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드라이브] 5기 1번째 글_4월 13일 작성 / 글감 '학원'
초등학생 때 친구들과 글짓기 과외를 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글쓰기 과외가 아니라 글짓기 과외라고 불렀다.) <논리야 놀자> 이런 책도 읽고, 매주 과제를 하면 선생님이 평가했다. 썼던 글은 기억나지 않는다. 매주 다른 집에서 모일 때마다 먹었던 간식이나 풍경만 떠오른다. 그때 왜 글짓기를 했을까? 몇 년 전에 엄마에게 물어봤었는데, 엄마도 그다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했다. 아무래도, 앞으로 무슨 공부를 하든지 글쓰기가 중요하다고 하니 엄마들끼리 과외를 결성했던 것 같다.
그때 내 꿈은 작가였다! 초등학교 3학년, 4학년 무렵에. 책 읽는 데 흥미를 느끼던 시기였는데, 그래선지 자연스럽게 글 쓰는 것도 좋아했던 것 같다. 책에서 본 단어들을 구사하다보니 언어 능력이 좋은 것처럼 보였을 수도 있다. 수학은 잘 못 하는 아이였지만 글을 쓰는 건 조금 자신이 있어서 국어 시간을 좋아했다. 학교 신문에 짧은 소설을 낸 것도 기억난다. 제목은 ‘아싸의 여행’. 아싸는 빗방울의 이름이다. 빗방울이 여러군데를 다니는 흥미진진한 이야기! (이렇게 나름 창의성이 넘치는 아이였는데...)
하지만 그 이후로는 그 꿈은 사라졌다. 책을 읽다보면 아무래도 뛰어난 걸작들도 읽게 된다. 그런 ‘훌륭한 책’들을 많이 읽어선지, 점점 더 작가라는 직업은 내가 감히 꿈꿀 수 없는 영역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작가란 ‘소설을 쓰는 사람’이라고만 규정해버렸던 탓도 크다. 소설 읽는 걸 무지 좋아하지만, 그 소설처럼 멋진 글을 쓸 자신은 없었다.
그래도 책은 계속 열심히 봤다. 집안 형편이 안 좋아져서, 내가 처한 현실이 밝지만은 않을 때에도 책을 읽었다. 주로 한국 단편 소설들을 좋아해서 수상 작품집을 엄청나게 읽어댔는데, 윤성희, 전경린, 은희경, 권여선, 윤대녕, 김애란, 김영하, 박민규 등을 좋아했다. 누가보면 소설가 지망생이라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우리나라에 발붙이고 살아가는 인물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내는 모습들이 인상 깊었다. (솔직히 그런 책들을 읽으며 지적 허영심을 충족한 면이 크다는 것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다 대학에서도 글과 관련된 전공을 했다. 영상과 관련된 이론을 공부하는 과였다. 고3 때 영화에 갑작스레 책보다 영화에 푹 빠져버렸기 때문이었다. 영화평론가가 되고 싶었다. 창작을 하는 작가는 되지 못 하더라도, 영화를 비평하는 평론가는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는 그 마음도 사라졌다.
1학년 1학기 때 ‘영상문화글쓰기1’이라는 수업을 들었다. 그 두 번째 수업 때, 영화평을 평가받았다. <워낭소리>에 대해 글을 썼다. 이런 점이 재미있었고 저런 점이 의미있다고 여겨진다는 내용이 담겼다. 처음 써보는 영화 글이었다.
“구보라 씨, 고등학교에서 바로 왔죠? 이건 비평이 아니지. 독후감 수준에 불과해요.”
