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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보라 Jun 23. 2020

읽어줄 수 있나요?

[에세이 드라이브] 5기 2번째 글_4월 20일 작성 / 글감 '부탁'

이번주 글감인 ‘부탁’이라는 단어를 바라보며, 연필로 끄적였다. 무얼 쓸까. 그러다 번뜩 떠올랐다. 글에 대한 피드백을 부탁하는 것, 그리고 글에 대한 피드백을 부탁받는 것에 대해서 써보면 어떨까.      


1. 

떠오르는 기억은, 2018년 겨울. 퇴사하고 나서 회사에 쓰는 글이 아닌, 새로운 지면에 글을 쓰는 일이 주어졌다. ‘오글리’라는 책 리뷰 잡지 창간호에 실릴 리뷰 글이었다. 어딘가에 개인적으로 글을 기고한 경우가 거의 없었는데, 친한 친구의 친구들이 만드는 잡지였기에 감사하게도 나에게도 글 쓰는 기회가 주어졌다. 책 이야기만이 아니라 그 책을 읽은 사람이 누구인지 물씬 드러나는 글을 써달라는 내용이 담긴 청탁서를 받았다.      


책 소개 기사도 아니고, 읽은 책에 대해서 그것도 나의 이야기가 담긴 글을 쓰는 건 다소 낯설었다. 그것도 돈을 받고서! 어떤 책에 대한 글을 써야할지 고민하다가 최애 작가 중 한 명인 한승태 작가의 <인간의 조건>(시대의 창, 2013)에 대해서 썼다. 이 책은 노동 르포다. 그래서 글에는 중소기업에서 12시간씩 일하는 아빠의 노동에 대해서도, 회사에서 했던 나의 노동에 대해서도 썼다. 다 쓰고 나니, 너무 나의 이야기가 tmi 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럴 때 필요한 건? 글을 읽어줄 사람!      


대학 친구 B*, 그리고 함께 매주 1편의 글을 공유하던, 티끌님과 서운님에게 글을 보냈다. 구구절절 사연도 덧붙여서. 이런 저런 의도로 썼는데~ 이런 내용이 들어가도 괜찮은지 걱정이다, 비판도 좋으니까 가감 없이 이야기 해달라고. 그들의 피드백 덕분에 조금은 자신감 있게 글을 낼 수 있었다. 티끌님은 정성스럽게 교정 교열까지 봐주었다. 나의 안 좋은 글 습관까지도 알 수 있었다! 서운님의 피드백도 기억에 남는다. 쓴 소리 부탁했는데, 예상보다 피드백을 좋게 해주었다. (역시 칭찬 최고...)      


‘보라님이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tmi하지 않았고, 한승태 작가의 글을 책으로만 남게 하지 않고, 내 가까이 있는 사람의 생활로 살아나게 함으로써, 한승태 작가 목소리의 역량을 확장시키는 중요한 기능을 하는 것 같아요. 리뷰하신 책을 읽고 싶게 만드는 데 완벽하게 성공하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 르포 말만 자주 들었지, 르포에 들어가는 노력과 그 무게를 처음으로 이해하게 된 것 같아요.’     


리뷰한 책을 읽고 싶어졌다니, 그것만으로도 정말 기분이 좋았다. (다시 그 글을 읽어보면, 고치고 싶은 부분이 많지만 그 당시 쓸 수 있는 최선이었다고 믿는다.)      


요즘도 종종, 내가 쓴 글에 대해서 읽어달라고 친구들에게 부탁하곤 한다. 그런데 아무나에게 부탁할 수는 없다. 본인의 시간을 내서 글을 읽는다는 건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읽을 시간을 따로 내어줄 것 같은 사람들에게만 부탁하려고 한다. 그럼 빠르게 때로는 천천히 답이 오는데, 대부분 생각보다 피드백이 정성스럽다. 감동한다. 글을 읽어주는 사람이 있기에 힘을 내서 쓴다.      



2. 

최근엔 친구로부터 글을 봐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몇 달 전, 독립출판물을 내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스토리지북앤필름에서 진행하는 책 만들기 수업을 추천했다.(정작 나는 들은 적이 없지만...). 그 친구는 바로 수업을 신청하고 듣더니, 수업을 들은 지 4주 만에 가제본된 책도 만들었다. (엄청난 속도!)     


아직 완성본까지는 아니지만 페이지에 친구의 글이 가득 있었다. 그 글을 읽어달라고 부탁하는데, 심지어 자신의 주위에는 그렇게 글을 읽어줄 사람이 없다고 했다. 나에게 처음으로 피드백을 부탁하는 거라고 말했다. 앗! 글을 읽어달라고 부탁하는 건 정말이지 너무 쑥스러우면서도 어려운 일이란 걸 아니까, 그 기대에 부응해서 제대로 피드백을 하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다. 물론 중압감도 함께 들었다.      


하지만 기분도 덩달아 좋아지기는 했다. 글을 봐달라는 부탁을 받을 만큼 그래도 나에게 신뢰도가 있다는 거 아닌가? 싶어서였다. **좋은 점은 좋다고 충분히 이야기했다. 그리고 수정했으면 하는 지점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내 피드백에 부담을 느낄까봐, 꼭 나의 피드백을 다 받아들일 필요 없다는 말도 굳이 덧붙이기도 했다. 멋지고 부럽기도 하다. 나는 아직 나만의 이름으로 된 책을 낸 적은 없어서. 책이 나오면 마치 내 책이 나온 것처럼 기분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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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월요일 아침이면, 일단 눈을 뜨고 폰으로 메일함부터 확인한다. 그리고 ‘강태재’라는 이름으로 온 메일을 클릭한다. 에세이 드라이브 피드백을 보고 싶어서다. pdf를 내려 받는다. ‘안 좋은 소리 있으면 어떡하지?’ 걱정하며 파일을 누른다. 사람들의 따스한 피드백을 보고는 이내 안도한다. 글을 읽어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고맙단 생각을 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각주

* B는 이제까지 나의 글을 가장 많이 읽은 친구일 것이다. 

** (모든 건 저에게 좋은 쪽으로 생각하는 편인 것 같습니다.



-책 리뷰 매거진 <오글리 o'glee>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시다면? https://www.tumblbug.com/ogleebooks?ref=discover  / 독립책방에 입고되어 있습니다. 


- 친구가 낸 책 제목은 <여기까지가 끝인가 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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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보라 


보고 듣고 씁니다. 

좋아하는 콘텐츠를 알리는 걸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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