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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살 앞 30날」7

7. 24 / 졸업할 수 있을까

by 구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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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살 가장 큰 고민은 졸업. ‘나는 졸업할 수 있을까’.


2013년 2월, 동기들의 졸업식에 갔다. 한 해 휴학을 했기에 동기들이 먼저 졸업을 했다. 그들이 졸업하는 걸 보면서 나는 졸업을 하려나, 막막했다. 졸업 시험이 있지 않고, 졸업 논문을 써야 했는데, 교수님들이 학부생에게 기대하는 논문의 엄밀함과 수준이 높은 편이었다. (학부인데...)


3월에 개강하자마자 논문에 대한 스트레스는 현실로 다가왔다. 지도 교수님과 나 그리고 후배 한 명. 셋이서 1주일에 한 번씩 만나서 논문 세미나를 했다. 입학 면접 때부터 “구보라! 소설만 읽지 말고, 책을 더 다양하게 많이 읽어라!”라고 이야기 해주신 심광현 지도 교수님. 4년 동안 교수님으로부터 수업을 들을 때, 교수님이 마냥 무섭지만은 않았다. 부리부리하게 생기셨지만, 많이 털털한 편이기도 했고, 다른 교수님에 비하면 정말 무서운 스타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교수님을 지도 교수로 하기도 했다. 근데 논문 세미나를 시작하니 교수님이 무섭고도 어려워지긴 했다. 연구실에서, 발제도 하고 논문 주제 피드백도 주고 받았다. 그때 같이 논문 세미나를 들었던 언니(후배인데 언니)는 이론적 지식이 가득한 사람... 나와는 고민의 층위가 달랐다. 논문을 써야하는 비슷한, 힘든 처지인데도 왠지 외로웠다. 함께 고민하는 사람이 있었어도 외로웠을테지만. 어차피 논문은 나와의 싸움.


가을이 되자 매우 바빠졌다. 내가 쓰던 주제는 KBS <현장르포 동행>이라는 TV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 대해서 이론적으로 분석하는 것이었다. 그 프로그램에서 전해지는 시각적 불편함과 주제와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서사 방식의 불편함을 요목조목... 적고 싶었다. 그때 즈음부터 PD를 진로로 생각하던 나의 관심사는 TV 프로그램이었다. 영상을 공부하는 사람들조차 TV 프로그램은 원래 수준이 낮아, 그저 TV 프로그램이지, 하고 넘어가는 경향이 많았는데 TV도 이론적으로 한 번 제대로 비평해봐야 하지 않나? 생각했다. 삶에서 영화보다도 더 많이 영향을 끼치는 게 (당시에는) TV였다. 문제는, 이제까지 우리 과(영상이론)에서는 영화를 논문 대상으로 삼아왔다는 점. 도전이었다.


10월, 논문 중간 발표회. 다른 교수님으로부터 “왜 이 논문을 방송영상과가 아니라 우리 과에서 써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소리를 들었다. 걱정이 현실로 다가오는 순간. 아찔했던 그 순간! 지도 교수님이 무언가 방어되는 말을 해주시긴 했으나, 정말 정신이 혼미했고, 발표회가 끝나고는 세상 우울해졌다. 나는 졸업을 못 할 거야... 나만.

그 뒤로는? 계속 고치고 고쳤다. 왜 우리과에서 이걸 써야하는 지를 더 촘촘히... 채워나가면서. 도서관과 북카페를 이리저리 다녔다. 읽고 쓰고, 고치고, 쓰고 고치고를 반복했다. 실력이 없으면 성실함이라도 보여야지 싶어서 성실하게 살았다. 아래 사진은 그 시기에 우리 과 상냥한 선생님으로부터 받은 피드백. 김정구 선생님. 이 분으로부터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다. 이 분과 다른 과의 홍성일 선생님. 두 분 덕분에 논문의 레퍼런스와 내용이 자리를 잡아갔다. (갑자기 감사함을 표하는 글)







왜 그렇게 졸업을 하고 싶었냐면, 논문 쓰는 것 때문에 도저히 학교를 다니면서 취업 준비를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졸업을 해야 취업 준비에 매진할 수 있었는데, 통과가 안 되었다간 이도저도 안 되는 25살을 맞이하게 될 예정이었다. 좋아해서 들어간 학교인데, 슬프게도 4학년 그 무렵엔 학교가 내 미래를, 내 발목을 잡는 기분이었다. 그럴 순 없지. 안 돼, 학교에서 벗어날 거야. 그러려면 노력만이 살 길!


