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32살 앞 30날」18

18/ 13 / 면접

by 구보라
20201201.jpg

지난해 9월 13일, 스터디 카페에 갔다. 3일 뒤인 16일에 최종 면접이 있었기 때문이다. 면접 준비도 해야했지만, 면접 보기 전에 [최종 과제]를 내야했다. 2차 면접은 줌으로 진행됐는데 그 이후 2차 통과(!)를 알리는 메일에서 과제가 있다고 했다. 그 메일은 받은 게 11일이었다. 16일까지 과제를 할만한 충분한 시간이 필요했다. 12일부터는 추석 연휴가 시작됐다. 고민하다가 추석 때 집에 내려가질 않았다. 못 했다. KTX를 타고도 3시간이 걸리는 고향에 갔다간, 오가며 기차에서도 많은 시간을 써야 했다. 내려가지 않은만큼 시간을 더 알차게 쓰면서 집중하기 위해서, 집근처 스터디 카페를 갔다. 13일은 추석 당일이었다.


당시 내가 지원했던 곳은 뉴닉. 뉴닉은 ‘밀레니얼을 위한 시사 뉴스레터’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이다. 지금도 인기가 있지만 당시에는 점점 더 사람들(주로 우리 나이 또래)의 주목을 받는 곳이기도 했다. 삶의 전환점 같았던 2019년 상반기를 보내고 나서, 하반기에 난 어디로 향해야 할지 막막한 상태였다. 다시 방송사를 지원하기엔 몇 달간 손을 놓았고, 그 동력도 잃어버린 지 오래였다. 그러다 알게 뉴닉에서 에디터를 뽑는다는 걸 알게 됐다. 친한 언니가 “보라야, 여기 넣어보는 거 어때? 너랑도 잘 맞을 것 같아”라는 카톡을 보냈었다. 평소에 조금씩 보던 뉴스레터이기도 했고, 꼭 방송사가 아니더라도 이정도 영향력이라면 일하면서 보람도 느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자기소개서도 쓰고, 2차 면접도 치렀다. 그리고 최종 면접을 앞두고 있었으니, ‘가고 싶다’는 마음이 매우 커져 있었다.


해야 할 과제는 이런 내용이었다.


<뉴닉의 세 가지 기사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 (1) 논리적으로 약한 점은 없는지 (2) 내용이 보완될 부분은 없는지 (3) 위트는 충분한지 검토하고, 비판 및 개선방안을 알려주세요.>


영, 쉽지는 않았다. 일단 세 가지 중 하나를 고르고, 꼼꼼히 읽었다. 그리고 관련한 다른 기사들을 많이 찾아서 읽고 비교해야 했다. 과제라 부담이 가면서도, 오랜만에 기사 쓸 때처럼 여러 자료들을 보고 검토하는 건 꽤나 즐겁기도 했다. 생각보다 나는 그렇게 자료들 모으고 분석하는 걸 많이 좋아하는 편이다. 실제로 뉴닉 에디터가 되면 여러 가지 기사들을 보고, 내용을 일목요연하고도 재미있게 정리해야 하니까, 일의 효능감이 높겠다! 라는 생각까지도 했다. 일단 기사에 대한 비판 및 개선방안 등을 생각하다가, 다른 친구들에게도 의견을 물었다.


뉴닉 면접을 보게 됐어, 그래서 이러저러한 과제를 하고 있는데, 혹시 원래 뉴닉 봐?, 이 기사인데 너가 보기엔 이 기사 어떤 것 같아? 뉴닉의 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


이런 이야기를 최소한 5~6명에게는 물었던 것 같다.(더 물었을 수도) 고맙게도 짧게씩이나마 의견들을 보태어주었다. 그리고 면접 결과가 좋기를 당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고마웠다. 이렇게 면접 보는 거 다 알려놓고, 떨어지면 부끄러워서 어쩌지? 이러한 생각도 들긴 했는데, 그래도 응원과 격려를 받는 건 좋았다.


고향에 있는 친한 친구와는 전화로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다 친구는 뉴닉이 성장하는 곳인 건 알겠는데 탄탄한 회사인지 좀 따져봐야 하지 않냐고 이야기했다. 내가 들어가도 괜찮은 곳이냐고. 나를 걱정해서 해주는 말들이었다. 그때 나는, 내가 마치 이미 뉴닉에 합격한 것처럼, 뉴닉의 일원인 양, 최근에 어디 투자도 받고~ 좋은 곳 같아~ 등등 좋게 말했던 것 같다. 그런 나에게 친구는 “보라야! 너는 정말 몰입을 잘 하는 것 같아!”라고 말했다. 나는 그와중에도, 그 말을 들으면서 “오? 그렇네? 그것도 자기소개 멘트할 때 써야겠다”라고 말했다. 온통 머릿 속이 ‘뉴닉, 최종 과제, 면접’이었다.


스터디 카페는 적막한 분위기였다. ‘추석에도 이렇게들 공부하거나 취업 준비를 하는구나’ 싶어서 마음이 괜히 더 무거워지기도 했다. 노트북 타이핑 소리조차도 너무 조심스러웠지만 최대한 집중하며 5시간 30분을 앉아 있다 집으로 갔다.


조금은 이른 저녁을 먹고, 머리를 식힐 겸 근처 불광천을 1시간쯤 걸었다. 역시 추석이라서 달이 참 예뻤다. 11시에는 드라마 <멜로가 체질>를 본방 사수했다. 그날 방송은 11회 ‘해결해야 될 일이 있어요... 작가님 좋아하는 내 마음’편. 식상한 표현이지만 11회는 정말 ‘웃고 울면서’ 봤다. 진주와 범수 이야기는 설레고 재밌었는데,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 건 은정이었다. 잠깐 그렇게 또 머리를 식히고, 다시 책상에 앉았다. 조금 더 뉴닉 과제에 대해 생각하다보니 새벽 3시가 되었다. 그 다음날도 스터디 카페를 가서 과제를 하고, 제출했다. 16일엔 최종 면접을 봤고, 왠지 결과가 좋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20일. 뉴닉 메일을 받았다. 너무 떨려서, 확인하기 전 친구랑 카톡하면서 둘다 긴장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아쉽지만~’으로 시작하는 메일. 조금은 예상은 했지만, 속은 쓰라렸다. 혼자 있었다면 우울하게 있었을텐데, 다행히 마침 그날 서촌에서 저녁을 먹던 친구들과 만나서 술을 마셨고, 그날 이후로는 뉴닉을 생각하지 않았다.




구보라


보고 듣고 씁니다.

1년하고도 3개월 전, 저때 봤던 면접이 가장 최근에 본 회사 면접이었네요.

저의 삶은 점점 프리랜서쪽으로 흘러가는 것 같아요.

또 회사 면접을 볼 일이 있을까요?

보더라도 제가, 조금은 더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보면 좋겠습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나를 챙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