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보라 Jul 01. 2020

‘대리’ 덕분에 생각한 것

[에세이 드라이브] 5기 4번째 글_5월 4일 작성 / 글감 '대리'

1.

대리는 대신과 다른 것일까?      


‘대리: 1) 남을 대신하여 일을 처리함. 또는 그런 사람’   

  

대신한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나는 나의 대리가 있길 바랄까? 대리해 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 순간들도 있었다. 순간이 아니라 어떤 긴 시기들도.      


그렇다면 내가 누군가를 대리를 해줄 수 있는 일이 있었을까? 대리가 가능한 건 단순한 일들이다. 꼭 내가 아니어도 할 수 있는 것. 그러나 대리할 수 없는 것들도 많다. 사랑하는 것. 아픔, 죽음. 마음을 나누는 일 등등. 주로 감정적인 것들이 떠오른다.       


인생을 살면서 내가 바라는 건? 대체할 수 없는 존재가 되는 것. 물론 누구나 다른 이를 대체할 수는 없는, 소중하고도 고유한 인간이지만. 나를 대신할 수 있는 인생의 대리란 없다.      

 

2.

이제까지는 그 주의 글감에 대해서 이것저것 노트에 끄적이다 보면, 뭔가 쓰고픈 글이 떠올랐다. 아니 최소한 1번 정도까지 끄적이면, 어떤 방향으로 써야할지는 생각났다. 그런데 이번은 영 쉽지가 않다. 이렇게 잘 떠오르지 않을 수가. 김민섭 작가의 책 <대리 사회> 리뷰를 써야하나?   그런 생각도 들었다. (갑자기? 책 제목에 ‘대리’가 들어가니까.) 여튼 뭔가 잘 떠오르지 않으니 연결성 없는 글들을, 번호로 분리하며 지면을 채워나가고 있다.


3.

다시 한 번 더 검색.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대리할 수 있는’을 검색해봤다. 그랬더니 제일 위에 영어 단어가 뜬다.      


‘representable: 나타낼 수 있는, 표현할 수 있는, 묘사할 수 있는, 기술할 수 있는, 대리할 수 있는, 대표할 수 있는.’      


나를 대표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번 상반기까지는 나를 대표하는 무언가를 명확하게 만들어내고 싶다. ‘구보라 = 무엇’      


4.

대학을 다닐 때 나만의 대표적인 무언가를 만들어냈어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은 글도 쓰고 책도 준비해보고, 팟캐스트도 만들어가고 있는데... 대학생 때는 뭔가 만드는 것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얼마 전 친구가 영상을 보내줬다. 친구의 졸업식 때 총장이 했던 말이 담긴 영상이었는데, 친구는 그 영상이 찡하다고 했다. 난 그 총장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었다.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영상을 보기 시작했다. 총장은 졸업하고도 두 가지를 잊지 말라고 했다.      


“첫째는 끊임없는 노력과 도전입니다. 예술의 핵심은 창조를 낳는 것입니다. 노력과 도전만이 창조를 낳습니다.”      


예술 관련 학교여서 예술 이야기를 했다. 대학생 때 끊임없이 노력은 했다. 그러나 어떠한 도전을 했을까? 대학교 3학년이 될 무렵, 엄마가 아프면서부터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그전까지는 취업 생각을 안 하던 다소 철없던 딸이었는데, 이후부터는 최대한 부모님 걱정을 덜 시켜드리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취업되기 힘든 과 + 학생들의 취업에 신경 쓰지 않는 교수진들 이라는 조건 속에서 절망감을 느꼈다. 고군분투했다. 창조를 낳을 생각도 안 했다. 창조는 무슨. 예술도 언감생심이었다. 안정적인 회사에 들어가고 싶었다. 회사에 들어가면 마음도 안정되고, 생활도 안정될 테니까. 갈망하던 건 안정. 내가 원하는 안정적인 직장에서는 초입부터 떨어졌다. 사회에서 졸업한 나를 반겨주지 않는 그 막막함을 마음껏 느낄 수 있는 시기였다. 나를 대체할 수 있는 인간들이 수없이 많다는 것도 느꼈다. 조급함과 안정을 원하는 마음은 나를 어디서든 일하도록 만들었다! 정규직 자리를 기다릴 여유는 없었고, 단기로 여러 일을 해봤다. 서로 큰 연관성은 없는 것 같으면서도 있는 것 같은! 범주의 일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연히 ‘노력과 도전’은 중요한데, 무엇보다도 어떤 방향으로 노력하고 도전하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      


방향성 있는 노력과 도전.      


나에겐 여러 곳에서 일했던 게 도전이었다면 도전이었을까? 생각해보면 대학 졸업 후 5년이 흐르고 서른이 되었는데, 그 5년이 20대 초반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순탄치 않았다. 알지 못 하는 곳으로 떠내려가지 않고, 다행히도 망망대해를 잘 헤쳐 왔구나~ 싶다. 알고 보니 지금도 망망대해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방향은 잡아가며 가는 것 같다.      


총장이 두 번째로 강조한 건 세상에 대한 이해와 배려였다.      


예술은 인간을 위해할 수 있는 인간이 하는 행위입니다.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이해가 없는 예술은 한낱 개인의 취미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졸업하면 주목받는, 천장에 걸린 등불과 같은 존재인데 등불이 빛나는 이유는 낮은 곳을 비추기 위함이라고도 했다. 등불의 존재 이유를 들을 때 찡했고, 개인의 취미에 불과하다는 말 또한 와닿았다. 다른 사람들에게 가닿지 못 하고, 그저 자기만족에 불과한 작업물, 콘텐츠들이 얼마나 많나? 그런 예술이라면 하지 않는 게 낫겠다.      


5.

낮은 곳을 비추는 등불같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그러고 싶다. 소설을 좋아하고 책을 좋아하고, 영화를 좋아한 것도 단순한 재미 때문만은 아니었다.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 가난하거나 힘든 이들의 이야기가 담긴 소설을 좋아했고, 그런 영상을 좋아했다. 다양한 삶이 존재한다고, 삶에 대한 다양한 감각을 전하는 작품들을 사랑했다. 그 작품들을 보며 감동받았기 때문이다. 감응이라는 단어도 더 어울리겠다. 살아갈 힘을 받았다. 지금은 이렇게 에세이에서 나에 대해서 쓰며 글을 써보고 있지만, 나에 대한 생각들도 정리된다. 글을 계속 쓴다면 더 나아가야지. 더 많은 사람들에게로. 나는 글을 쓰면서 살아갈, 계속 쓸 힘을 받고 누군가는 나의 글을 읽으면서 살아갈 힘을 받으면 얼마나 좋을까. ‘대리’라는 단어가 이 생각까지 이끌었다. ‘대리’ 덕분에 생각한 글은 이렇게 마무리 지어본다.



구보라


보고 듣고 씁니다.

에세이, 리뷰를 주로 써보고 있어요. 인터뷰도 좋아합니다.  

나중엔 르포도 쓰고 싶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읽어줄 수 있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