강사가 쏘아붙였다. 아니 그럼 대학을, 고등학교 마치고 오지! 싶었지만 할 말이 없었다. 그 과에는 대학을 마치고 온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 후 독후감스럽게 쓰지 않도록, ‘있어 보이게’ 쓰는 글을 쓰려고 했다. 비판받지 않도록. 솔직하지 않게 어려운 말로 돌려서. 그런 잔기술만 늘었다. 여튼, 영화 평론은 넘사벽 같았다. ‘더 대단한 글’을 쓰는 사람이 많은데~ 내가 영화평론가가 될 것 같지도 않았고, 되고 싶지도 않아졌다. (이렇게 영화 비평도 마음에서 안녕~)
4년 내내 주구장창 압박감 속에서 영화 글만 써오다가 졸업 논문을 쓰면서는 괜찮은 글쓰기 선생님을 만났다. 타과 강사였는데, 미디어 전반에 대한 글을 쓰는 문화연구자였다. 글에 담긴 관점에 대해서도, 무엇보다 글 자체에 대해서도 피드백을 정성스럽게 줬다. (홍성일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무사히 논문도 마저 쓸 수 있었고, 미디어에 대해서 다루는 미디어전문지에 들어갔다.
기자니까 글을 매일 썼다. 기사를 하루에 한 편 쓰는 건 아니고, 주로 여러 편을 써야했다. 실력있고 다정한 편집국장이 있을 땐 기획기사는 1주일에 1편 정도는 꼭 쓰곤 했는데, 그러면 내 시야와 실력도 늘어나는 느낌이었다. 차곡차곡 쌓아가는 기분. 그러나 그런 시기는 길지 않았다. 기획기사 보다는 단타형 기사들을 써야하는 날들이 많았다. 그렇게 쓰다보면 내 안에 쌓인 것들이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쓰는 만큼 뭔가가 채워져야 하는데 균형이 사라졌다. 무얼 쓰고 싶은지는 잘 모르겠지만, 왠지 모르게 정말 쓰고 싶은 글은 써내지 못 한다는 느낌도 커져만 갔다.
그때, 평소 좋아하던 은유 작가가 진행하는 수업을 발견했다. ‘2017 논픽션 학교’. 그 수업 덕분에 나는 내 글을 써보기 시작했다. 그럴 듯하게 보이는 평론이나, 시험용 글, 기사 이런 글이 아니라 나의 글. 수업에서 글을 낭독했다. 처음엔 부끄러워서 귀가 빨개질 것 같았지만, 그렇게 읽어나가면 다들 귀기울여줬다. 들어주고 이해해주고 감상을 공유했다. 특히 은유 작가님의 피드백은 정확하면서도 따스했다. 그래서 글 쓰는 걸 놓지 않고 꾸준히 해볼 수 있었다. 조금씩 천천히, 계속.
3년이 지난 지금도, 가장 최근에 배운 건 글쓰기다! 태재 작가님의 에세이 스탠드 수업을 1월에 들었다. 작가님이 수업 중에 ‘글을 짓는다’고 단어를 썼다. 내가 좋아하는 밥을 내가 지으면 되는 것처럼 내가 좋아하고 읽고 싶은 글을 내가 짓는 거라는 그 말이, 엄청 와 닿았다. 그래, 앞으로도 내가 읽고 싶은 글을 직접 짓는 사람이 되자! 그럼 그게 작가겠지.
아, 글을 마무리 하며 지난해 발견한 ‘나의 꿈’이 적힌 자료(?)를 가져와본다. 사진을 보니, 작가가 꿈이던 초등학교 3학년 때 쓴 걸로 추정된다.
책 읽기와 자전거를 지금도 좋아한다. 참 사람이 한결같다 싶어서 웃음이 나기도 했다. 이 자료를 보면서, “나의 꿈은 작가에요”라고 말할 수 있게 된 게 20년 만이구나, 싶다. 꿈을 이루기 위해 해야 할 일은 이 때 쓴 것과 똑같다. 책을 많이 읽고, 글짓기를 열심히 하기. 부단히 쓰고 써야지.
글의 제목을 고민하다가 ‘글 짓는 구보라’로 적었다. 왠지 어릴 때 교과서에서 읽었던 ‘독 짓는 늙은이’가 떠오른다. 그 늙은이는 잘못 지어진 독을 가차 없이 깼다. 그러나 나는 잘 지어지지 못 한 글을 깰 수는 없다. 다른 글에서라도 쓸 수 있는지 여러 번 보면서 어떻게든 살려보고 싶다. 그렇게 앞으로도 계속, 늙어서도 글을 지어보고 싶다.
구보라 / 책 읽고 글 쓰고 얘기 나누는 걸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