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2 / 22분 동안 글쓰기
자정을 넘겼다. 오늘의 글을 쓰지 못 한 채. 30날 글쓰기를 시작한 이후부터, 자정부터 쓰기 시작한 경우는 자주 있었다. 그러면... 많으면 2시간. 최소한 1시간은 걸렸다. 무얼 쓸지 생각하고, 쓰고, 고치고... 오늘은 조금은 다르게.
글을 쓰기 시작한 건 12시 8분. 22분 안에 글을 써보려 한다. 왜 22분이냐면 오늘의 제시어가 22이기 때문이다. 22분 안에 어떤 글이 나올 수 있을까. 한 번쯤은, 하루쯤은 조금 짧게, 가볍게 써도 될 텐데. 이제까지는 쓰다 보니 생각보다 길어졌다. 글을 안 쓸 때엔 아예 안 쓰더라도, 각 잡고 한 번 쓰다 보니 또 쓰게 되었다. 신기하다.
어느 순간, 4일인가 5일째부터는 정말이지 조금은 습관처럼. 자기 전에 이렇게 글을 쓰지 않으면 허전할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이 들었다. (아닌가, 기억의 왜곡일까?)
글을 쓰는 데에도 약간의 근육이 생긴 기분이다.
이 문장을 쓸 때에 인용하고 싶었던 문장이 있다. 드디어 인용한다.
‘밤 아홉 시에 제2부. 짧은 글 십여 편을 읽고 리뷰를 썼다. 삶의 기록을 존중하며 글의 허물을 찾아내고 같은 단어의 반복을 피하고 정확한 단어를 고심하다 보니 새벽 한 시다. 제2부는 힘들지 않았다. 왠지 기운이 솟았다. 마라톤에서 계속 달리면 고통이 사라지고 쾌감이 오는 러너스 하이 같은 상태인가, 아니면 만물의 질서를 통합하는 밤의 마법인가.
아마 그건, 계속 썼기 때문인 거 같다. 전에도 그랬다. 힘들면 도망가고 싶다. 쓰는 삶에서, 쓰는 상황에서. 술을 마시거나 하염없이 걷지만, 일시적인 기분 전환일 뿐 마음이 홀가분하지도 걸음이 자유롭지도 않다. 글 쓰는 에너지를 회복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글 쓰는 것. 몸의 감각이 쓰기 모드로 활성화되고 도움닫기를 할 수 있는 밑 원고가 다져진다. 모터가 돌아가고 원고가 불어나 있으면 그 불어난 힘이 글의 소용돌이로 나를 데려간다.’ <쓰기의 말들>(은유) 중에서 (35)
글 쓰는 에너지를 회복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글을 쓰는 것.
지금 상태에서는 잘 쓰느냐 못 쓰느냐 보다도, 썼느냐 안 썼느냐, 가 일단은 더 중요하게 다가온다. 써야 잘 썼는지, 못 썼는지도 가늠해볼 수 있으니까.
매일 쓰기 덕분에 나 또한 ‘글의 소용돌이’로 가고 있는 것 같다. 아니 이미 그 소용돌이인가?
이제껏 매일 써온 것처럼, 내일도, 모레도 계속 써봐야지. 생각보다 22분은 길다. 이제 12시 18분이다. 이렇게 된 거 22분 동안 쓰는 건 포기해야할 것 같다. 12시 22분까지 글을 써야겠다. 이것이야말로 정말, 의식의 흐름 기법인가.
그저께는 오랜만에 독일에 사는 친구에게 안부를 물었다. 자주 연락하는 건 아니다. 연락한 건 한 달 만이었다. 그사이 친구는 사는 곳을 옮겨 베를린에 가 있었다. 일주일 동안은 그곳에 적응도 하고, 좀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고 한다. 다행히도 이제는 회복 중이라고 했고, 박사 과정을 지원한 결과를 기다리며 여러 가지 직업을 구하고 있다고 했다.
독일, 박사, 직업 등... 나에겐 뭔가 생경한 느낌이었다. 외국에서 직업을 구해 일을 하면서 박사 과정을 한다... 라니. 우리는 분명, 같은 회사는 아니지만은 기자 일을 하면서 같은 곳을 출입하고 기사를 쓰고,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농담을 나누던 사이였는데. 한국에서. 나는 내가 가지 못 하는 길을, 시도를 할 생각조차 하지 못 하는 친구의 삶을 마음 속으로 많이 응원한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괜히 마음이 좋지 않아져서 그럼 지난주에 연락할 걸... 이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친구는 아니라고. 연락을 주니 반갑다고, 앞으로 차분해져서 글도 열심히 쓰겠다고 했다. 갑자기 왜 글을 열심히 쓰겠다고 말하지? 싶을 수 있는데. 내년 계획 중 하나는, 친구의 글을 모아 책을 내는 것도 있다. 무슨 글이든 계속 써주면 좋겠다. 그 친구의 글을 읽는 걸 좋아하기에. 잘 지내라고, 또 연락하겠다고 인사했다.
서울이었다면, 얼굴을 마주보며 이야기를 나누었을텐데. 아쉽다. 그렇지만 할 수없다. 살아가면서 보고 싶은 사람을 전부 만나면서 살아갈 수는 없다. 우리는 서로 못 본 지 2년, 아니 3년은 된 것 같은데... 앞으로 살면서 언제 볼 수가 있을까? 내가 독일을 가면? 그 친구가 한국을 오면? 무엇 하나 확실한 게 없는 삶이다.
이렇게 쓰면서 12시 30분이 되었다. 결국 22분 동안 쓰기 완성! 마음 속에 쓰고 싶었던 내용이 친구였나보다. 다음에는 조금 정리해서 써봐야겠다.
구보라 / 보고 듣고 씁니다. 22살에 대해 쓰려다 바쁜 마음에 22분 글쓰기를 했어요. 사실 22살은 휴학을 했던 해라서, 떠올리면 마음이 쉽지 않은 해이기도 한데, 언젠가는 써보긴 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