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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보라 Dec 13. 2020

집안일이 많지 않다고요?

[에세이 드라이브] 8기 2번째 글_7월 20일 작성 / 글감 '빨래'

혼자 사니까. 해야 하는 집안일이 많지도 않겠네~”     


이게 말이야, 방구야? 이 말을 직접 들었을 때는, 그냥 “할 일이 왜 없어요, 설거지도 하고 빨래도 하고 할 거 많아요~” 라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또 돌아온 답은 “그래봤자 많지도 않을텐데~”였다. ‘이 사람, 대체 나랑 싸우자는 건가?’라는 생각이 스쳤지만 그냥 넘어갔다. 상황을 대충 넘어가려는 그런 웃음을 하면서.      


올해 초 어느 모임 시작 전, “오전에는 집안일 하다가 왔다”는 내 말에 어느 중년 남성이 했던 말이다. 아니, 말이라고 할 수 있을까. 말 같지도 않은 말은 시간이 흐를수록 저 말은 계속 머리에 남았다. 부정적인 기운이 가득한 그 말은, 길을 걷다가, 혼자 멍 때릴 때, 요리하다가, 샤워할 때, 불쑥불쑥 떠올라서 기분을 더 나쁘게 만들었다. 굉장히 여러 가지를 폄하하는 문장이다. 집안일 자체, 혼자 사는 사람의 집안일, 그 집안일을 하는 나까지.     

그 중년남은 기혼 남성이다. 추측하기로는 그는 아마 결혼 전에는 혼자 산 적이 없었을 것이다. 결혼 전에 부모님 집에 얹혀 살았다면, 어머니가 집안일을 해서든, 그는 한 번도 집안일을 안 했던 것 같다. 더 무서운 건, 설마 그 사람은 결혼하고 나서도 집안일을 안 한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꼭 혼자 살지는 않더라도, 집안일을 해본 사람이라면 “집안일이 뭐가 많겠냐”는 내용의 말을 할 수가 없다.     

 

집안일을 적어보면, 일단 음식을 하는 일도 집안일이다. 설거지도. 혼자 먹을 음식을 하더라도, 그릇은 여러 개 쓸 수밖에 없다. 밥그릇, 국그릇, 요리한 그릇, 요리할 때 쓴 그릇, 반찬 덜어 먹은 그릇, 수저, 집기류 등등! 설거지만 한다고 끝나는 건 전혀 아니다. 요리하면서 생긴 음식물쓰레기 그리고 먹고 조금 남은 음식물까지. 음식물쓰레기 봉투에 넣고, 버리는 날짜에 맞춰서 버리는 것 또한 집안일이다. (음쓰... 이 일은 아무리 해도 왜 기꺼운 마음이 들지 않는 걸까 모르겠다.)     


빨래도 해야 한다. 빨래를 하지 않으면 입을 옷이 부족해지는 사태가 올 수도 있다. 아니, 옷이 너무 부족하지 않는 한 입을 옷이 없진 않더라도... 입고 싶은 옷이 없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그러니 부지런히 시간이 날 때에 빨래를 해두어야 한다. 그리고 빨래 바구니에 빨래가 쌓여있는 걸 보는 건 조금 답답한 일이다.     

 

세탁기에서 빨래가 돌아가는 동안, 또 여러 가지 집안일을 한다. 바닥을 쓸고 닦기도 하고, 갑자기 냉장고를 열어서 안에 있는 상한 음식을 꺼내어 버리기도 한다. 책상 위를 정리하고, 바깥 행거에 걸어둔 ‘입었는데 또 곧 입을 옷’들도 가지런히 옷걸이에 걸어둔다. 씽크대를 깨끗한 상태로 닦고, 닦다보면 그 옆에 보이는 인덕션도 닦는다. 시간이 되면 다음 끼니를 위한 요리를 하기도 한다. 쌀을 씻고, 밥솥에 밥을 앉힌다. 밥은 전기밥솥이 하지만, 어떤 날은 쌀 씻고 앉히는 것조차도 귀찮은 날이 있다. 그럴 땐 햇반을 돌려서 먹는다. 밥은 보통 20분 정도 걸리는데, 그동안 같이 먹을 국이나 찌개를 착착 요리한다. 자취한 지 10년째라 이 정도는 뭐... 하하.     

 

여튼, 이 일련의 과정을 쉬지 않고 하다 보면 1시간이 훌쩍 지난다. 빨래가 다 되면 탁탁! 털어서 건조대에 넌다. 나에겐 빨래를 너는 것보다 개는 일이 번거롭다. 빨래 개는 걸 좋아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귀찮을 땐 엄청 귀찮다. (이건 좀 개선해야 할 사항!)     


화장실 청소를 할 땐, 심호흡을 크게 한다. 집안일 중 가장 성가셔하는 게 바로 화장실 청소다. 조그마한 화장실에 곰팡이가 왜 생기는 걸까. 예전 자취방 화장실엔 작은 창문이 있었는데 그래선지 곰팡이가 덜 생겼다. 지금 화장실엔 작은 창문이 없으니 곰팡이가 조금씩 조금씩 생겨난다. 매일매일 화장실 청소를 해야 하는 걸까? (이 글을 쓴 건 7월. 수정해서 브런치에 올리는 건 12월. 5개월 사이 나는... 이틀에 한 번은 화장실 청소를 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 대대적인 청소가 아니라 조금씩 계속 그 상태 유지하기. 너무 힘들지만 하다보니 되는 듯...)      

글을 쓰며 생각해보면 나는 꽤나 부지런한 편에 속하는데, 집안일에서는 부지런함이 그다지 돋보이지 않는다. 집안일 할 때에도 부지런함을 떨어봐야겠다.      


(혹시나 이 글을 읽고 있는 분 중, 부모님과 같이 살더라도, 요리도 하고 빨래도 하고, 청소도 하시죠...? 혹시 집안일을 단 한번도, 안 해본 사람은 없기를 바랍니다. 아니 안 하더라도, 글 제일 첫 문장 같은 말을 다른 이에게 하지는 않으시길! :) ) 



구보라 


책방에서 일하고, 글 쓰고

팟캐스트를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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