그리고 드디어 12월 9일 논문 최종 발표회. (이 글을 쓰는 동안 자정이 넘었고 2020년 12월 9일이 되었다. 6년 전 오늘이라니.) 발표를 했고, 다행히 중간 발표회 때만큼의 혹평은 받지 않았다. 조금 몇몇 부분을 수정한 다음 통과되었다. 다행이었다.


<TV 휴먼다큐멘터리에서의 재현양식에 대하여: KBS <현장르포 동행>을 중심으로 /구보라>


논문을 대폭 요약해서 TV 비평글을 TV 비평상(좋은 방송을 위한 시민의 비평상)에 제출하기도 했다. 이제껏 우리 과에서는 아무도 그런 글 공모를, 그러니까 영화 평론과 관련되지 않은 비평 공모엔 낸 적이 없었다. 영화를 공부하는 과에서, 혼자 TV로 논문을 쓰는 것도 모자라, TV 비평상에 공모까지 낸 사람. 결과가 안 좋았다면, 이상한 학생으로만 남았을 수도 있을텐데... 다행히 상을 받았다.


‘KBS <현장르포 동행>은 과연 동행하는가?’라는 제목으로 우수상! 나는 아마 너무 기뻐서 교수님께 최종 논문을 제출하며, 이 소식도 전했던 것 같다. 교수님의 답장이 적힌 메일 화면 캡처가 남아 있다.


무뚝뚝한 편이었던 교수님. 짧은 메일에 모든 말이 다 담겨있다. 축하하고, 야단을 쳤었단 사실, 최선을 다하라는 말 그리고 크리스마스 잘 보내라는 마무리까지.


메일 중에서 ‘네가 앞으로 연구하거나 취직을 하더라도 부끄럽지 않게끔 최선을 다하기 바란다’ 이 말이 맴돈다. 이론 공부를 조금은 힘겨워하던, 그래서 취직을 얼른 하고 싶어하던 제자에게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의 격려였을 것 같다. 그리고 이 말은 무슨 일을 하든지 다 적용이 되는 것 같다.



아, 언제였더라. 1학기였는지 2학기였는지 기억은 가물하지만, 교수님이 해주셨던 말도 떠오른다.


“뭔가 대단한 논문을 쓰려고 할 필요는 없다. 학부생이 그럴 수도 없고. 예전에 나온 비슷한 주제의 논문보다 ‘1’이라도 새로운 점을 추가할 수 있다면, 너의 논문은 그것으로도 충분한 거야. 그걸로 된 거야.”


(교수님이 말투가 꼭 저런 건 아니었지만 아무튼) 앞선 누군가들의 발자취에 1이라도 새로움을 더 하면 된다,는 그 말이 마음을 조금은 편해지게 했다. 그래, 내가 세상을 바꿀 논문을 쓰는 건 아니잖아?


24살을 되돌아보는 글을 쓰면서, 오늘은 이 메시지들이 남는다. 지금 무슨 일을 하든, 나중의 내가 지금을 돌아봤을 때 부끄럽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기. 엄청난 새로움을 더하려고 하기보단, ‘1’이라도 더한다는 마음으로 작업하기. 그리고 아무리 걱정이 많아도 어차피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 걱정할 시간에 조금 더 성실히 무언가를 하면 걱정이 조금은 피해갈 수 있을 거라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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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를 배경으로 찍힌 사진. 좋아하고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했던 학교. 한국예술종합학교. 석관동 캠퍼스. 2015년에 졸업하고도 거의 4년을 학교 근처에서 살았다. 그러다, 학교가 위치한 지하철역과 거의 반대 방향으로 이사를 왔다. 그러니 학교를 안 가 본 지 2년이 넘었는데, 아주 가끔씩은 학교 산책하던 때가 그립다. 공부하던 때 말고 산책하던 때.




구보라 / 대학갈 수 있을까, 졸업할 수 있을까, 취업할 수 있을까, 퇴사하고 싶다, 어떻게 먹고 살지? 역시 삶은 끝없는 고민의 연속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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