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16 / 글을 쓰고 싶다면
[글을 쓰고 싶어서]
1년 전, 글을 쓰고 싶었다. 물론 그전에도 글은 썼다. 9월 말에는, ‘쎗쎗쎗’이라는 글쓰기 모임에서 쓴 에세이를 묶어서 독립출판물을 내기도 했다. 그 이후로는 글을 거의 쓰지 않았다. 아직 글 전성기도 없었지만, 찾아온 글 비수기!
글을 쓰도록 만드는 새로운 동력이 필요했다. 물론 자발적으로 글을 쓰면 가장 좋겠지만 그게 쉽지는 않았다. 그러다 태재 작가가 진행하는 ‘에세이 스탠드’라는 수업을 신청했다. 에세이 쓰는 것에 대해서도 강의를 듣고, 또 과제를 내면서 피드백도 받으면 글이 좀 더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2020년 1월 6일은 에세이 스탠드 첫 수업을 하는 날이었다. 수업을 들으면서 왜 글을 쓰는지, 글 중에서도 왜 에세이인지, 나의 에세이는 어떠한지, 글 쓸 때 환경은 어떠한지 등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3회짜리 수업인데, 생각보다도 더 많은 걸 배웠다. 그리고 배운 점들을 체득해갔다.
기억나는 점들을 하나씩 써보면. 먼저 여러 가지 형식의 글에 대해서 이야기 하던 중, 일기를 쓰냐는 질문이 나왔다. “저는 일기를 매일 써요.”라고 답했다. 자신 있게. 그러자 태재 작가는 “일기와 에세이는 다를까요?”라고 물었다. 일기는 혼자 보고, 에세이는 다른 사람들도 보니까 다르지 않을까요, 라고 답했(던 것 같)다. 태재 작가는 일기도 글이 될 수 있다고, 단 일기를 쓰고, 다듬으면 되는 것이라고, 한 번 쓰고 끝나는 게 아니라, 다듬어야 함을 강조했다.
“다듬을 거리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초고에요.”
초고! 그렇구나. 맞아, 처음부터 어떻게 완벽한 글을 쓰겠어. 초고라도 계속 쓰면 그게 글이 되는 걸 텐데. 애초에 초고조차도 안 만들어두면 완성본도 나오지 않는다는 당연한 사실. 초고도 계속 쓰는 사람이 되어야지, 라고 마음 속으로 생각했다.
[나의 생각을 읽기 위해, 나의 글을 읽는다]
“‘근사’란 정확하다는 뜻이에요. 더이상 표현할 게 없을 때를 뜻하죠. 저는 글을 쓰면서 ‘이 문장이 근사한가?’. ‘1이랑 근사한가?’, ‘내가 이렇게 표현하려고 했던 건가?’ 등을 생각해요. ‘재밌다’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더 근사하게 표현할 수 없을까?’ 처럼요.
나의 글을 읽는 이유는, 내 생각을 읽기 위해서에요. 생각을 근사하게 만들고 싶어서 문장도 근사하게 쓰려고 해요.
예를 들어 저는 처음에 저에 대해서 ‘나는 수영을 못하는 사람이야.’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러다 글을 쓰면서 ‘나는 수영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이야.’로 바뀌었구요. ‘나는 수영을 배울 수 있는 사람이야.’도 되었어요. 나의 생각은 나의 가능성이에요. 나의 의식의 흐름과 경향성을 드러내요.”
일단은 쓰는 데에 다소 급급했기에, 근사한 표현을 쓰고자 생각을 한 적이 많이 없었던 것 같았다. 속으로 반성하며 들었다. 내 생각을 읽기 위해 나의 글을 쓰고 읽는다는 부분에서도 많은 공감을 했다.
글로 써내지 않으면 내 생각은 머릿속에서만 두루뭉술하게 맴돈다. 써내면 점점 더 정교해진다. 정확해진다. 근사해진다. 내 생각이 정확하게 눈에 보일 수 있다.
