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파이어족이라는 단어가 아직 없었을 때, 그런 삶을 꿈꾸었던 적이 있었다. 최근 등장한 파이어족은 '경제적 독립, 조기 은퇴(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를 추구한다. 목표한 자산을 모아 경제적 자유를 얻고 이른 시기은퇴로 자유로운 삶을 즐기려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니 나는 이런 삶을 추구한 것이 아니었다. 너무 일에만 치중된 현실에서'일과 일상생활의 균형'을 생각하다 보니 조기에 경제적 자유를 얻고 자유롭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당시에는 나뿐만 아니라 주변의 동료나 친구들도 이런 말을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일과 생활의 균형'은 잘못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과 생활을 별개'로 보았기 때문이다. '일이 곧 생활'이 더 적절한 표현인 것 같다. 왜냐하면 사람은 일을 떠나서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일의 이유를 목표달성보다는 일 자체의 의미에 두면 더 좋을 것 같다. 목표를 달성하면 성취감이 생기겠지만, 그런 기분은 오래가지 못한다. 차라리 의미에 둔다면 일하는 내내 일에 대한 자긍심을 갖게 될 것이다. 글 쓰는 일을 한다면,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글을 써야겠다." 같은 의미라면 분명 자신의 일을 하는 전 과정에서 자긍심을 갖게 될 것이다.
산업사회 이전의 인류는 일에 대하여 은퇴라는 개념이 없었다. 농경사회나 유목사회는 과거나 현재도 은퇴가 없고 나이나 체력에 맞는 일을 계속한다. 그러면 은퇴라는 개념은 언제부터 왜 생긴 것인지가 궁금해서 다양한 자료를 검토해 보니, 산업혁명 이후 노사 간의 많은 이해관계를 겪으며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후 많은 시행착오와 협의를 거쳐 현재의 은퇴개념이 자리 잡게 되었다.
얼마 전 정년연장에 불만을 품은 프랑스국민들이 정부를 상대로 시위하는 것을 뉴스로 접하고 나의 눈을 의심했다. "이게 가능한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현실과 반대로 대치되는 상황이 아닌가?" 그들이 정년연장을 반대하는 이유는 은퇴가 늦어지면 연금수령이 늦어지고, 그만큼 은퇴 후의 삶이 더 짧아지기 때문이다. "우리보다 먼저 선진국이 되어 오랜 기간 선진국을 유지한 프랑스 사회도 일은 힘든가 보네?"라는 생각이더니 좀 씁쓸한 느낌이다.
반대로 현재 한국사회는 퇴직을 늦추는 것 때문에 시위하지는 않는 것 같다. 그러나 한국도 언제 프랑스처럼 변할지 모른다. 한국은 아직 은퇴는 연금생활이라는 공식이 프랑스보다는 덜 와닿기 때문인 것 같다. 의료를 제외한 사회적 안전망은 이제 막 선진국에 진입한 입장에서 편하지 못한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일하는 자체를 즐기는 사람도 있고 반대인 경우도 있다.
이처럼 '일'의 속성을 보면 어떤 일은 따분하고, 어떤 일은 돈이 되고, 어떤 일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는 의미등이 포함된다. 그래서 '일과 생활의 균형'이 아닌 '일의 균형'이 내게는 더 적절하다. 일이 곧 생활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여행을 하려고 해도 교통편을 예약하거나 숙소를 정하고 일정을 계획하는 행위도 일이다. 그리고 여행지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다 보면, 피곤해서 쉽게 잠이 든다. 나는 여가라고 생각하지만 내 몸은 무척 피곤한 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자칫 흥분해서 너무 무리한 여행을 하다 보면, 과로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외에 일반적으로 여가라 할 수 있는 레저활동도 일이다. 이런 일을 통해서 돈을 버는 사람도 있고 반대로 돈을 쓰는 사람도 있다. 역할과 생각의 차이다.
어떤 일을 하든 '일의 분배와 균형'이 중요하다. 학교의 수업이나, 군에서 훈련을 할 때도 50분 훈련 10분 휴식이 원칙이다. 그래야 더 효율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검증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 일의 현장에는 그런 개념이 없는 경우가 더 많다. 내 경우만 해도, 직장생활을 할 때나 사업체를 운영하는 등의 다양한 일을 하며 스스로 이를 적용하지 못했다. 유럽에서 공부와 일을 했을 때 그들에게는 이미 자리 잡은 '티타임'이 어색하게 느껴졌었다. "이렇게 하면서 어떻게 주어진 일을 다하나?"라는 의문이 들었다. 물론 오래전의 일이었지만, 지금은 나도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내가 사업체를 운영하면서 '티타임'을 시행해 보니 오히려 직원들이 업무에 더 집중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야근이나 특근을 하지 않으니 실제로 더 업무시간에 열심히 일했다. 지식사회의 지식근로자는 몇 시간 일하는 시간단위보다, 업무효율이 더 중요하다.
사실 "누가 이런 걸 몰라서 안 하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실제로 해보면 더 효율이 생긴다는 것을 이미 '티타임'문화가 자리 잡힌 사회가 증명한다.
한국사회가 아직 선진국 초기이니 보다 성숙한 선진국가로 자리 잡기 위해 일과 효율대한 연구나 실천이 활발해지면 좋겠다. 그러나 "일을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각자의 몫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