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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살 앞 30날」21

21 /10 / 카운트다운

by 구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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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9, 8, 7, 6, 5, 4, 3, 2, 1!

Happy New Year!


카운트다운을 하면서, 새해를 맞이하는 일. 스무살부터 부모님과 떨어져서 서울에서 살았지만, 연말엔 집에 내려갔다. 고향에서 보내지 않은 12월 31일이 있었나? 싶어서 캘린더를 살펴보았는데, 그런 적은 없었다. 회사를 다닐 때에도 30일, 31일쯤엔 회사도 쉬어서, 집에 내려갈 수 있었다. 1월 2일도 휴가를 내두곤 했다.


12월 31일 밤엔 아마도, 대체로, 셋이서 TV를 틀어두었다. KBS든 MBC든 마음에 드는 아나운서들이 나오는 채널을 틀어두고, 카운트다운할 때까지 안 자고 기다렸다.


“엄마, 아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사랑해~”

“그래, 우리 딸내미도 새해 복 많이 받아라~”


화목하기만 한 가족은 절대 아니었지만, 이때만큼은 서로 덕담도 잠시 주고 받다가 잠들었다. 아빠는 아빠의 방에서. 나는 엄마와 함께 안방에서. 집에 내려가면 보통 엄마랑 나란히 누워 자거나, 침대와 바닥에서 떨어져 자거나. 침대와 바닥에 따로 누워있으면서도 손을 잡고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다가 잤다. 1월 1일이라고 달랐을까, 그러곤 했을 것이다. (2018년 12월 31일은, 아마도, 엄마의 컨디션 상 TV는 안 보고, 조금 일찍 같이 잠들었던 것 같다.)


2019년 12월 31일, 처음으로 고향에서 1월 1일을 맞지 않았다. 31일에도 서점에서 일을 했고, 1일에도 또다른 서점에서 일을 했다. 내려가려면 아르바이트 스케쥴을 조정해서라도 갈 수는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굳이’ 라는 생각이 들어서 빼지 않았다. 그래도 2일에 집으로 내려가서 3박 4일을 머물다가 올라왔다.


엄마가 없는 집에 내려가서 아빠와 TV를 보면서 카운트다운을 하고 싶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러면 엄마의 빈 자리가 확연히 느껴지니까.


31일엔 가까이 사는 친구와 같이 저녁을 먹었다. 메모엔 그것만 적혀 있어서, 우리가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 지는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메모에 없다.) 지난 한 해를 돌아봤을까. 맛있게 밥을 먹으며 서로의 2020년이 행복하길 바라지 않았을까.


그리고 12시가 되기 전, 나는 카카오톡 카드 기능으로 친구들에게 보낼 메시지를 잔뜩 적고 있었다. 그리 길지 않은 멘트들. 예를 들면 “OO야, 뭐든 걱정하지 마- 그동안처럼 다 잘 해낼거야. 새해 복 많이 받아~~!” 그러면 기분 좋게도 친구들로부터 “보라야, 고마워. 너도 새해 복 많이 받아”라는 답장들이 왔다.


사실, “새해 복 많이 받아”라는 말에 대해서, 조금은 회의적인 사람이긴 했다. ‘날짜가 바뀌었을 뿐이지 삶이 크게 달라지나?’ 이런 편이었다. 그런데 지난해엔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정말 진심으로 새해 복 많이 받아, 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고맙고 또 고마웠으니까. 살면서 가장 진심으로 주위 사람들의 새해 복을 기원했다. 그렇게 멘트 쓰고, 보내느라 카운트다운은 신경도 안 썼다. 그리고나서 인스타그램에 글을 올렸다.


2020년 1월, 1일. 12시 반쯤 [인스타그램에 썼던 글]


2019년,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1년 전, 1월 1일은 부모님과 창원에서 맞이했는데.. 2019년에 일어날 일을 상상하지 못 한 채. 상반기까진 삶에서 즐거운 일이 없이, 많이 슬펐다. 8월까지도 힘들었다. 9월 정도부터는 조금 힘을 내기 시작한 것 같다. 아무리 슬퍼도, 나는 또 살아가야 했으니까. 이왕 사는 거, 좋아하는 일을 제대로 찾아보고 하면서 살고 싶었다. 엄마도 내가 그렇게 살길 바랄 거라고 생각했다. 엄마는 언제나, 늘 내가 원하는 걸 지지해주던 사람이니까!


