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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살 앞 30날」

0. 프롤로그 / '31' / 서른한 살

by 구보라

https://www.instagram.com/daily_writer_9bora/


0. 프롤로그


안녕하세요, 저는 [32살 앞 30날] 글쓰기를 시작한 구보라입니다. [32살 앞 30날]은 [앞뒤로 30날]의 두 번째 이야기로 참여하는 프로젝트입니다.


저는 서른두 살을 앞둔 서른한 살 구보라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저를 소개할 땐 ‘보고 듣고 씁니다’라고 스스로를 소개하곤 하거든요. 10월에 독립 매거진을 한 권 낸 이후로는, ‘쓰는’ 행위가 많이 줄어든 게 사실입니다. 꾸준히 써보려고, 올해 1월에는 친구와 브런치에서 매거진을 운영하기 시작했어요. 각자 2주에 한 번씩, 그러니까 매거진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 리뷰를 올리기로 했죠. 가끔씩 늦어지는 경우가 있었지만 그래도 10월까지는 운영이 되었는데요, 11월엔 하나의 글도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역시나 꾸준히 무언가를 하는 건 어렵다는 걸 느끼고 있습니다.


2주에 한 번 리뷰 쓰는 것도 못 하고 있는데, 제가 또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했네요. 그래도 한 달만 하면 되니까. 한 달 동안 매일매일 글을 써보려고 해요. 그렇게 매일 쓰다보면, 생각이 무엇이든 조금씩 정리될 수 있지 않을까요? 짧게든 길게든 매일 30일 동안 잘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미리 감사합니다. (멈춰둔 그 브런치 매거진에도 얼른 글을 써야겠습니다.)


1. 30날 글쓰기를 시작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해보라고, 잘 말하는 편이다. 정말이지 꽤나 잘한다. (올해에 그걸 가장 많이 깨달았다.) 정작 나에게 누군가가 무언가를 해보라고 얘기해주는 경우는 많이 없다. 친구들이 아이디어를 줄 때도 간혹 있지만, 뭔가 그러기 전에 이미 무언가를 내가 하고 있어서거나, 굳이 해보라고 말하기 귀찮거나! 그럴 듯 하다.


얼마 전, 서른을 앞둔 주성 님이 ‘30살 앞 30날 글쓰기’를 기획하고 있다고 했다. 괜찮은 기획인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서른을 앞둔 건 아니었지만 (서른을 앞두어야 숫자 라임이 잘 맞는데!) 2020년을 보내고, 2021년을 기다리며 매일 글을 써보고 싶어졌다. 막상 하면, 꾸준히 잘 쓸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 하던 차, ‘보라 님도 30일 글쓰기 같이 해요!’ 라는 주성 님의 은근한 부추김(?)에 한다고 했다. 글을 쓰라고 시키는 게 아니었으니까. 주성님도 쓰는 거니까, 혼자서 하다보면 분명 하다가 말텐데, 누군가 같이 한다면 그래도 하겠지, 싶었다.


2. 31살을 돌아보니


매일의 제시어는 남아있는 날, 그 숫자로. 30날 글쓰기이지만, 12월은 31일까지니까. 오늘의 제시어는 ‘31’이다. 마침 31은 지금 나의 나이이기도 하다. 31살인 내가 31이라는 숫자에 대해 써보는 건, 올해 들어 처음이다. 31살은 내 예상보다도 훨씬 더 정신이 없었다. 긍정적인 의미로도, 부정적인 의미로도. 대체 얼마나 정신이 없었나~ 싶어서, 폰 캘린더와 기록용 한글파일들을 살펴보았다. (한글파일엔 일주일 단위로 그날의 일정과 일상의 단편들이 기록되어 있다.)


우선 1분기. 올해 1월을 살펴보니, 책방에 주3일 나갔고, 글쓰기 모임 주1회 그 정도. 지금에 비하면 정말 한가로운데, 그래도 바쁘다고 적혀 있다. 뭘까? (보라야, 뭐가 바빴니!) 2월엔 책방 한 군데를 그만두면서, 주 1회만 나갔고, 시간 여유가 생기니까 일하는 책방에서 열리는 북토크도 곧잘 참여했다. 나 스스로가 작가가 될 생각은 잘 못 했는데, 작가들의 북토크를 그렇게나 좋아했다. 2월부터 팟캐스트가 일상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두 개씩 모두 격주마다. 그 외엔 운동도 했다. 3월엔, 친구들과 약속도 많았다. 사적인 약속들. 너무 많았다. 그렇게나 보고픈 친구들이 많았던 것인가? 지금은 그렇게 안 보고도 잘 살아가는데. 그 약속을 전부 소화하면서도, 팟캐스트도 했고, 책방 일을 했다. 슬슬 [9와 숫자들 팬 인터뷰] 작업에 착수하기 시작했지만 많이 바쁘진 않았다.


