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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여행너머

계란의 운명

by 피터정

모처럼 시간을 내서 경기도 양주의 B형님 농장에 감자를 캐러 가기로 한 날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하필 하지에 맞춰 비가 오다니..."


하지에 맞춰서 감자를 캐면 삶았을 때 더 '포실포실'한 맛이 난다. 작년에도 이 맛을 한동안 아침마다 느꼈다.


올해는 작년처럼 감자를 캐지는 못했지만, B형님이 미리 캐놓은 감자를 출하하는 것을 도왔다. 부슬부슬 비가 오는 농가는 나름의 운치가 있다. 감자출하를 마치고 모처럼 여유를 부리며 한가롭게 그늘막 평상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평상 주변에 닭, 거위, 기러기가 모여든다. 이들은 밤에는 닭장에서 잠을 자고, 낮에는 앞마당을 산책하며 반려동물처럼 주인을 따른다. 새들도 주인에게 애교를 부린다. 이들에게는 각각 이름도 있다.


이들은 B형님이 직접 알을 가져다 자연부화했다. 거위알은 기러기가 품었다고 한다.


머리 위에 멋진 꽃벼슬이 있는 6살이 넘은 닭, 청란에서 나온 청계, 기러기알에서 부화한 기러기 그리고 부화한 지 60일 차 거위 등 10여 마리다.


이들이 서로 자신의 리더십을 발휘하며 동네의 개들과 사투를 벌이고 있다. 조용한 동네는 평화로워 보여도 잠시 주인이 방심한 틈을 타서 이들의 평화는 산산조각이 난다. 어쩌면 자연의 섭리, 생태계의 질서일 수도 있다. 얼마 전에도 닭이 개들에게 당했다고 한다.


먹이사슬, 약육강식의 관점에서 보면 큰 문제는 없다. 그러나 가금류는 주인의 보호를 받는다. 마치 양치기의 보호를 받는 양 떼처럼. B형님이 이들의 양치기다. 그걸 아는지 이들은 B형님을 잘 따르는 것을 보면 신기하게 느껴진다. B형님도 마치 이들을 개나 고양이 같은 반려동물처럼 다룬다.


이런 장면을 보니, "계란이 다 같은 계란이 아니구나?" 계란은 부화가 되지 못하고 식량으로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쩌다 부화해도 역시, 비좁은 닭 사육장에서 성장하지 마자 식품이 될 운명의 닭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B형님의 가금류들은 0.01%도 넘는 행운을 가진 생명체들이라고 생각하니 더 귀하게 느껴진다.


닭은 자연상태에서 15년에서 20년까지 산다고 한다. 그러나 공장식 사육에서 고기를 목적으로 한 육계는 길어야 두 달을 산다. 매년 복날이 가까워지면, 삼계탕용으로 30일 정도 된 닭들이 떼로 죽음을 맞이한다. 달걀을 목적으로 하는 산란계 암탉은 1년 반에서 3년까지 살지만, 삶의 질은 떨어질 것이다. 이곳의 닭들은 그런 닭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랫동안 행복하게 산다. 알도 낳고 싶을 때 알아서 낳는다. 수탉은 그저 멋진 모습으로 무리를 이끈다. 이들에게 주인은 그야말로 생명의 은인이다.


사람도 바로 태어난 아기나, 어머니의 뱃속에서 자라는 아기는 자라서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어떤 환경에서 태어날지 모르는, 마치 계란처럼 운명일 수도 있는 부분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사람에 대한 세상의 원리는 성장하며 자신의 몫인 부분이 더 많다. 물론 태어난 국가나 어떤 부모나 환경을 만날 지에 대한 변수는 작용한다.


이런 점에서 계란은 사람과 너무 다르다. 당분간 1알의 계란을 대할 때마다, 그 안의 생명체가 부화한다면 멋진 닭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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