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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살 앞 30날」

1. 30 / 평범한 일상

by 구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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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이 30일 남았다. 일기나 글을 쓰는 것만큼이나, 썼던 글을 다시 보는 걸 좋아하는 나. 글을 쓰기 전, 이렇게 한 해를 마무리하던 시점에 썼던 글이 있나? 찾아봤다. 2018년 11월 말에 쓴 글을 찾았다!


서른 살을 앞둔, ‘돌아온 취업준비생’이었던 스물 아홉 살에 썼던 글이다. 당시의 나는, 그로부터 1년 전이었던 스물여덟 살 12월을 떠올렸다. 그때(2017년)는 회사에 다니면서도 방송사에 취업하려고 다른 회사 자기소개서를 쓰고, 시험을 준비했었다. 그때를 떠올리니 괜히 아득해졌다. 당시에도 방송사 PD 취업을 준비 중이었는데, 준비‘만’ 하는 지금이 나은가, 라고 자족도 해보았다.


친구들과의 약속이 없는 텅 빈 12월 캘린더가 어색하면서도, 어쩔 수 없다고, 지금은 그런 약속이 중요할 때가 아니라고, 그냥 30일 잘 채워보자고, 스스로를 다잡아보기도 했다. 그 다잡는 말투가 괜히 좀 찡하게 다가온다. 이렇게 취업 준비하다가 원하는 곳에 취업이 되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 그러다 이직할 수 있는 시기조차 놓쳐서 아예 다시 일할 수도 없고, 사람들과의 관계도 다 끊기면 어쩌지…….


두려웠다. 이 모든 게 ‘PD가 된다면’ 해결될 일이기도 했지만. 방송사에 들어갈 수 있을지도 너무 불투명했다. 나름 열심히 PD 준비를 해보고 있는데, 입사 못 할 정도로 실력이 나쁜 것도 아닌 것 같은데, 더 나은 준비생들은 왜 그렇게나 많은지……. 솔직히 나 자신을 잘 믿지는 못 했던 것 같다. 이래서 합격할 수 있을까, 5단계 관문을 뚫고? 막막함과 불안함은 주위에 말하기도 솔직히 쪽팔렸다. 두려웠다.


사실, 그냥 과거의 나는 다 찡하게 다가온다. 스물여덟도 쉽지 않았고, 스물 아홉도 쉽지 않았다. 그래도 서른을 기대했다. 취업하기를. 취업을 해서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너무 평범해서 그게 평범한 건 줄도 모르는 평범한 회사 다니는 일상으로. 그런 평범을 바랐다.

가장 찡한 건, 서른이 가장 쉽지 않았다는 점. 쉽지 않을 거란 걸, 예측한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졌을까? 어차피 일어날 일은 다 일어나게 마련이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조금은 되돌려보고도 싶다. 마치 JTBC 드라마 <눈이 부시게>처럼.


2019년 4월에는 서울을 떠나, 고향인 창원으로 갔다. 취업 준비는 더이상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때, 취업준비생으로 서울에 머물던 지난한 시간을 떠올리다 보면, 취준생으로 지내던 시간이 평범한 일상으로 여겨졌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평범한 일상.


평범한 일상을 누릴 수 없었던 나의 서른은 8월까지 슬펐고, 9월부터는 조금씩 나아졌다. 사랑하는 엄마가 내 곁을 떠나고 나니, ‘평범한 일상’을 더는 갈구(?)하는 마음이 사라졌다. 안달복달하며 취업 준비를 하고 싶지도 않았다. 물론 삶을 놓아버리려는 마음이었던 건 아니다. 다만 지쳤다. 그래도 주위 사람들의 기대와 우려, 시선 때문인지 9월 중순까지는 몇 군데 서류도 넣어보고, 최종 면접을 보기도 했지만 떨어졌다. 내 실력과 운은 거기까지였던 것 같다. 이후로는 서류 넣는 데에 의미를 느끼지 못했다. 어느 회사든 입사 지원서를 쓰지 않았다.