[중요한 건 초고를, 환경을 갖춰서 쓰는 것]
태재 작가는 “나의 생활 방식과 생각의 구조가 내 에세이에 나타날 수밖에 없다”며 글 쓰는 환경에 대해 이야기 했다. 우선 글을 쓰는 도구와 관련하여.
“연필이나 펜으로 쓰면 의식의 흐름으로 쓰여져요. 그래서 저는 초고를 쓰는 건 연필로 쓰는 걸 추천 드립니다”
“작가님, 저는 근데 생각이 막 앞서가는 편이라서, 키보드로 쓰는 게 편한 것 같아요. 익숙하구요. 그리고 연필로 쓰면 글 쓰는 속도가 너무 느려지지 않나요?”
“보라님, 글을 급하게 쓸 이유가 하나도 없어요~”
“아!”
다른 수강생들에 비해, 왠지 혼자서 큰 깨달음을 얻은 것 같았지만. 정말 내게는 살짝 다른 사고의 전환이었다. 뭔가 늘 쫓기듯이 쓴 것만도 아닌데. 빨리 타이핑을 한다고 해서 글이 잘 나오는 것도 아닌데. 급하게 쓸 이유가 하나도 없구나! 특히나 초고는. 글의 처음이니까. 처음 그 기본은 천천히 써두어도 되는 거였다. (물론 지금 쓰는 글처럼 매일매일 쓰는 글이 아니라면) 미리미리 초고 마감, 퇴고 마감 날짜를 캘린더에 적어두고 차분하게 써보라는 이야기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내가 참 조급했구나. 손글씨를 쓰면 손이 아프지만… 그래도 한 번 도전해볼까? 싶었다.
다음으로는 조도나 소음, 온도 등 글쓰는 환경에 대해서. 태재 작가는 글을 쓸 때 반복적인 음악을 듣는다거나 알맞은 스탠드를 켜두곤 한다고 말했다. 나는 글을 집에서 쓴다기보다는, 주로 밖에서 썼다. 집에서 쓰는 습관은 없었다. 자주 찾는 망원동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면서 노트북을 펼치면, 뭐라도 글이 써졌다. 약간의 습관이었다.
요즘은? 안타깝게도 ‘카페에 가야만 써진다’처럼, 이렇게 장소를 따질 수 있는 때가 아니다.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서 집에서 쓴다. 써야 한다. 그냥 방의 형광등을 켜두고, 창문은 다 닫고, 주로 조용한 환경에서, 가끔 KBS 클래식 FM을 틀어두고, 따스한 온도에서. 딱히 나만의 특별한 글쓰기 환경을 구축하진 않았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책상의 스탠드를 켰다. ‘스탠드를 켠다= 글을 쓴다.’ 이런 식으로, 일종의 습관이 생기길 바라는 마음으로.
[과제 - 글감 ‘테스트’]
“언제 어디서 무엇으로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수업이 끝나갈 무렵, 토요일까지(수업은 월요일이었음) 제출할 과제에 대해 설명하다가 태재 작가가 질문했다. 언제 어디서 무엇으로 쓰지.
“저는 화요일 저녁, 토요일 오후 망원동 카페홈즈의 창가나 커다란 책상에서 에세이 스탠드용 좁은 수첩으로, 새 연필로, 써보겠습니다.” 자신 있게 대답했다.
화요일이 되었고, 나는 카페홈즈를 가지 않았고, 초고를 쓰지 못 했다. 글을 내야 하는 토요일 오후에 쓰기 시작했다. 동선상 처음 가보는 카페에서 글을 써야 했는데, 정말 왁자지껄했다. 이어폰이 소용이 없는 기분. 그러나 사람은 써야 할 상황 속에서는 쓴다. 전혀 내가 미리 계획했던 환경과는 머나먼 환경에서 초고를 썼다.
먼저 글감인 ‘테스트’에 대해서 정말 한참을 생각했다. 그리고 수업에서 배운대로 일단 노트에 썼다. ‘시험이란 무엇일까?’, ‘나는 시험을 좋아하나?’, ‘시험을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등등. 생각의 흐름들을 이것저것. 그러다보니 어떤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올랐다. 그리고 이 글이 완성되었다.
