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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보라 May 02. 2020

책방에서 일하는 날

일하며 내가 더 채워지는 것 같다  


수요일이 되면 설렌다. 책방에서 일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드디어! 일주일에 하루만 일하기 때문에 6일을 기다리고 수요일을 맞이한다. 2시부터 8시까지. 미리 가서 여유를 부리는 게 좋아서 조금 더 일찍 출발한다. 20분 정도 버스를 타고, 내려서 골목을 걷는다. 처음 오는 사람이라면 ‘생각보다 많이 걷는데? 얼마나 더 가야하는 거야?’라고 생각할 때쯤 책방이 나타난다. 열쇠로 먼저 문을 열고, 카드키로 연다. “보안이~ 해제 되었습니다~”라는 소리와 함께 문을 밀고 들어간다. 책방 특유의 향이 난다. 불을 켜고 가방을 내려놓고 컴퓨터를 켠다.       


컴퓨터가 켜지는 동안 할 일이 있다. 바로 입간판 바깥으로 내놓기. 입간판 2개를 가게 앞에 놓는다. 작은 초록색 간판엔 서점 이름과 운영 시간, 인스타그램과 메일 주소가 적혀 있다. 옆에는 꼭 초록색 화분을 놓아둔다. (꽤 싱그러워 보이지만 조화다!). 커다란 입간판도 내놓아야 한다. “안녕하세요 니은서점입니다! 편하게 책 구경하세요. 모든 책은 10% 할인. 단, 북토크 시 예외) 원하시는 책 주문도 받습니다.”       


다시 안으로 들어와서는 커피머신으로 간다. 수요일은 커피머신 청소하는 날. 얼른 커피를 마시고 싶은 마음이 한 가득이다. 커피 찌꺼기를 버리고 통을 씻고 다시 새로운 물을 채워 넣으면 완료! 스위치를 누르고 에열을 기다린다. 찌꺼기가 든 물이 한 번 나오고 나면 드디어, 커피가 나오는 시간. 버튼을 누르는 내 손길이 살짝 다급하다. 내리는 시간이 길게 느껴진다. 집에서 커피를 마시고 가더라도, 더 진한 커피를 마셔야만 일을 시작할 수 있다. 이젠 커피 없이는 일할 수 없나보다.       


그때쯤엔 컴퓨터가 켜진다. 로그인하고~ 각종 스프레드시트들을 연다. 아! 사진을 찍어야 한다. SNS에 오픈 공지 올릴 때 쓸 사진이 필요하다. 주로 책방 안에서는 그날 들어온 책을 찍는다. 날씨가 좋을 땐 밖에서 찍는다. 햇살에 쨍하게 보이는 초록색 간판이 예쁘다. 오늘도 손님들이 많이 오길 바라며 오픈을 알린다. 아직 컴퓨터에 앉을 수는 없다. 택배함을 잊으면 안 된다. 수요일은 평일 중 첫 오픈일이니까 도착한 책들이 많다. 박스들을 책상 옆으로 옮겨두고, 하나씩 열어본다. 지난주에 팔려서 다시 들어온 책~ 새로 입고된 신간~ 손님이 주문한 책 등등.       


이제야 의자에 앉아본다. 본격적으로 책 정보를 스프레드시트에 입력할 할 시간이다. 이 작업이 가장 오래 걸린다. 책 제목과 출판사, 지은이, 권수, 정가, 판매가, 출고가 등을 입력한다. 이렇게 입력하면 그 책을 팔았을 때의 이윤이 가장 오른쪽 칸에 나온다. 아! 책은 다른 상품들에 비해서 정말 마진이 잘 나오지 않는 상품이라고 하는데... 정말 적긴 적다. (대체 하루에 몇 권을 팔아야하는 것인가!)      


책 정리를 다 끝내면 조금 한숨 돌린다. 바깥 풍경도 눈에 들어온다. 컴퓨터 자리에 앉아서 바깥을 바라보다보면 동네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게 보인다. 입간판을 쓱 보며 지나가곤 한다. 그러다 나와 눈이 마주치기도 한다. 슬며시 웃는다. 들어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어쩌다 한 명씩은 들어온다! “여기가 뭐하는 데유~?” (손님들이 다 사투리를 쓰는 건 아닌데... 뭔가 이런 어르신들이 많았다.) 여기서 책을 한번이라도 산다면 단골이 될 수도 있을 텐데, 라는 생각에 최대한 친절하게 설명한다.         


