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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동미 Apr 05. 2020

K-좀비가 드러내는 모순

넷플릭스 오리지널 <킹덤>, 시즌2를 중심으로

시대적 모순과 맞부딪히는 인물들을 통해서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발견하는 것이 사극을 보는 가장 큰 기쁨이다. 사극은 시대가 가진 사회의 관계망 속에서 인물들이 어떤 윤리적 판단을 내릴 것인가를 바탕으로 한다. 좀비 장르물은 그보다 원초적인 감정을 자극한다. 살해 장면을 자세히 묘사하면서도 그에 대한 면죄부로 좀비를 인간 이하의 무언가로 설정한다. 좀비들은 인간 형상을 하고 있지만 인간이라고 말할 수 없는 낮은 수준의 지능과 의사표현, 욕구만 추구하는 몸짓을 한다. 죄책감을 거세한 채 폭력성을 탐닉하는 장르인 셈이다. ‘사극과 좀비 장르를 섞는다면?’이란 발상에서 탄생한 드라마가 있다. 바로 ‘K-좀비’란 별명이 붙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킹덤>이다.


임진왜란을 겪은 조선. 가난과 기근이 심각한 문제로 떠올랐다. 왕은 가사 상태에 빠졌으며, 외척인 해원 조씨 가문의 탐욕이 하늘을 찌를 듯하고 백성들은 곤궁에 처해있다. 죽은 자가 깨어나 사람들을 공격하는 역병인 생사역이 조선 땅에서 발현된다. <킹덤>의 첫 시작은 나라의 가장 큰 어른인 왕이 생사역에 걸려 포효하는 장면이다.(사극이 시간 순대로 진행될 것이라 생각하는 건 편견이다. 사극의 원전이라 말할 수 있는 <일리아스>도 아킬레스와 아가멤논이 팽팽하게 맞서는 순간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자, 이제 좀비에 대한 조선식의 서사가 만들어졌다. 시즌1은 세자 이창(주지훈)이 호위무사 무영(김상호)과 의녀 서비(배두나)와 함께 생사역이 퍼지는 걸 목도하고 병의 진실을 쫓는 과정을 그린다. 그 과정 속에서 생사역보다 더 진하게 퍼져있는 양반계급의 폐해와 혈연주의, 비이성주의 등 사회의 갈등들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시즌2는 역병이 경상도를 뒤덮고 한양으로 진격하는 과정을 다룬다. 주인공 이창은 그를 막기 위해서 고군분투하면서 병역을 지휘한다.



<킹덤>은 확실히 보는 재미가 있다. 각시탈을 쓴 좀비와 의녀 좀비가 등장, 국내 시청자뿐 아니라 해외 시청자에게도 흥미로울 법한 장르적 쾌감을 준다. 그러나 이미지가 즉자적으로 재현하는 것 이상으로 <킹덤>이 시청자에게 실어 나르는 이야기가 있다면 무엇일까. 갓을 보는 것, 아름다운 한국의 자연 경관을 보는 것, 조선시대 의복을 보는 것, 양반 좀비를 보는 것을 넘어선 <킹덤>의 가치는 무엇인가. 이에 대한 답은 <킹덤>의 사극적인 가치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킹덤>이 그리는 사회적 모순 속에서 나타나는 캐릭터들의 실존은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물어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가 혼란에 빠진 세자의 마음속을 들여다봐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주인공 이창의 실존은 무엇인가. 그리고 K-좀비의 실존은 무엇인가.


병상 중인 왕을 마지막으로 진료했던 의원을 찾아서 이창은 한양에서 경상 동래로 내려간다. 거기서 백성들을 만나고 군주로 성장하는 것이 이창이 떠안는 실존적 고민이다. 군주란 무엇이며, 어떠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그에게 가장 유효하다. 이창은 분명히 성장한다. 양반, 천민 가리지 않고 동등하게 대하며, 약자를 버리지 않고 반드시 챙긴다. 그러나 현재적 관점에서 보자면 다소 평면적이다. 시즌1에서 이창보다 흥미로운 캐릭터는 안현대감(허준호)이다. 안현대감은 비교적 뾰족한 갈등 상황을 만들어내고 그에 따른 인간의 실존적 고민을 다루는 캐릭터다. 그는 리더십을 갖춘 인물로 백성들 사이에서 왕보다 명망이 두텁다. 핏줄에 따라 용상에 앉는 사람은 정해져있다고 믿는 시대적 인물로 어린 이창을 장차 나라를 이끌 군주로 대우한다. 하지만 안현대감은 조선왕조의 질서를 누구보다 충실히 따르면서도 그 허약함을 잘 알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안현대감은 권력 관계 속에서 타인을 의심하고, 스스로 의심받는 정치적 인물이며, 번뜩이는 정치적 판단으로 이창을 오판 속으로 몰아넣기도 한다. 특히 배우 허준호의 마스크가 선악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인물처럼 보여서 보는 재미가 크다.