2분기, 4월은 [9와 숫자들 팬 인터뷰] 일정도 이어지는 가운데, 매거진 수업을 시작해서 매거진 작업도 시작했다. 물론 앞의 프로젝트들, 팟캐스트는 이어지고 책방 일도 이어졌다. 해야 할 일들이 추가된 셈. 5월엔 새로운 책방에서 일을 하면서 다시 주2일 책방에서 일했고, 인터뷰 작업 스케줄도 꽤 있었고, 매거진 기획 회의도 많아졌다. 바빴다. 그래도 가끔은 한강에 자전거 타거나 맥주 마시는 여유 정도는 챙겼다. 6월도 비슷한 편이었는데, 그런 여유만 사라졌다. 이상하지만 하루도 온전히 쉬지 않는/못하는 삶이 시작됐다. 휴!


3분기 7월. 매거진 작업이 조금 정체기였고, 그 와중에 있었던 북토크가 기억에 남는다. 친한 글쓰기 동료 티끌님의 북토크 사회를 보기도 했고, 7월 말에는 북토크를 직접 하기도 했다. [9와 숫자들 팬 인터뷰] 작업으로. 책은 없지만 기획, 작업 과정을 나눌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생애 첫 북토크였다. 함께 작업하는 찬경이와 난 발표에 약한 스타일이라 보름 넘게 계속 연습했다. 실제 북토크 땐, 대본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읽어내려갔다. 친구와 지인들로 가득한 북토크. 초롱초롱한 눈빛들을 바라보며 힘을 얻었다. 처음이라 절대 잊을 수 없는 기억들이다.


8월은 매거진, 팟캐스트, 책방으로 가득 찼다. 비율로 치면 매거진이 70%. 팟캐스트 30%, 책방 30%, 기타 사적인 일 5% 정도. 그러니까 100%여야 하는데 135%... 뭔가 초과된 상태가 시작됐다. (아, 5%도 사적인 일이지 사적인 약속이 아니다. 친구들도 거의 안 만난 듯. 아, 친구들과 일을 하니까 일이 곧 친구와의 만남... 이기도 했다. 이것도 올해의 가장 큰 특이한 지점이자 변화인 듯하다.)


9월부터 11월 중순까지는 매거진이 삶의 80%, 85%, 90%까지 올라갔던 것 같다. 설마 지금보다 더 바빠지겠어? 했으나, 매거진에 쏟아야하는 생각할 시간, 체력 등 비중이 계속 올라갔다. 쭉쭉!!!


10월 중순, 드디어 매거진이 나왔다. 그런데 그때 번아웃이랄까, 그런 상태가 오기도 했다. 일이어도 좋아서 하는 일이라 즐거워서 했는데, 일과 일정이 나를 끌고 가는 상태가 되니 괴로웠다. 질질 끌려가듯... 버텨냈다. 10월 중순, 매거진이 나와서 기뻐야 하는데 몸 상태가 끝나버린 기분. 온몸의 기력도 다 소진된 느낌이라서 병원을 찾기도 했다.


몸이 고되었지만, 그런데 그만큼 즐거웠던 것도 10월과 11월이다. 앞에서는 10월과 11월의 바쁨만 쓰느라 즐거움을 적지 않았지만. 7월이 생애 첫 북토크였지만 책이 없었던 상태, 10월은 정말로 내가 만든 책으로 하는 첫 북토크가 있었다. 감회가 새로웠다. 북페어도 나갔고, 책을 홍보하는 인스타 라이브도 해봤고, 11월 중순에는 매거진 손과의 콜라보 북토크도 있었다. 우리 매거진으로만 북토크를 하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고, 뜻깊었다. 매거진 수업을 진행한 페이보릿 편집장님의 사회도 있었으니까. 무엇보다도 또 재밌었다. 더 재밌는 뒷풀이까지도. 그 이후 일주일은 매거진이 아닌 다른 일들로 또 바쁘고 재밌었다. 그리고 바쁜 와중에도 책방 일만큼은 여전히 재미있어서 다행이었다. (다른 바쁨이 와도 놓고 싶지 않은 일이자 기본 수입을 보장해주는 고마운 일!)


