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번째 공식적인 교육은 지금의 초등학교로 명칭이 바뀐 '국민학교'로 시작했다. 8살이 된 봄에 어머니손을 잡고 가슴에 손수건을 달고 입학식을 하러 학교에 갔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학교에 처음으로 가는 길이 너무 즐거워서 가다가 넘어져서 무릎이 까졌으나 아픈 줄 몰랐다. "참으로 신기하다. 이런 기억은 아무리 오래되도 잊히지 않고, 오히려 당시의 주변상황까지 생생하다." 이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배움의 길은 역시 만만치 않다는 것을 상기하고는 미소를 짓는다.
당시에는 유치원에 가는 동네아이들은 드물었다. 나도 유치원을 다니지 않았기에 8살 이전까지는 동네아이들과 신나게 놀기 바빴다. 8살부터 교과과정에 맞추어 한글과 산수를 배우며, 이른바 '국민교육'을 받았다. '국민교육헌장'이라는 것도 뜻도 제대로 이해 못 한 채 의무적으로 달달 외웠었다. 6년의 국민교육만 제대로 받아도 글을 읽고 쓰고, 셈을할 줄 아니 세상을 살아가는데 큰 지장이 없다고 해서 명칭이 국민학교였다. 그러나 전 국민 모두가 이런 혜택을 누리지는 못했다. 당시만 해도 자녀를 많이 출산한 것도 한 가지 이유가 될 것이다. 자녀출산의 적정 수준이란 쉬울 것 같아도 어려운 문제다. 2명이 2명씩만 낳아서 잘 기르면, 문제가 없을 것 같아도 실제로 그런 나라는 극소수다. 넘치거나 모자란 나라가 대부분이다.
현재의 한국은 자녀출산이 한참모자란 0.8명 정도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이 너무 귀해서 아이들에 대해서 아낌없이 투자하는 것 같다. 부모는 물론이고 조부모들 같은 가족과 이웃들도 아이들을 보면 모두가 예뻐해 준다. 아파트단지를 산책하다 보면 어린이집에서 10명 정도의 어린아이들을 2,3명의 보육교사들이 돌보는 것을 보았다.
현재 한국의 대학은 전임교원 1명당 대학생 20명 정도를 적정기준으로 하고 있는 것에 비하면 어린아이들은 돌봄의 손길이 많이 필요하다. 취학 전 어린이와 대학생을 비교하는 것은 다른 차원이겠지만 그래도 큰 차이다. 지자체마다 아이를 출산하면 주는 공적인 혜택이 편차가 커서 혜택을 받기 위해 그런 지역으로 이사를 하는 부부도 있다고 한다.
얼마 전 아파트단지의 어린이집을 지나다가 신기한 광경을 목격했다. 어린이집 앞의 등원길에 해당어린이들 전원의 사진을 크게 붙여 이들이 모두 주인공이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 같았다. "맞다! 이들은 모두가 미래의 주역이자 주인공들이다." 그 주변에는 또 다른 풍경이 나를 놀라게 한다. 한때 유치원이었던 자리가 팻카페로 또는 무인 카페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 이런 변화는 모두 저출산의 영향이다. 저출산의 이유는 여러 가지겠지만, 지금으로서는 특별한 대안이 어려울 것 같다. 지금 어린이집에서 자라고 있는 미래의 주역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는 지금의 저출산이 어떻게 영향을 끼칠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