그렇다면 좀비들의 실존은 무엇인가. 시즌1 좀비들은 확실히 시대적 모순을 드러낸다. 양반집 삼대독자 좀비는 ‘신체발부는 수지부모’여서 제대로 처리되지 못해 비극을 불러온다. 생명이 다했지만 죽음을 맞게 되면 이창에게 자리를 물려주기 때문에 좀비가 되어서라도 살아 있어야 하는 왕(미디어에 전혀 얼굴을 비추지 않는 재벌 총수에 대한 은유처럼 보이기도 한다)도 있다. 좀비는 이처럼 시대적 모순을 극렬하게 드러낸다. 그리고 정치와 경제가 파탄 난 조선에서 좀비가 등장함으로써 양반 중심 사회구조를 언제든 전복시킬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킹덤> 시즌2에서는 안현대감이나 ‘삼대독자 좀비’처럼 뾰족한 모서리가 없다. 그나마 번뜩이는 갈등은 중전(김혜준)과 아버지 조학주(류승룡)의 충돌인데, 깜짝 반전이라서 아쉽다. 아울러 사회적 모순을 가장 효과적으로 드러냈던 좀비들이 시즌2에서는 어떤 갈등도 지적하지 못하고 말그대로 덩어리로 존재해 아쉬움을 남긴다. 좀비들은 이창 군단의 화려한 액션 씬을 위해서 희생되는 카운터파트너에 그친다. 이창 무리가 도망치게 하고, 응보로 공격할 수밖에 없는 운동성을 만들어내는 역할일 따름이다. <킹덤> 시즌2는 좀비를 썰고 자르는 액션에 치중한 나머지 앞선 시즌의 매력이 덜해 아쉬움이 남는다. 좀비들이 달리고 이창 무리들이 도망하면서 칼과 활을 쓰는 모습을 앉은 자리에서 내리 볼 수밖에 없지만, “뭣이 재밌었다”고 콕 짚어 말하기 어렵다. 갈등 관계는 휘발성이 높고 시즌1에 비해서 복잡하지 않으며 생각할 거리를 많이 남기지 못한다. 훌륭한 액션과 더 훌륭한 액션이 이어지는 걸 그저 바라 보긴 했는데, 어떤 이야기도 마음에 남지는 않았다.




덧1. 개인적으로 사극 매니아입니다. 가장 최근에는 <정도전>을 열렬히 좋아했었습니다. 지금은 주연 배우 때문에 작품의 가치가 많이 훼손된 작품이 됐지만요.


덧2. 생각해보면 사극은 언제나 텔레비전의 몫이었습니다. 소위 ‘정통사극’은 언제나 텔레비전의 것이었습니다. 1964년 KBS에서 낙랑공주와 호동왕자의 전설을 바탕으로 한 텔레비전 최초의 역사극 <국토만리>에서부터 시작해서 텔레비전 방송사들이 앞 다투어 제작했고 대부분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때 주도권을 뺏긴 영화계는 방송에 허용될 수 없는 에로티시즘에 집중했고요. 그리하여 1970년대 영화계의 역사극은 중고등학생 단체관람을 목적으로 한 ‘국책영화’와 하위 장르로 굳어진 ‘에로티시즘 사극’으로 양분됐습니다. 그 사이 텔레비전 사극은 진일보하여 1980년대에는 MBC에서 <조선왕조 500년>(1983-1990)이 방영되었고 멜로드라마 요소를 배제한 정통역사극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용의 눈물>(1996-1998)의 성공과 잇따른 KBS 대하사극들의 성공(<왕과 비>(1999-2000), <태조 왕건>(2000-2002), <불멸의 이순신>(2004-2005))은 2000년대 중반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정도전>(2014)때 반짝하더니 예전처럼 새해마다 사극이 만들어지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2016년 이후 명맥이 끊긴 대하 사극이 다시 부활했으면 좋겠네요. 사극이 인기를 얻는 대선 즈음에는 그래도 재개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요.


덧3. <킹덤>에서 시각적으로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한 대상은 바위였습니다. 한국의 바위들이 이렇게 예뻤다니. 서비가 생사초를 발견하는 비둘기낭폭포와 안현대감이 바위 밑에 숨어있는 어린 창을 찾아내서 꼭 껴안을 때 등장하는 아마빛 바위가 무척 아름다웠습니다. 그리고 훈련대장(김태훈)이 결심한 듯 병상일지를 품속에서 꺼내는 장면에서 후경에 자리한 푸른 바위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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