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 있는 나날'은, 원제 'The Remains of the Day'로 일본계 영국인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의 1989년 작품이다.
그는 노벨문학상과 맨부커상 작가이기도 하다.
작품은 제1차 세계 대전의 종전,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사이의 전간기를 배경으로, 영국 귀족의 저택에서 일하는 한 집사장의 관점에서 당대 영국의 시대상을 묘사하는 것이 주 내용이다. 나이 든 집사장은 주인을 섬겨 온 거의 평생의 시간들을 회상하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주인공이 그동안 잘못된 이상주의에 빠져서 평생을 살아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미 인생을 거의 다 살았는데, 이런 생각이 든다면 정말로 끔찍할 것이다.
지금까지 잘 살아왔다고 자부했는데, 노년에 그게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어쩔 줄 몰랐을 것이다. 만약 이게 나의 현실이라면 끔찍할 것이다.
이 작품은 20대 중반에 첫 소설을 쓴 작가가 30대 중반에 완성했는데, 자신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소설 주인공의 내면세계를 실감 나게 잘 묘사했다.
작품은 영화로도 제작되었는데, 나는 영화를 보다가 마치 다큐멘터리나 실제 사실로 착각할 만큼 몰입해서 보았다. 실제로 있을 것 같은 스토리이기도 하고, 일부는 내 이야기 같기도 해서 더 공감이 갔다.
나는 영화를 보며 장르는 다르지만, 메시지는 유사한 '텅 빈 레인코트'라는 작품을 떠올렸다. 책의 제목처럼 표지에는 옷만 있고 사람이 없는, 마치 투명인간을 떠올리게 하는 그림이 인상적이다. 이 책은 아일랜드에서 태어나고 영국에서 활동한 '찰스핸디'가 실제로 경험한 자기 자신과 주변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로 구성된 작품이다.
피터 드러커와 톰 피터스 등 세계를 움직이는 사상가 50인 중 한 사람인 작가는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경영 사상가이기도 하다. 다국적 석유 회사 셸의 간부를 거쳐 런던 비즈니스 스쿨에서 경영학을 가르쳤고, 이후 윈저 성에 있는 세인트 조지 하우스 학장을 역임했다.
직장인과 교수에 이어서 작가로 평생을 살다가 92세인 2024년 말에 타개하기까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10여 권의 책들을 집필했다.
'텅 빈 레인코트'는 1994년 ‘올해의 경제 평론가 상’을 수상하며, 전 세계적으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현재의 기준으로 보면 30여 년 전의 영국배경의 스토리다. 주된 내용으로는, 1990년대 초 자본주의 미래상 속에서 자본주의의 불가피한 역설과 이에 따른 인간성 상실의 문제를 조명했다. 사회철학자 이기도한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개인과 사회, 기업, 국가에 관한 미래 예측을 제시하였다.
나는 이 책을 몇 번이고 틈날 때마다 읽고 있는데, 현재 우리의 삶과 내 주위를 둘러싼 환경과 차이를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정확하게 들어맞는다. 마치 책을 집필한 30여 년 전에 지금의 한국실정을 예견하고 쓴 것 같다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다. 실제로는 30여 년 전 영국의 국민소득이 지금의 한국 국민소득과 비슷해서 그런 생각이 들 수도 있다.
나는 저자가 책을 집필한 몇 해 후에 영국의 대학원에서 공부하며 당시에도 선진국이었던 영국인들의 삶을 부러워했었다. 그러나 선진국이 된다고 모든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선진국으로 진입한 현재, 한국이 처한 저출산, 고령화, 연금문제 등은 당시 영국의 문제이기도 했다.
책을 처음 읽으며 "왜 작가는 책 제목을 '텅 빈 레인코트'라고 지었을까?"를 궁금해했었는데, 다 읽고 나니 적절한 제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의 부제인 "왜 우리는 성공할수록 허전해지는가?"는 작가가 자본주의 체제의 한계를 말하는 것 같다.
그러나 나는 가끔씩 이 책을 통해서 더 나은 현실을 만들 수 있는 새로운 기회와 희망의 메시지를 발견하는 중이다.
'남아있는 나날'과 '텅 빈 레인코트'는 각각 베스트셀러라는 것과 영국배경이라는 사실 이외에 접점이 별로 없다. 그러나 자본주의와 선진국을 먼저 경험한 영국에서 우리가 현재 마주한 갈등의 실마리를 조금이나마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두 권의 책을 각각 읽고 나면, 사람들이 그토록 열망하는 '자본주의체제 에서의 성공'에 대한 공허함을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다. 물론 이마저도 '성공한 사람들만이 감당해야 할 몫'이기는 하다. 성공을 위하여 자신의 젊음과 많은 욕망을 희생하며 감내해 왔지만 결국 성공뒤에 남는 것은 '공허함'이라니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그러나 나는 이 책들의 내용에 반문을 제기해 본다. "그래도 그 성공을 추구하며 감내했던 시간 중에서 행복과 희망을 느끼지 않았었는지?
" 만약 대답이 "Yes"라면, 그런 공허함은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 같다. 반대로 대답이 "No"라면, 참으로 안타까울 것 같다.
글을 읽는 분들이 아직 성공을 위하여 자신의 욕망을 절제하며 사는 사람들이라면, 가끔씩 자신이 훗날 성공하고 나서 어떤 대답을 할지 체크해봐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