지금 그 글은 ‘지망생’이라는 제목으로 브런치 매거진에 올라가 있다.https://brunch.co.kr/@9bora/34
그 글을 쓰면서 당시의 내 생각, 불안함에 대한 생각들이 정리가 되었다. 그리고 글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나왔다.
“불안하지만 이 불안도 감당해볼만하다.”
정말, 100% 감당할 만하다고 생각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길 바라는 마음에 쓴 문장인데, 쓰고나니 저 문장이 더 내게 다가왔다. 감당해볼만하지 않냐고. 역시 글을 써야…
[글이 쌓인다면]
에세이 스탠드를 3주 듣고, 2월부터는 네 달 정도 에세이 드라이브에 참여했다. 에세이 드라이브는 4주짜리 프로그램인데, 온라인 글모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글감에 따라 매주 1편씩 글을 내고, 참여하는 다른 이들의 글을 읽고 피드백을 한다. 바쁠 땐 매주 1편 내는 것도 굉장히 쉽지 않았다. 그래도 쓰고 나면 뿌듯했다.
그래서 한 두달 쉬더라도 다시 또 신청하고 그랬다. 그게 아마 9월이 마지막... 그 이후로는 도저히 쓰지 못 하는 일정들이라 포기했다. 그래도 덕분에 어느 정도 습관도 됐다. 에세이 드라이브 덕분에 당시의 내 생각이나 상황을 알 수 있는 글이 여러 편 남았다. 그때 썼던 글은 브런치 매거진 [글감으로 써보는 에세이]에도 올리고 있다.
그리고 지금, 12월은 [앞뒤로 30날] 브런치 매거진에 매일 쓰고 있다.
“편하게 많이 솔직하게 쓰는 게 좋아요. 글이 쌓여야, 어떤 스타일인지 알 수 있거든요.” 이 멘트도 다시 볼수록 공감이 간다. 일단은 쓰고, 글이 쌓여야 나의 글 스타일이 눈에 보이니까. 많이 쌓고 또 쌓자.
+ [질문]
“보라님은 그럼, 털어놓을 사람이 있다면 글을 쓰지 않을까요?”
“음……그러게요? (고민).”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해 말하고 있었던 듯하다. 누군가와 말하고 싶어도 말할 수 없을 때, 답답하거나 고독할 때, 글 쓰는 건 스스로에게 큰 위안이 되곤 한다는 걸 알았다고, 그래서 글을 쓴다고 말을 했었다. 하고싶은 말들을 잔뜩 담아.
그랬더니 “털어놓은 사람이 있다며 글을 쓰지 않을까요?” 라는 질문이 돌아온 것이다. 뭐라고 답했더라. 말할 사람이 있어도 글은 쓸 것 같다고 했던가. 말과 글은 다르니까...?
그러나 저 질문은 그날 집에 오는 길에도, 집에 와서도, 이후로도 문득문득 머릿속에 떠올랐다. 털어놓을 사람, 말할 사람이 있으면 글을 덜 쓸려나? 글은 왜 쓰는 거지? 등등 생각이 많아졌다.
12개월 정도 지난 지금 저 질문을 다시 보며 생각해본다. 일상에서 글 쓰는 게 자연스러워졌는지에 따라 다르겠지만. 무엇보다도 글을 쓰고 싶다면, 털어놓을 사람이 있는 것과 글을 쓰는 건 상관이 없다. 글 덕분에 더 재미있게, 많이, 다채롭게 이야기를 할 수도 있으니 쓰면 더욱 좋고. 초고든, 완성된 원고든 무엇이든. 1월부터 머리에 맴돌던 질문에 대해 이렇게 답을 내려보니, 마음이 왠지 편안해진다.
구보라
보고 듣고 씁니다.
'16'이라는 제시어를 보면서, 올해 1월 6일을 떠올렸습니다.
그날 에세이 스탠드 첫 수업을 들었기에 지금도 이렇게 꾸준히 쓰고 있다고 생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