아직도 찾아가는 중이다. 하고픈 걸 해보려고 최대한 노력 중이긴 하지만, 불안함도 있다. 방향이 맞는 건지, 하고싶은 게 많다고 말만 하고, 정작 그에 따르는 노력을 하지 않아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2020년에는 이 불안함을 인정하고, 좀 더 원하는 일을 잘 하기 위해 애써보고 싶다. 노력하고 싶다. 진짜 내가 하고 싶고,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하기 위해서. 매일매일, 꾸준함을 길러나가야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도 새해의 바람이지만, 이렇게 12시가 훌쩍 넘었는데도, 잠들지 않고 있다~~�


사진은 10월 제주 곽지해수욕장에서, 티끌님이 찍어준 사진ㅎㅎ 원래 뛰면서 찍는 건 잘 안 하는데, 이날은 뛰어보고 싶었다.


2020년, 더 멋지게 도약해보고 싶다!


저한텐 사람이 가장 소중해요. 제 곁에 있어준 분들, 있어줄 분들 모두모두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글을 읽어보니 새롭다. 2020년 더 멋지게 도약해보고 싶다니! 사진과 분위기를 맞춰보려고 쓴 단어겠지만, ‘도약’ 꽤 마음에 든다. 근데 사실 ‘어떻게’ 도약할 지는 하나도 모르는 상태였다. 일단 도약은 하고 싶었던 거지. 2019년엔 너무 힘이 빠진 채, 쓰러져 있었으니까.


올해의 나는, 불안함을 인정하고, 원하는 일을 잘 하기 위해 얼마나 애썼을까? 사실 이때에 인스타그램에 글 쓸 때에, 올리려다가 삭제한 문단이 있다.


‘다만, 가을에 하고 싶은 걸 하기 위해 이것저것 하고, 잠시 취업 준비를 위한 공부를 안 하면서 걱정이 들기도 했다. 너무 손 놓고 노는 걸까? 이래도 되는 걸까? 이제 앞으로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지?


엄마가 있으면 물어봤을텐데... 엄마는 살아계실 때 나랑 가장 많이 대화를 나누는 사람이었고, 현명했다. 고민을 이야기하면 명쾌한 답을 주는 사람이었다. 할 수 없이, 스스로 계속 생각해야 했다. 때론 정신없이 바쁘다는 이유로, 생각하기를 미루기도 했다. 주위 친구들과도 이야기를 많이 하기도 했지만, 결국 답은 내가 찾아야 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무엇이 맞을 지는 잘은 모르겠다.’


지나친 걱정과 불안이 드러나니까. ‘인스타그램엔 그런 불안을 써봤자, 공감해주는 사람은 없다’는 생각을 하곤 했으니까. 그래서 이 부분은 빼고 올렸다.


지금 내가 하루에 한 편의 글을 쓰듯이, 글을 완성했다면 어땠을까. 인스타그램이라는 플랫폼이 아니라 브런치든 어디든 그 글을 공개했다면, 그러면 조금 더 내 생각을 들여다봤을 것이다. 어렵더라도 그때에 할 수 있는만큼은 정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무엇이 맞을지는 잘은 모르겠다’라는 문장을 쓰고 그 문단마저도 어딘가 내보이지 못 했고, 한글 파일에만 있던 이 문단을 거의 1년만에 발견했다.


앞으로는 무엇이 맞을지는 모르더라도. 일단 쓰고, 완결된 글을 쓰려고 노력해보고 싶다. 그리고 생각해보니 이미 [32살 앞 30날] 글쓰기를 하면서, 완결된 글을 쓰고 있다. 과거의 일을 반추하든, 요즘의 나를 바라보든. 내가 살아왔던 순간들이나 지금 하는 생각을 보고 있다. 올해엔 카운트다운을 해보려나? 하든 안 하든, 2021년 1월 1일을 맞이하는 내 마음은 2020년 1월 1일을 맞이할 때와는 사뭇 다를 것 같다.


그리고 사전을 보니 countdown의 뜻이 두 가지가 있다.


1. 로켓이나 유도탄 따위를 발사할 때에, 시작이나 발사 순간을 0으로 하고 계획 개시의 순간부터 시ㆍ분ㆍ초를 거꾸로 세어가는 일

2. 마지막 점검.


그럼 이미, 나는 2020년을 마지막으로 점검, 그러니까 카운트다운하고 있는 중 아닐까.



+ 오늘은 [32살 앞 30날] 글쓰기를 한 덕분에, 고마운 연락도 받았다. 더 자세한 이야기도 쓰고 싶지만, 일단 그 연락을 받고 하게 된 일을 잘 하고 나서, 적어봐야겠다.



구보라


보고 듣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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