그리고 9월 독립출판으로 책을 냈다. 공저였지만 제작자로서, 독립출판 씬으로 처음 들어간 셈이다. 그때부터는 하고 싶은 일들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애쓰며 노력하는 삶이 조금은 지쳐서, 잠시 나에게 이 정도 시간은 줘도 되지 않나, 생각도 했다. 생각해보면 대학생 때도, 졸업 이후로도, 회사원일 때도 이렇게 막연한 상태에서 ‘막’ 지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해야하는 일들에, 쫓기듯 살아왔다. 어깨가 무거웠다. 그렇다고 지난해 말에 놀았던 건 아니고, 뭐든 하고 싶은 걸 시도해보려고 했다. 그동안의 나의 경력 등이 그다지 큰 도움이 되지 않는 영역(책방 아르바이트)에서 일해 보기도 했다. 제로에서 다시 시작하는 느낌이었다.


그냥 부딪치며 지냈다. 따라가야 하는, 정해진 삶의 루트라는 게 전혀 없는 상태로. 이렇게 살다 보면 어디까지 가나 보자, 라는 마음도 들었다. 이 글을 쓰다 보니, 어떻게 서른의 가을과 겨울을 그렇게 보냈을까 싶다. 계획하고 준비한다고 해서 삶이 짠, 하고 좋은 결과를 주는 게 아니란 걸 경험해서였을까. 계획하고 준비 안 하고 살아봤나 보다. 그렇게 살다보니 서른한 살을 맞았고, 1월부터 11월을 지나 12월을 맞이했다.


지금은 무언가를 그래도 계획은 해본다. 회사처럼 어딘가 소속된 삶이 아니기에, 미래는 여전히 불투명하지만, 계획대로 삶이 굴러가진 않더라도, 하고 싶은 일들로. 어떻게든 계획을 세워본다. 이것이 지금 나의 평범한 일상이다. 예전에 바라던 평범과는 다소 다르지만. 여기서 조금씩만 더,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면 되지 않을까. 멈추지 않고.



참고) 2018년 11월 말에 썼던 글 중에서 일부


“2018년도 얼마 안 남았네!” 라고들 말하는 시기가 왔다. 이틀만 지나면 12월 1일이다. 늘 예상되는 일정들을 폰 캘린더에다 적어둔다. 빼곡하게. 그런데 올해 12월 캘린더는? 많이 비어있다. ‘스터디’ 일정 외에는, 친구들과의 약속, 송년회 모임도 없다. 예측되지 않는 삶을 살고 있어서인 것 같다. 물론 삶이란 게 원래 예측되지 않지만 특히 취업준비생(취준생)이라는 건 전혀 예측되지 않는 삶의 연속. (중략)


서른을 앞둔 스물아홉살 12월, 아마 평범하게 직장을 다니고 있었더라면 평일은 차치하더라도 금요일 저녁, 토요일 점심, 토요일 저녁, 일요일 점심, 일요일 저녁 약속을 많이 잡아뒀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 근데 작년 12월 캘린더를 보니, 회사를 다니면서도 다른 회사에 지원을 하느라 저렇게는 못 보냈다. (중략) 세상에 뭔가 한 해를 마무리 해야할 시점에, 불안한 마음으로 회사를 다니며 또 불안한 마음으로 또다른 회사 자기소개서를 쓰고 있었다니 과거의 내가 좀 안쓰럽다! (그 회사 들어가지도 못 했는데) ‘요즘 취준생이라서 마음이 불안함’ 뭐 이런 칭얼거리고픈 마음이 있었는데, 작년 12월 캘린더를 보니 쏙 들어간다. 평일엔 일하고, 주말엔 공부하며(제대로 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막 놀지도 못 하고 하는 척하며 시간 보냈는데 그게 더 괴롭다) 12월을 보냈구나. 아예 백수이면서 취준만 하는 지금이 차라리 낫나? 과거의 나를 떠올리며 자족해본다.


어휴, 내년엔 회사생활 하면서, 주말에도 보고 싶은 사람들하고 약속도 왕창 잡고 그러고 지내면 좋겠다. 어제는 이번달 들어 처음으로 셋이 모이는 약속이 있었다. (중략) 연말 분위기를 훅 느꼈다. 그러니깐, 나도 지금의 백수 생활을 거쳐서 다시 출근하는 곳이 생긴다면 보고픈 사람들 더 자주 만나서 맛있는 거 먹어야지, 그런 생각을 해본다.


2018년도 얼마 안 남았다. 비어 있는 캘린더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그냥 30일 잘 채워가야겠다. 그러다 보면 2019년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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