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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살 앞 30날」13

13. 18 / 애창곡을 부르면

by 구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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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를 잘하지 못 한다. 잘 하고 싶은데, 안타깝게도 못 한다. 노래방을 딱히 좋아하지 않았다. 노래방에 가도 노래를 거의 안 하니까. 노래 잘 하는 사람들끼리 흥에 취해서 노래를 부르는 분위기가 되어버리면, 나같은 음치는 소외감 느끼면서 재미가 더 사라지기도 했다. 노래를 듣고 공연을 보는 건 좋아하지만, 노래를 부르는 즐거움, 노래방에서의 흥겨움을 잘 몰랐다. 그러다 올해엔 노래방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친구들이 주위에 생겨서, 코인노래방 등 노래방을 몇 번 가곤했다. (물론 코로나가 대유행하던 그런 시기 말고) 옛날 노래들을 하나씩 시도해보다가 부를 때 나 스스로가 즐거운 노래를 찾기도 했다. 나만의 노래방 18번.


주로 불러보는 노래는 에코의 ‘행복한 나를’ (1997년에 나온 노래)


‘몇 번인가 이별을 경험하고서 널 만났지

그래서 더 시작이 두려웠는지 몰라

하지만 누군갈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되는건

니가 마지막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우- 나처럼’


‘넌 가끔은 자신이 없는 미래를 미안해 하지만

잊지 말아줘 사랑해 너와 함께라면 이젠 행복한 나를’


이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하는 이유는, 일단 멜로디가 좋다. 초반 부분은 잔잔한 편이어서 그래도 다행히, 부를 수 있는 음역대다. 너무 고음으로 올라가는 부분에서는 안 올라가니까 안 부르거나, 같이 간 사람들에게 불러달라고 할 수도 있으니 커버할 수 있다. 노래방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다.


노래를 부르다 보면, 가사가 마음에 와닿는다. 만났다가 헤어진 경험이 몇 번 생기다 보면, 시작하려할 때 ‘헤어지면 어떡하지’라거나 이런 두려움이 자연스럽게 생길 수 있다. 마음이 아무래도 예전과는 다를 수 있다. 그러나, 그 불안과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누군갈 만나고 알아간다는 것. 그 마음이 얼마나 좋은지 잘 드러나는 가사라서 계속 들어도 좋다. 부를 때도.


노래방에서 꼭 부르는 노래는 신해철의 ‘내 마음 깊은 곳의 너’(1991. 3.20). 신해철을 좋아하니까 신해철의 음악도 자주 듣지만, 그가 했던 밴드 넥스트의 노래보다도 신해철 솔로곡들도 좀 좋아한다. 그때의 느낌들이 좋은 것 같다.


‘내 마음 깊은 곳의 너’ 이 노래는 평소에도 자주 듣는 노래이기도 하면서, 평소 걸을 때도 희한하게 멜로디를 흥얼거리게 되는 노래다. 그리고 노래방에서 한두 번 부르다가 깨달았다. 부를 때에 더 흥이 나는 노래라는 걸!


‘너에게 내 불안한 미래를 함께하자고 말하긴 미안했기에

내게로 돌아올 너를 또다시 혼자이게 하지는 않을거야. (중략)

언제까지나 너를 기다려 내 마음 깊은 곳의 너’


잘 알아채지 못 했는데, 글 쓰면서 두 노래의 가사를 옮겨놓다 보니 ‘행복한 나를’과 비슷한 가사도 눈에 띈다. 그 노래에서는 ‘자신이 없는 미래를 미안해하지만’이라는 가사가 있다. ‘내 마음 깊은 곳의 너’에서도 불안한 미래를 함께하자고 말하긴 미안했다고 적혀있다. 상대방이 미안해하든, 내가 미안해하든. 누구에게나 미래란 불안하고 자신이 없는 그런 미지의 영역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누구에게나 미래란 불안한 영역... 이지 않을까. 그러니 굳이 서로가 미안해할 필요가 있을까. 불안하지만, ‘그럼에도’ 서로가 있다면 불안함을 조금씩은 견뎌볼 수 있는 온기가 생길 수도 있지 않을까.


노래방에서 애정하며 부르는 노래 두 곡을 생각하다보니, “그냥 너가 좋다~ 좋아~” 이런 가사만 잔뜩 있는 노래가 아니라 ‘너를 좋아해도 될까’. ‘내가 너에게 다가가도 될까’ 이런 식의 고민이 담겨 있기에 좋아한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그렇게 주저함이 있었지만, 고민하고, 용기를 내어 표현을 하고 말했다는 거니까. 나는...? 나도 그래야할텐데.


그리고 ‘내 마음 깊은 곳의 너’에서는 반복되는 후렴구를 부르는 걸 좋아한다. 노래 중간쯤 지날 때에 ‘미안했~~~~~~기~~에~’ 하며 길게 부르는 부분이 있다. 신해철처럼 가창력있게 부를 순 없지만, 그냥 그 부분을 부를 때에 왠지 모르게, 스트레스가 풀리는 기분이 든다! (부르고 싶다!)


‘만남의 기쁨도 헤어짐의 슬픔도

긴 시간을 스쳐가는 순간인 것을 영원히 함께할 내일을

생각하면 안타까운 기다림도 기쁨이 되어’


이 부분은 노래 후반부에 계속 반복되는 후렴구.


삶을 통달한 가사 같다. 만남도 헤어짐도 어차피 인생이라는 긴 시간을 스쳐가는 순간이라니. (그런데 이 노래를 부르던 신해철은 20대 초반. 와우...) 그래서 노래방에서 이 부분을 부를 때면 삶에 초연해지는 기분마저도 든다. 그렇다고 ‘덧없음’이나 ‘허무함’이 느껴지는 건 아니다. 어차피 모든 건 스쳐가는 순간이지만, 함께하는 건 영원한 것이라고 하니깐. 초연함 속에 따스함이 느껴진다.



글 아래에 두 노래의 유튜브 링크를 붙여둘테니, 시간되시면 한 번 들어보시길...!



에코 '행복한 나를' https://youtu.be/Tp5P7Hm7aSU


(오늘 글의 키워드? : 불안한 미래,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민이 담긴 노래, 애창곡)




구보라


보고 듣고 씁니다.


[작가 구보라씨의 일일] 인스타그램 링크 https://www.instagram.com/daily_writer_9bo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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