그 바쁨 상태가 그나마 나아진 게 딱 저번 주부터다. 저번 주엔 올해 처음으로 나만을 위한 휴식을 가지잔 생각에 제주도로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 첫날엔 일했다. 또륵... 매거진 말고도, 해야 할 다른 이것저것 할 일들이 있었다. 돈이 들어오는 일이니 해야했다. 급하게 해치웠다. 제주시청 옆 스타벅스에서~ 그래도 서울이 아니라서 괜히 노래가 흥얼거려졌다. 익숙한 곳을 떠난다는 것 자체가 기분을 좋게 만든다는 걸 너무 오랜만에 느꼈다. (고향을 갈 때도 서울은 떠나지만, 여행과는 다른 느낌이다. 분명히.) 총 4박 5일 여행 일정 중, 이틀은 혼자, 사흘은 친한 언니와 함께했고 혼자만의 시간, 함께한 시간 모두 큰 즐거움이었다. 일을 손에 다 놓아버리고 쉬는 건 정말 몇 달 만이었다.


12월이 왔다. 약간의 소강상태인 듯하다. 매거진 2호 작업은 본격 시작하지 않았지만, 여전히 할 일은 있다. 그러나 다행히도(?) 내가 스케줄을 조절해가며 해볼 수 있는 일이다. 예를 들면 글쓰기.


어제는 이상하게 잠이 계속 와서, 밀린 잠을 보충하며 하루를 보냈고, 오늘은 외부 일정 하나 다녀와서는 2시부터 계속 집이다. 집콕. 정말 집순이 기질이 없는 나로서는, 이렇게 집에 오래 있은 적이 거의 없기에 낯설기도 하면서 괜찮다. 마침 일정도 없고, 코로나라 작업하러 카페도 못 가니... 집 책상에 앉아, 엉덩이를 붙이고 리뷰 쓸 콘텐츠를 다시 보고, 관련한 자료를 검색도 해보고, 그러다가 매거진 기획안도 써보고, 내년을 계획하는 글도 끄적이다가, 책도 읽었다. 그리고 이 30날 글쓰기도 조금씩 써보곤 했다. 리뷰를 쓰려는 것도, 에세이를 쓰는 것도, 그냥 다 너무나도 오랜만이라 생경할 정도다. 원래는 집에서 작업이 잘 안 되는데, 너무 오랜만이고, 집에서만 해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엉겁결에 작업이 되는 것 같다. 오늘은 책상에 앉아있던 시간이 참 좋았다. 그동안 여러 가지 바쁨으로 나를 채워주는 느낌이다.


3. 32살, 어떨까?


12월은 적당히 여유 있게 보내면 좋겠다. 일에 끌려가지 않고, 올해를 되돌아보고, 내년을 계획해보는 시간이 되기를. 30날 글쓰기 덕분에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어제 주성 님이 올린 [30살 앞 30날 글쓰기] 일러스트 이미지를 보고, 나도 그런 이미지를 부탁했다. 러닝 트랙에서 살짝 덩실덩실하는 듯한 사진을 보고 그린 주성님의 일러스트 이미지를 보며, 30살을 앞둔 그 느낌과 매우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29살 때, 서른은 무언가 커다란 분기점처럼 다가오니까. 30살은 이미 넘겨버린 나는 그럼 어떤 사진 느낌이면 좋을까? 생각해 봤다. 무엇이 좋을까. 계단이 떠올랐다. 그냥 계속 오르고 오르는 계단. 고등학생 땐 이 나이쯤 되면, 내가 엄청난 경력을 지닌 회사원일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삶도 조금 편안해져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다! 편안한 삶이란 어디 있을까. 그래도 왠지, 나중에 중년쯤 되면 그 계단을 서서히 내려올 것 같지만, 일단은 계속, 특히나 30대 초반인 지금은 부지런히 오르고 올라야 할 것 같다. 끝이 보이지 않지만 계속! 그래서 1월에 갔던 진주 진양호의 일년계단(소원계단) 사진 그리고 지난주 제주에서 기분 좋게 팔을 벌리고 있는 사진을 주성 님에게 전달했다. 그리고 짠! 일러스트가 나왔다. 31살을 바쁘고도 즐겁게 보내고 계단에 서서, 조금은 기분 좋게 ‘올 테면 와, 32살’ 이러는 느낌이 든다. 산뜻하다. 많이 길어졌지만, 31살, 12월의 첫날, 이렇게 30날 글쓰기 첫 번째 글을 마무리한다.


진주 진양호에 있는 일년계단(소원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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