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32살 앞 30날」16

16. 제시어 ‘15’ / 쓴다는 것, 매일

by 구보라
20201201.jpg


1. 매일 글쓰기 도전


처음으로 매일 쓰기에 도전했던 때는 2018년 3월.


작가들이 글쓰기 멘토로 활동하고, 신청자들은 다음(Daum) 카페에 매일 글을 올리는 방식의 프로그램이 있었다. 그중 두 편에 대해서는 자신이 선택한 작가가 댓글로 직접 피드백을 주기도 했다. 나는 그 무렵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2015), 『대리사회』(2016)를 읽고 김민섭 작가처럼 쓰고 싶었다. 그래서 김민섭 작가를 멘토로 신청해두었다.


블로그에 그때 써두었던 글을 모아두어서 오랜만에 읽어봤다. 그중 15일차 글 제시어는 ‘약속’. 그날 쓴 글은 이렇게 시작한다. ‘그 어느 누구와의 약속보다도 나와의 약속을 잘 지키고 싶다. 그러려면 우선 어떤 걸 정할지 생각해야겠다.’ 그 뒤로 무얼 하고 싶은지 등등을 써두었다.


그리고... 두둥! 16일차부터는 글이 없다. 이런! 15일차 글이 마지막이었나보다. 외장하드를 찾아봐도 없다. 2018년 3월, 매일 글쓰기는 그렇게 끝난 걸까? 폰 캘린더를 보면 그날 이후에도 몇 번 저녁에 ‘글쓰기’라고 적혀 있는데... 글을 썼으나, 다 쓰지 않았을까? 글을 완성하지 못 했나 보다. 썼든 안 썼든, 기록이 남아 있으면 좋을텐데 아쉽다.


이렇게 15일차에 끝나버렸던 2018년 3월 매일 글쓰기. 매일 글쓰기를 완주하진 못 했어도 나에겐 남는 게 있었다. 덕분에 또 쓰기 시작했다. 김민섭 작가로부터 받은 피드백도 큰 힘이 되었으니까.



2. 김민섭 작가의 댓글(피드백)


1) (1일차 ‘글을 쓰고 싶어서’라는 글에 대한 댓글)

'안녕하세요 보라님, 글로 만나게 되어 정말 반갑습니다. 읽으면서 참 정갈하게 글을 쓰신다고 느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글쓰기를 손에서 놓을 기회가 없으셨군요. :)


저도 돌아보면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글쓰기가 있었고, 그렇지 않더라도 언제나 글을 쓰고 읽어야 했던 것 같아요. 그러나 ‘내가 왜 논문만 쓰고 읽고 있지...’ 하는 막연한 아쉬움이 있었고, 그것이 <지방시>나 <대리사회> 같은 ‘나의 글’을 쓰는 데로 이어지지 않았나 합니다.


한 가지 말씀드리자면, 저는 ‘논문’이라는 글만 10년 가까이 읽고 써 왔어요. 정갈하게 글을 쓰는 연습만 아주 오래 해 온 셈이에요. 그리고 지금 저의 이야기를 쓰려고 하니까 무언가 해방된 것처럼 즐겁습니다. 그러면서, 한 가지 태도를 견지하고 있는데, ‘타인’을 상상하는 것이에요. 나의 이야기일수록 타인을 의식하며 써야 하는 것이, 감정이 격해지고 의식의 흐름 대로 글이 나아가기 쉬워요. 지금 쓰신 글처럼 한 발 떨어져서 나를 관조하고 담담하게 서술하시면 더욱 힘이 있는 글이 될 것입니다.'


2) (‘회사와 퇴사’라는 글에 대한 댓글) *

'보라님께서도 조금 더 즐거운 글쓰기를 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실 저도 어디에 소속되어 있지는 않지만 퇴사하고픈 마음이 드는 것처럼 늘 쫓기며 살아요. 누구나 그럴 거예요. :) 힘내세요.

고맙습니다.'


