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23/ ‘23개월 전, 23개월 후’
1. 23개월 전 - 2019년 1월 9일에서 10일로 넘어가는 새벽
1) 9와 숫자들
이날 9와 숫자들의 공연을 보고 왔다. 2018년에 단 한 번도 9와 숫자들의 공연을 본 적이 없었기에, 그래서 더 감회가 새로웠다. ‘행복’이라는 단어는 너무 추상적이고도 막연해서, 일상에서는 자주 느끼지는 못 하는 것 같은데, 좋아하는 밴드의 공연을 볼 때면 ‘행복’이라는 게 무엇인지 뚜렷이 느껴진다. 지금 이 순간 그 자체, 이 곳에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의 음악을 듣고, 그들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 함께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무지 기분 좋은 것.
공연의 여운이 강했는지, 자정이 넘은 시각에 블로그에 글을 남겨두었다.
‘9님의 목소리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목소리’라고 적어두었는데, 저 때는 팬심이 가장 컸을 때인 것 같다. 음,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다. 9와 숫자들을 좋아한 지 9년쯤 되었다. 오랫동안 그들을 좋아한 비결은? 많이 좋아하지 않아서. 모순적인가. 은은하게 늘 좋아하지만, 빠져있을 땐 훅 빠지지만. 내가 살기 바쁘면 전혀 관심을 두지 못 했다. 9와 숫자들만큼 좋아하는 밴드(음악도 듣고, 공연도 가는)는 그다지 없었지만. 그럼에도 관심을 안/못 가질 때도 있었다.
언제나 꾸준하고도 비슷한 강도로 팬심을 드러내는 팬들을 목격할 때면, 역시 난 저런 팬은 못 되는구나~ 고 생각한다. 뭐, 그렇다고 낙담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팬이 될 수도 없다. 되고 싶지도 않다. 올해엔 5월 말에 공연을 본 게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어버렸다. 12월 말에 공연이 예정되어 있어서 2주 전에 예매를 해두었는데, 2.5단계 사회적 거리두기로 역시나 미뤄졌다. 1월로. 1월엔 그들을 만날 수 있을까?
노래를 워낙 많이 들어선지 일상에서는 거의 안 듣는 9와 숫자들... 그러나 공연을 보면 마음이 벅차오르는 밴드. 멤버들을 한 명 한 명 쳐다보고 싶다. 공연이 정말 좋은데... 보고 싶다. 1월에는 꼭. 그때까지 멤버들도, 어려운 시기를 잘 버티며 보내길 부디.
2) 박정민과 유아인
이날 공연을 보고 와서는, 바로 잠을 안 잤나보다. 새벽 2시에는 또 배우들에게 푹 빠져있다고 글을 올렸다.
박정민에게 푹 빠진 게 불과 23개월 전이었다니. 좀 더 오래전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그전엔 조금만 좋아하고 있었나 보다.
블로그 글 중에서 마지막 문장이 와닿는다. ‘고등학생 때처럼 좋아하는 마음들이 막 커지네’라는. 고등학생 땐, 좋아하는 게 은근히 많았던 것 같다. 좋아하는 밴드, 좋아하는 소설가, 좋아하는 영화, 좋아하는 웹툰, 좋아하는 배우. 누가 툭 물어보면 툭 대답할 수 있는 그런 상태? (누군가 물어봐주길 은근히 바라면서. 하하)
+ 박정민은 지금도 좋아하는 배우다. 너무 소처럼 일해서 팬들이 걱정하던데... 유아인은, 유아인은... 당시 다른 블로그 글에도 적어 두었지만, <밀회>를 보며 정말이지 매우 반해버렸는데, 음... 그 이후로 다른 작품은 잘 못 보았기 때문에 세모...
2. 2022년 11월 9일
23개월 이후라니, 잘 상상은 되지 않는다. 일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우선 내년을 먼저 생각해보면, 2월쯤 티끌님과 쓰는 독서 펜팔 책을 낸다. 봄과 가을에는 매거진 <We See> 2호와 3호를 낸다. 출판사에서 내기로 한 책을 6월쯤 나온다. 9와 숫자들 팬 인터뷰 집을 상반기에 낼 수 있을지, 지금으로서는 이제 또 불투명한 기분이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2021년에 낸다.
그다음으로는 책방 일도 계속 한다. 책방에서 하고 싶은 기획이 있으면 시도해 본다. 같이 책을 읽거나, 작업을 하는 모임도. 코로나만 아니면 기획해서 책방 공간에서 해보고 싶다. 올해에 하고 싶었는데 한 번도 하지 못 한 기획이다. 팟캐스트는? 물론 팟캐스트도 꾸준히 한다. (할 수 있겠지) 팟캐스트에 대한 강의할 기회도 또 오면 좋겠다.
이 모든 활동들로 인해서, 다른 기회들도 계속 오길 기대해본다.
지금은 책방에서 하는 일 외에는 글쓰기나 매거진 만들기, 팟캐스트 등에서는 수입을 창출하기 힘들지만, 내년에는 그럴 수 있기를. 그래서 현재의 나를 위한, 미래의 나를 위한 최소한의 밥벌이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지속 가능해야 하니까. 지속 가능한 글쓰기, 지속가능한 매거진 만들기.
그렇다면 23개월 후인, 2022년 11월은?
매거진은 5호까지 나왔으면 좋겠다! 그래서 조금은(?) 안정적이길 바란다. 매거진과 관련한 북토크나, 일회성 강의같은 기회도 주어지면 좋겠다.
글쓰기와 관련해서는, 나만의 책을 1권쯤은 더 낸 상태면 좋겠고, ‘구보라’하면 ‘글을 괜찮게 쓰는 작가’라는 인식이 생겼으면 한다. 팟캐스트도 꾸준히 하면서 더 많은 청취자들과 소통하고 싶다. 책방 일은, 책방만 괜찮다면 계속 하고 있길 바란다. (아직 이 때에 나만의 책방을 하기엔... 아직 상상은 잘 가지 않는다.) 책방에서 일하는 기쁨은 꽤나 크기 때문에. 좋아하는 책방이, 일하는 책방이 코로나 시국을 잘 견뎌서 부디 잘 버텨서 2022년 11월에도 건재하고 있기를.
나중에, 23개월이 지나서 이 글을 보면 어떨까? 댓글로 달아봐야지.
구보라 / 보고 듣고 씁니다. 요즘은 매일 [32살 앞 30날] 글쓰기를 합니다. 다른 글도 물론 쓰고 있어요. 23년 후에 대해서 쓰려다가, 23개월 뒤에 대해 생각했어요. 23년 후는 너무나 먼 이야기 같아요. 쉰 네 살의 저. 일단은 지금을 잘 보내야 쉰 네 살도 잘 살고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