호자로서 지내왔다. 2011년 엄마가 암을 진단받았을 때부터. 치료받으러 병원을 자주 다닐 때도, 자주 다니지 않을 때도. 마지막까지 엄마의 보호자는 나였다. 아빠가 있었지만, 엄마의 주 보호자는 나였다. 이 책에서도 전희경 활동가의 ‘보호자라는 자리: 돌보는 사람의 위치와 경험을 사유하기’라는 글이 가장 마음에 와닿았다.
전희경 활동가는 아픈 사람도 살아있는 인간이고 고유한 관계와 소망을 지닌 존재라고 강조한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아픈 사람은 통계상의 숫자나 CT 결과지 속의 그래프로 취급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나 대형병원에서는 환자는 그저 번호일 뿐이다. 전 활동가는 아픈 사람이 고유한 살아있는 존재라는 걸 알 수 있고 또 알고자 하고 함께 지켜가려는 이가 ‘보호자’라는 자리라고 말한다. 그래서 보호자는 ‘환자의 증인’이라고 한다. 이 부분에서 마음이 찡했다. 환자도 보호자의 증인이고, 보호자도 환자의 증인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유일한 증인. 정말 경험을 해 본 사람만이 쓸 수 있는 문장이구나, 생각했다.
그의 글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문단은 바로 다음 두 문단이다.
‘보호자의 자리에서 겪는 수많은 어려움과 괴로움들을 ‘그래도 소중한 경험이었다’라고 너무 빨리 봉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토로’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토론’이다. 누군가의 토로를 수신하고 돌보는 사람의 곁에 다가서고, 경청하고 이해할 수 있는 사회적 문해력이 문제다. 우리에게는 “그래도 환자가 제일 힘들지”라는 비교급의 언어가 아닌 다른 언어가 필요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남들은 모르는 둘만의 밀실에서 미칠 것 같은 상황을 살고 있는 이들이 있다. 이 밀실에 비상구를 만들어야 하고, 그 비상구 밖에 누군가 서 있어야 한다. 치열하고 힘겨울수록 더 고립되기 쉬운 돌봄의 국면을 견딜 수 있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우리 둘만이 아닌’ 누군가 다른 사람이 알고 있다는 사실, 누군가 가까이 있다는 실감이다.’
정말이지, 환자의 죽음으로 병 간호하는 일이 끝나는 경우엔 아마도 대부분의 보호자들이 ‘그래도 소중한 경험이었다’고 봉합해버리거나 토로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이제 끝났지 않느냐고. 힘들었던 이야기는 그만하라고. 앞으로는 조금씩이라도, 사회에서 그들의 이야기가 더 많이많이 울려퍼지면 좋겠다. 이 책에서는 아픈 사람의 경험에 대한 사회적 문해력, 돌본 사람의 경험에 대한 사회적 문해력이 높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기 위해서 ‘시민적 돌봄’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단순한 ‘고통 분담’이 아니라 보편적 시민으로서 ‘우리 모두의 일’로 감각하고, 사회정책에까지 반영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전희경 활동가의 말처럼 ‘혼자 알아서 하는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인간은 없다. 우리는 언제나 서로의 짐이고, 또한 힘’이기 때문이다. 언제쯤 문해력이 높아져서 정책까지 제대로 반영될 수 있을까.
글을 마치며
누군가는 ‘난 아직 젊고, 아프지도 않고, 돌볼 사람도 없는데 ‘굳이 왜’ 이런 책을 읽어야 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누구나 언젠가는 나이가 든다. 나이가 들다 보면 사소하게라도 병을 앓게 되고, 누군가를 돌보는 경험을 할 수도 있다. 자신이 아닐지라도 주위에 이런 상황에 처한 사람이 1명쯤은 있을 것이다. 그 사람들에 대한 문해력을 키워갈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아마도 책을 읽고 나면 섣부른 단정과 위로를 하는 사람은 피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을 엮은 메이 작가는 지금 아픈 이들, 아픈 사람을 돌보는 이들, 나이 들어가며 혹은 나이 들어가는 가까운 이를 보며 불안하고 겁나는 이들 이 책이 약상자였으면 한다고 했다. 근데 내게 이 책이 약상자 역할을 충분히 했다.
이제껏 인상 깊게 읽은 책은 삶과 연관이 있는 경우가 많다. 읽으며 공감하고, 다시금 경험을 언어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이번 책도 그렇다. 아픈 사람의 이야기, 부모에 대한 상실의 슬픔을 쓴 이야기, 보호자의 이야기 등을 읽으면 일부러 찾아서 읽었다. 읽으면 슬프고, 눈물이 나는데, 그게 상처를 후벼 파는 건 아니었다. 상처가 더 제대로 곪을 수 있도록 약을 발라주는 느낌. 누군가의 추천이 없어도, 그런 책은 나에게 다가온다. 다가오면 허겁지겁 읽곤 했다. 그런데 이 책이 정말 필요한 상황인데, 책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면 얼른 손에 쥐여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이 시간에도 밀실에서 힘들어하고 있을 사람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지금 보호자라서 이 책을 읽을 시간이 안 될 지라도, 훗날에라도 읽으며 공감과 힘을 받기를. 당신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귀 기울여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았으면 한다.
- 이 책에는 총 6편의 글이 있습니다. 이번 브런치 글에서는 2번 글에 대해서만 썼는데요, 다른 글도 무척이나 좋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다음에는 다른 글에 대해서도 글을 써보려 합니다. (연달아 다음 글은 아닐 것 같아요. 지난번 글과 이번 글의 내용 결이 비슷하죠. 다음번엔 조금 더 다른 주제로 돌아올게요!)
1. 시민으로서 돌보고 돌봄 받기 (전희경)
2. ‘보호자’라는 자리 (전희경
3. ‘병자 클럽’의 독서 (메이)
4. 젊고 아픈 사람의 시간 (전희경)
5. 치매, 어떻게 준비하고 있습니까? (이지은)
6. 시간과 노니는 몸들의 인생 이야기 (김영옥)
- 갑자기 홍보. [도서관 메이트에서 쓰기 메이트까지]를 함께하는 두 사람이 팟캐스트를 시작했습니다. 콘텐츠 리뷰 팟캐스트이고, 제목은 <아랫집윗집 여자, 리뷰합니다>입니다.
2월 20일에 0회가 업로드됐어요.
0회 - 무엇이든 우리가 보고 들은 것들을 리뷰합니다
1회 - 스크루볼 코미디를 현대적으로 결합한 <결혼 이야기>
2회 - 80대의 일과 사랑 그리고 찐우정 <그레이스 앤 프랭키>
3회 - 일터는 왜 조금 더 너그러워질 수 없는 걸까 : 천주희 <회사가 괜찮으면 누가 퇴사해> + 장류진 <일의 기쁨과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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