지금 일하고 있는 책방에서 일한 지 세 달하고도 2주가 지났다. 그 전에는 다른 책방에서 두 달 정도 일했었다. 책방 일을 경험한 지 여섯 달째다. 이렇게 세어보기 전에는 몰랐는데, 그럼 벌써 반 년 째다.     


처음 책을 팔았던 건 지난해 9월말에 열렸던 퍼블리셔스테이블에서였다. 책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고, 계산을 하고, 안녕히 가세요~ 라며 인사하는 그런 과정들이 재밌었다. 신났다. 뿐만 아니라 넓은 공간(한남동 디뮤지엄)에서 책을 파는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나오는 에너지, 책을 사러온 사람들의 반짝반짝한 눈빛까지! 강렬한 경험이었다. 지나고나니 마치 꿈같았다. 이 경험을 계속 해보고 싶었다. 책을 팔려면? 책을 만들어서 이렇게 페어에 나가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좀 더 정해진 공간에서 파는 일을 해보고 싶었다. 그럼 책방! 책도 좋아하지만 사람 대하는 걸 좋아해서 적성에 맞을 듯 했다. 책 있는 공간이 주는 힘이 좋았다.      


책방 일을 하면서 가장 재밌는 건 책을 소개하는 일이다. 아담한 책방이지만, 책이 꽉꽉 차있다. 책방을 둘러보다보면 그 책장에서 책들을 꺼내주고 싶다. 그러려면 책의 존재를 일단 알려야 한다. 그래야 그 책과 맞는 사람에게 전해질 수 있다. 손님이 서점에  와서, 1. 책을 발견하고 2. 읽어보고 3. 마음에 들고 4. 구입 까지 하는 건 쉽지 않은 일임을 책방 일하면서 깨닫고 있다. 사람과 책의 만남도 정말이지 엄청난 운명...! 재밌게 읽었던 책을 SNS에 소개하고, 이후에 그 책이 팔리는 경우가 자주 있는데, 그 기쁨이 엄청나다. 아, SNS가 아니더라도 책방에서도 그런 경우들도 종종 있다. 생각해보면 이렇게 일의 효용감이 바로바로 느껴지는 일이 또 어딨을까 싶다. 


책방 일은? 할수록 재밌다. 근데 그건 내가 책방 주인이 하는 일은 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책방 월세를 내고, 책을 사는 등 책방 운영에 들어가는 제반 비용 등을 정산하거나 감당하는 자리에 있지 않다. 일주일에 하루, 책방이라는 공간에서 일들을 해나가며 경험을 해보고 있는 데 불과하다고 볼 수도 있다. 그래서 즐거운 걸 수도 있다.      


‘그래도’ 내 책방이라는 생각으로 즐겁게 하고 있다. 이것이 사업주들이 좋아한다는 주인의식인 걸까? 하하. 그렇다고 나를 갈아 넣고 있는 건 아니다. 회사 다니며 원치 않은 업무를 하거나 인간관계로 스트레스 받을 땐 소모된다는 느낌이 많았다. 지금은 일하며 오히려 내가 더 채워지는 것 같다. 더 자주 일을 해서 통장 잔고도 더 채워지면 좋을 테지만! 책방엔 다른 일하는 분들도 있기에 이를 바라진 않는다. 지금 내게 주어진 이 자리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아, 너무 교과서적으로 이어가려하고 있다.) 일단 지금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최대치를 하고 있다.      


‘책방이라는 ‘사람’이 해야 하는 것은 책과 사람을 잘 만나게 하는 것입니다. 이쪽과 저쪽에서 책의 좋음을 끄집어내어 책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고, 책과 사람을 연결하면 책을 읽는 사람은 점점 늘어날 것입니다. 저는 그런 책방이 되고 싶습니다.’      


최근에 읽은 책 <앞으로의 책방>(기타다 히로미쓰)에서 나온 구절을 인용하며 글을 마무리하고 싶었다. 책보다 재밌는 게 엄청 많지만, 책도 꽤나 재밌다는 걸 전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태재 작가의 [에세이 드라이브] 3기 3번째 글_2020년 3월 16일 작성 / 글감 '간판' 


구보라 

보고 듣고 씁니다. 

독립출판제작 그리고 책방 꿈나무입니다.      


+ 니은서점 인스타그램 @book_shop_nieun 

+ 니은서점 유튜브 계정도 있어요. 매달 니은서점에서 일하는 북텐더들이 책 1권씩을 추천합니다.

5월의 북텐더 추천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BlPPGDAN0D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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