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내가 사는 경기도 1기 신도시에 무인카페가 갑자기 많이 보인다. 한때는 단지 내 상가나 유치원이었던 건물이 출산저하등으로 인해서 무인카페로 업종전환한 경우도 많다. 무인카페로 적합한 장소로 보이며, 다수 이용자가 아파트단지 주민일 것 같다. 이 장소들은 편의점과 커피를 두고 경쟁하는 것 같다. 이런 장소는 편의점도 함께 공존한다. 고객의 입장에서는 선택의 폭이 넓어졌지만, 편의점주 입장에서는 달갑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그만큼 커피시장도 더 다양하게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처음으로 동네에서 무인카페를 발견한 것은 코로나19가 한참 기승을 부리던 시기였다. 그때는 이런 현상이 한시적일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나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오히려 그때보다 더 많이 생기는 중이다. 새로 생긴 무인카페들에 가서 커피를 마셔보니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가끔은 아내와 둘만 있기도 해서 마치 카페를 통째로 빌린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렇게 내가 커피를 즐기는 방법이 하나 더 늘었다.
나는 커피를 가려서 마시지 않는 편이다. 한마디로 커피자체에 선입견이나 등급을 매기지 않는다. 믹스커피, 원두커피, 아메리카노, 에스프레소 등 커피에 한해서는 잡식성이다.
그러나 처음 방문하는 매장에서는 가능한 그곳의 대표원두가 궁금해서 아메리카노를 마신다. 그래서 내 취향에 맞으면 자연스럽게 재방문을 한다. 집에서는 드립으로 아메리카노 정도의 농도로 뜨겁게, 중간 그리고 식혀서 3단계로 마신다. 가끔씩 두유를 거품내서 함께 마시기도 한다. 차를 마실 때도 방법은 같다.
나의 이런 커피취향은 대학시절 카페에서 3개월간 아르바이트를 통해서 만들어졌다. 커피 만드는 것을 경험하면서 자연스럽게 커피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내 취향에 맞는 커피를 직접 만들어 마시는 것을 좋아한다. 커피에 관심이 있으니, 관련책도 읽고 전문가에게 배우기도 하며 나의 커피취향은 다양해졌다.
한 번은 두바이에 갔다가 중동지역의 커피를 마셔봤는데, 커피찌꺼기 때문에 당황했던 적이 있다. 이후 아들이 터키에서 사 온 같은 종류의 커피를 여러 차례 만들어 마시며 익숙해진 경험이 있다. 적응하니 나름대로 매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래전 이태리에서 유학한 친구집에 갔다가 알루미늄재질의 비알레티 기기로 만든 에스프레소를 마신적이 있다. 느낌이 좋아서 나도 같은 기기를 구매해서 커피를 만들어마셨다. 그러나 지금은 편리해서 가정용 캡슐타입 에스프레소 커피머신을 더 많이 사용한다. 그래도 가장 많이 사용하는 방식은 드립방식이다. 내 취향에 가장 잘 맞기 때문이다.
한때는 생두를 구매해서 직접 로스팅한 적도 있다. 그러나 그 방식은 이제는 거의 포기상태다. 지금은 다양한 원두를 사다가 내려서 마신다. 커피자체는 감정이 없다. 그러나 같은 커피라도 환경에 따라서 맛이 다르다. 물, 온도, 공기 등 변수가 많다. 심지어 나의 컨디션에 따라서도 맛이 다르다.
커피가 차와 함께 이렇게 대중화된 것은 여러 요인이 있다.
그중 보스턴 차 사건이 가장 큰 계기를 마련했다. 이는 1773년 12월 16일, 영국의 과도한 세금 징수에 반발한 북아메리카 식민지 주민들이 영국 선박에 실려 있던 차를 바다에 버린 사건이다. 미국 독립전쟁의 발화요인이 된 사건으로, 서양 차 역사에서 중요한 사건이다.
그리고 세계대전 때 미국이 유럽으로 보내는 군수품 중 커피가 있었던 사건이다. 갑자기 많은 커피가 필요한 미국정부는 네슬레 같은 기업을 통해서 대량조달을 받아야 했다. 기업은 커피생산을 위해서 아라비카 커피품종을 개량해서 대량생산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리고 인스턴트커피도 이때 본격적으로 대중화되었다. 맥스웰하우스나 네스카페 같은 기업이 인스턴트커피 시장을 선도하며 지금의 믹스커피의 원조역할을 했다. 지금도 내가 가끔씩 맛있게 즐기는 한잔의 믹스커피도 이런 역사의 산물이라는 사실이 흥미롭다.
커피자체는 인격이 없다. 그러나 커피를 접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다양한 격식과 차이가 생겼다. 가격, 만드는 방법, 마시는 장소등에 의해서 등급이 매겨지고 그 가격은 수십 배 차이가 난다. SNS등을 통해서 유명해진 카페의 커피는 비싸도 문전성시를 이룬다. 마치 그 커피를 마시면 자신이 좀 고급스럽거나 고상한 취향을 가진 것 같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반면, 같은 아라비카 원두지만 첨가물등으로 건강에 해롭게 느끼거나 홀대받는 커피도 많다. 좀 과장된 표현으로 "당신이 마시는 커피가 곧 당신의 삶이다"라는 생각에 빠질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커피의 품격은 결국 마시는 사람에게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맛있는 커피를 즐기려면 그때마다 상황에 맞는 환경을 만드는 수고를 해야 한다. 같이 마시는 사람도 여기에 해당된다. 언제, 어떤 환경에서, 누구와 어떻게 커피를 마실지가 커피의 맛을 다르게 하기 때문이다.
행복에 관하여 연구하는 서은국작가는 그의 저서 '행복의 기원'에서 행복은 '강도가 아닌 빈도'가 중요하다고 했다. 이에 대한 사례로 "좋은 사람과 함께 먹고 마시는 행위를 자주 하는 것이 행복이다."라고 했다. 커피는 이런 시간의 중요한 매개가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커피를 마실 때 자신의 컨디션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글을 마무리하고 커피를 한잔 내려서 마셔야겠다. 커피 한잔이 주는 삶의 작은 기쁨을 마음껏 느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