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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살 앞 30날」14

'17'/ 남이 바라보는 나, 내가 바라는 나

by 구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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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인상과 다르다
차분한데 웃기다, 생각보다 웃기다
공부를 잘한다. 책을 많이 읽는다, 신문도 읽는다
영화 평론가가 꼭 될 것 같다


며칠 전 고3 때 쓰던 다이어리를 펼쳐 봤다. 그러다 다이어리 뒤에 꽂혀있는 A4 용지를 발견했다. 17살, 고1 때 반 친구들이 써주었던 롤링페이퍼. 읽으니 추억도 떠오른다. 12년 전의 나에 대한 피드백이 가득 담겨 있다. 나에게 친구들이 써준 말이 비슷비슷한 점도 재밌다. 먼저 쓴 누군가가 쓴 표현을 보며 따라 했거나, 정말 나에 대해서 대부분 비슷하게들 생각했거나.


‘차분한데 웃기다’, ‘생각보다 웃기다’는 부분. 사실 이 부분이 제일 좋다. 첫인상은 차분한데, 생각보다 안 차분하고 웃기다는 걸까. 나는 코미디언도 아닌데! 주위에서 나보고 ‘웃기다’라고 말해주면 좋았고, 그건 지금도 그렇다. 왜 그럴까. 웃기다고 하면, 나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구나, 라는 생각도 든다. 아무나 웃기려고 하지는 않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도 그렇긴 하겠지만...) 어느 정도 친분이 생긴 사람들에게만 농담을 던진다. 그들을 웃게 만들고 싶다. 같이 웃을 때가 기분이 좋다. 고등학생 때부터 이런 면이 두드러졌었나 보다.


롤링페이퍼에 또 많이 등장하는 ‘책을 많이 본다’. 이 부분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나도 참~ 어지간히 많이 티를 내면서 책을 봤나 보다’. 신문은... 수시 논술 대비하려고 열심히 보긴 했다. 사회에 대한 관심도 많았고, 공부하기 싫을 때 신문 보는 게 정말 재밌었다. 관련 지식이 쌓이는 것도 뿌듯했고, 지적인 ‘척’하는 것도 굉장히 좋아했다. 요즘의 나보다 정말 더 열심히 보긴 했다. 그나마 취업을 준비할 때나, 기사 쓰는 일을 할 때에는 일을 할 때, 시사교양 PD를 준비하면서도 사회에 대한 관심은 안 놓고 신문이든 시사교양 프로그램이든 자주 봤다. 그러나 그때도 신문은 ’봐야만 하는 것’이어서 읽는 게 다소 즐겁지 않았었다. 그런데 고등학생 땐 여러 명의 친구들이 ‘보라 너는 신문을 참 많이 보더라’라는 말을 써둔 걸 보니, 정말 많이 보긴 봤나보다. 살면서 즐겁게 신문을 읽었던 유일한 때이지 않을까.


롤링페이퍼를 보면서, 나는 사람들이 나에 대해 ‘저렇게’ 봐주길 원했었구나, 생각한다. 예를 들어 공부 잘하는 친구(엄청 잘 했던 건 아닌데 예시로). 여기서 끝나면 안 되었던 거다. 공부‘만’ 잘하는 친구가 아니라, 은근히 재미있고, 다른 아는 것도 많은 친구로 비치길 바랐었다. 그렇게 행동을 했겠지. 그리고 친구들은, 내가 바라는 대로 써준 셈이다.


실제로 17살의 나는? 물론 저런 모습도 나지만, 그 모습만 있는 건 당연히 아니었다. 그다지 안 좋은 모습도 있었을 텐데. 학교든 어디든 밖에서라면 보여주지 않으려고 했을 테니, 그에 대한 피드백이 롤링 페이퍼에는 없다.

14년이 지난 지금, 17살 때 친구들이 해주었던 말과 비교해서 생각해 본다. 남들이 나에 대해 뭐라고 하더라. 첫인상과 다르다, 차분한데 웃기다는 이야기는 요즘도 듣는 편인 것 같다. 책을 많이 읽는다는 것도. 아쉽지만 신문을 많이 읽는다는 피드백은 사라졌고, 이제는 영화 평론가가 되고 싶지 않으니 그런 말은 하지 않는다. 대신 글을 쓰니까, 글에 대한 피드백들은 있는 편이다.


최근에 더해지는 피드백들은, 열심히 한다, 열정이 넘친다,는 종류의 말들. 올해에 많이 들었다.


31년 살아오면서 가장 뭔가 의욕이 넘쳤던 것 같기는 하다. 아무것도 확실할 것 없는 한 해였기 때문이었을까. 의욕이라도 넘쳐야했던 상황이라서. 불확실한 안개 속에서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려고 눈앞의 안개들을 헤치다보니 벌써 12월이 온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의 피드백 듣는 건 너무 재밌고도 고마운 일이다. 나 스스로도 나에 대해서 제대로 모르는 경우가 너무 많으니까. 그런 말들을 들으면, 새삼 나를 새롭게 바라보게 되기도 한다. 힘을 얻기도 하고. (안 좋은 피드백들 제외).


더 바라는 피드백이 있을까. 나는 과연 남들이 나를 어떻게 바라봐 주길 바라는 걸까. 남들의 피드백을 신경 쓰면서, 그에 맞게 ‘나’라는 사람이 보여지기 위해 여전히 애를 쓰고 있을까?




구보라


보고 듣고 씁니다.

책방에서 일하고, 팟캐스트도 만들고, 매거진도 만들었어요! <We See>.

12월부터 [32살 앞 30날] 글쓰기를 하고 있습니다.

벌써 14번째 글! 2주가 지났네요. 남은 나날도 써보겠습니다.


[작가 구보라씨의 일일]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daily_writer_9bo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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