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11 / 「32살 앞 30날」
얼마 전, 독립출판을 하는 다른 작가들과 넷이서 모여서 워크샵하듯이 도화지에 각자 내년 계획을 적어보고, 공유했다. 그때 한 작가님이 ‘건강’ 카테고리에 써놓았던 문구가 인상적이었다.
“건강한 음식 챙겨 먹기”. 그 작가님도, 나도 혼자 생활하는 사람들. 혼자 살면서 밥을 잘 챙겨먹는 게 쉽지만은 않지만... 최대한 건강을 챙길 수 있는, 나만의 집밥을 제대로 해 먹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대학교 4학년 때부터 자취를 시작했는데, 부모님이 만들어서 보내준 음식을 해동시켜 먹기도 하고, 요리도 자주 해 먹었다. 요리하는 것도 좋아한다.
그런데 “건강한 음식 챙겨 먹기”에 대해서는 생각을 소홀히 했던 것 같다. 예를 들어 그 작가님은 채소를 잘 챙겨 먹어야겠다고 했는데, 나는 그동안 일단 집에서 요리해서, 끼니 거르지 않고 먹는 것에만 급급했던 편이다. 집에서 먹긴 먹는데, ‘어떤 걸’ 먹을지, 장 보면서 건강한 재료를 사려고 고심하지는 않았다. 습관처럼 사던 것들만, 필요한 것들만 샀을 뿐.
요즘은 일상에서 집밥을 먹는 비율이 80%는 되는 것 같다. 그래도 가끔은 밖에서 먹으니까 20%는 빼고. 사회적 거리두기가 2.5단계로 올라가면서 이제 집에 오래 머무른 지도 한 달 정도 된다. 밖을 나갈 일이 없을 때면, 간단히 아침을 챙겨 먹고, 책상에서 일하고, 밥을 해서 먹고, 또 일하다가, 저녁이 되면 밥을 먹는다. 그렇게 삼시세끼를 다 집에서 먹는 날도 꽤 있다.
지난주에 했던 요리들을 떠올려 보면, 참치김치찌개, 미역국, 김치볶음밥, 김치전, 순두부찌개, 제육볶음, 된장찌개... 내가 할 수 있는 요리 레파토리는 매우 한정적이다. 생존 음식들. 뭔가 좀 더 요리다운 요리는 없다.
계속 이 레파토리로만 간다면, 신선한 채소를 먹는 일은 많이 없다. 음... 최근 김치가 집에 많아지면서 어떻게든 음식에 김치를 넣어 먹으려고 노력 중이다. 김치도 정말 좋은 음식이긴 한데, 그외 다른 영양소들이 부족한 것 같다. 아까 썼던 요리들에 들어가는 재료는. 물에 끟여진 김치와 참치, 미역, 소고기, 순두부, 애호박, 감자 정도!
그래서 지난주엔 아주 오랜만에 장 보다가 톳을 샀다. 톳을 좋아하는데 그동안 잘 사먹지 않았단 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해산물은 건강에 좋으니까! 하면서 기분 좋게 샀다. 밥을 먹으면서 반찬처럼 톳을 먹었다. 뜨거운 물에 살짝 데쳐서 초장에 먹었다. 정말 신선한 그 맛. “건강한 음식 챙겨 먹기”! 나도 이 정도면 잘 챙겨 먹은 것 아닌가? 생각했다.
글을 쓰다 보니 올해 봄에 리뷰를 썼던 책 『서른의 식사법』이 떠오른다. 이 책의 표지에는 ‘식사란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 한끼를 떼우기보다 건강하게 즐기는 온전한 식사법에 두루 마음을 쓰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이 책을 처음 발견했을 때가 서른이었는데, 그 문구에 사로잡혀서 책을 펼쳐 읽고 샀다. 간소하고 간단하면서도 건강을 챙길 수 있는 음식들도 나오고, 음식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 담겨 있어서 공감하며 읽었다.
‘행복은 내 식사를 내가 선택하는 데에서 비롯된다. 내 먹거리를 내가 고르고, 직접 요리해서, 내가 먹는다. 쉬운 듯해도 그렇게 못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19)
내 식사를 내가 선택하는 데에서 비롯되는 행복. 집에‘만’ 물론 있는 건 다소 답답하지만, 이번 기회에 내가 재료를 선택해서 만들어 먹는 집밥을 조금은 더 즐겨보는 시간으로... (또륵). 레파토리도 조금은 더 다양하게 계속 늘려보고. 신선한 채소나 해산물도 자주는 아니더라도 조금씩 더 의식적으로 챙겨 먹어봐야지. 과일은...? 과일을 워낙 좋아하는 편이라 이미 자주 먹고 있으니 지금처럼 먹으면 될 것 같다.
과자는? 사실 과자는 잘 안 먹는 편이다. 맥주를 마실 땐 먹지만. 최근 한두 달 사이 자주 사 먹었던 과자는 빼빼로. 11월 11일 때문에, 마트에서 잔뜩 쌓아두고 세일을 하길래 장 볼 때마다 조금씩 사두었다. 굳이 빼빼로데이에 빼빼로를 먹을 필요가 없단 걸 알면서도... 저절로 손이 갔다. 집에 두면 자기 전에 괜히 또 생각이 났다. 다행히도 지금은 없다. (과자가 먹고 싶을 땐 견과류를 먹어보는 건 어떨지...)
코로나 상황은 쉽게 나아질 것 같지만은 않다. 부디 나아지길 바라지만. 그동안 집에서 무엇이든 잘 먹으면서 건강을 지켜나가야 할텐데… 지치지 않게, 건강을, 나 자신을 잘 챙겨보고 싶다.
구보라 (인스타그램 @daily_writer_9bora)
보고 듣고 씁니다.
11이라는 제시어로 무얼 쓸지 고민하다가 11월 11일> 빼빼로데이 > 과자 > 과자를 줄여야지 > 식습관 > 집밥 이렇게 글이 나왔습니다...! 억지스러울까요? 11은 젓가락이 떠오르기도 하니까 집밥과도 연결된다는 피드백도 있었으니... 괜찮겠죠? 이렇게 의식의 흐름 덕분에(?) 저의 식생활을 돌아볼 수 있는 글을 써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