3. 조금씩, 천천히


2018년 3월까지도 나는 ‘나의 이야기’를 쓰는 데 주저함이 너무나도 많은 사람이었다. ‘이렇게 써도 되나’, ‘어떻게 쓰지’. 주저함은 많은데, 그만큼이나 ‘나의 이야기’를 너무나도 쓰고 싶었다.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 등 살면서 견뎌내야 하는 힘듦이 너무 커서 어디다 써야만 하는 그런 상태였다.


‘정갈하게 글을 쓴다’, ‘저의 이야기를 쓰려니 무언가 해방된 것 같고 즐겁습니다’, ‘타인을 상상하며, 한 발 떨어져서 관조하고 담담하게 서술하면’ 등의 피드백은 힘이 되어주었고, 마음에 많이 와닿았다. 3월 말부터는 이후북스에서 ‘독립출판 글쓰기 워크숍’을 들으면서 또 그 주저함을 조금씩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러고 보면 단번에 된 건 없었다.


어떻게든 나 스스로 달라져 보고 싶어서,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안간힘을 다해 돌파구를 열심히 찾았었다. 옆에서 글쓰기 강사든, 누구든 “주저하지 말고 쓰세요!”라고 한다고 내가 바뀌는 게 아니었다. 조금씩, 천천히 썼다.


그러다보니 ‘이렇게 써도 되나’에서 ‘이렇게 써도 되네’, ‘써볼까’에서 ‘쓰자’로 바뀌어갔다. 혼자서 쓰고 읽기도 했지만, 읽고 나누기도 했다. 그렇게 썼다.


4. 2020년 12월 매일 글쓰기


오늘은 [32살 앞 30날] 16번째 글, 제시어 ‘15’에 대해서 쓰고 있다. 15일차에 멈춰버렸던 2년 전 매일 글쓰기를 떠올리면서. 어제까지 15번째 글을 썼고, 이제 16번째 글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외장하드에서 [2019년 12월 매일 글쓰기] 폴더를 발견했다. 잊고 있었다. 지난해 11월과 12월에 한글 파일에 매일 글쓰기 하려고 폴더를 만들어두었었다. 거의 뭐 제대로 쓴 날이 없다. 썼더라도 한 문단, 한 문단씩 메모를 모아둔 것이기도 하다. 혼자 쓰려니 역시나 잘 안 써졌나 보다. 블로그든, 브런치든 어딘가 플랫폼에 내보일 생각을 했더라면 조금은 썼을텐데. 그리고 함께 쓰는 사람도 있었다면 썼을텐데.…….


지금은 매일 글을 쓰고, 완성한다. 그리고 한글 파일에만 저장하지 않는다. 먼저 구글 드라이브에 올린다. 그다음날엔 브런치 매거진에도 올린다. 그리고 [30살 앞 30날] 글쓰기를 하는 주성님(@스튜디오 두루)과 쓴다. 물론 글은 혼자 써야하는 외로운 작업이지만, 같이 마감을 지켜가면서 쓰다보니 매일 글을 쓴다. 단 하루도 안 쓴 적이 없다. 쓰고나서 서로의 글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 또한 재밌다. 고맙고 든든한 글쓰기 동료.


드라이브와 브런치 매거진에 쌓인 글을 보면, 뿌듯하다. 아직 더 써야 할 날이 남았지만 지금 좀, 뿌듯해도 될 것 같다.


글을 쓰고 나니 오늘도 시간이 꽤 늦어버렸다. 낮이나 저녁에 쓰는 것도 하루쯤은 해봐야겠다. 주성님도 얼른 글을 마감하길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 (와! 다 썼다...!) 



구보라


보고 듣고 씁니다.

15일을 넘어 16일째 글을 썼습니다.

내일도 쓰고, 모레도 쓰고 12월까지 계속 써보겠습니다!!

인스타그램에도 글 쓴 걸 공유하고 있어요.

https://www.instagram.com/daily_writer_9bora/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32살 앞 30날」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