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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여행너머

경주 '사랑채와 도솔마을'의 추억

by 피터정

2004년에 가족과 경주여행을 다녀온 이후, 21년 만에 재방문을 했다.

강산이 두 번은 족히 변할만한 기간이었지만, 그래도 '1000년 고도 경주'의 독특한 분위기는 그대로 일 것을 기대했다.

그러나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니었음을 느끼기에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번 경주방문은 내게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20여 년 전 우리 가족은 여름휴가를 맞아 경주 대릉원 주변의 한옥 게스트하우스인 '사랑채'에서 한옥숙박 체험을 했다. 그곳은 사장님 부부와 진돗개까지 3 식구가 200여 년 된 한옥집을 수리해 가며, 당시로는 드문 외국인이 많이 방문하는 B&B형식으로 운영했다. 글로벌 여행가이드북인 '론리플래닛'에도 실리게 되었다고 사장님님이 살짝 귀띔해 주었다. 근처에 '도솔마을'이라는 지역색이 물씬 풍기면서 맛도 좋은 식당을 사장님께 추천받아 가족과 즐거운 식사를 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사장님과 친해져서 개인적인 이야기도 그분의 아지트인 '전각공방'에서 나누었다. 전각작품들을 보니 사장님은 전각작업에 조예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런 경험들은 생각하지 못했던 여행의 보너스로 느껴졌다.

여행일정을 마치고 귀가한 우리 가족은 그곳에서의 추억을 오랫동안 나누었다.

이후 휴가를 계획할 때면, 다시 갈 것을 고려했지만 결국 21년 만에 아내와 단둘이 방문했다.

오랜만에 다시 방문한 경주는 첨성대와 천마총은 거의 그대로였지만, 금관총과 신라고분 정보센터 등 새로운 장소들이 많이 생겼다. 문화재를 소개하는 형식도 첨단기술이 많이 적용되어 실감 나서 좋았다.

다시 방문한 우리 가족의 추억이 담긴 장소에 가보니 게스트하우스 자리에 카페가 생겼다. 당시의 추억을 기대했기에 좀 실망했지만, 그래도 20여 년 전의 기와집은 그대로였다.

다행히 '도솔마을'이라는 식당은 그대로 있어서 그곳에서 식사를 했다. 식사를 마치고 식당사장님께 '사랑채'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던 분은 사정이 생겨서 7년쯤 전에 그곳을 정리하고 남해로 이사하셨다고 했다.

그래도 당시의 추억이 그리워서 장소는 같으나 업종이 변경된 '1894 사랑채' 카페에서 티타임을 가졌다.
우리 가족이 묶었던 방은 그대로였다. 다만 차 마시는 공간으로 쓰임새만 바뀌었을 뿐이다.

20여 년 전에 여러 나라의 여행객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밤하늘의 별을 보던 정원도 그대로다. 정원을 둘러보니 약간은 외진 곳에 '사랑채'라는 전각이 수줍게 놓여있었다. 전각을 본 순간 틈나는 대로 전각 작업을 했던 당시의 사랑채 사장님이 떠올랐다.

카페를 나오면서 나는 아내에게 그 전각은 당시의 사랑채 사장님의 작품일 것이라고 했다. 사실을 알 수는 없지만 나는 그렇게 믿고 싶었던 것 같다.


이번 경험을 통하여 '장소가 가진 힘'이 생각보다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잊고 있던 기억을 소환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했던 경험을 통하여 오늘을 살아갈 때 시간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 준다.


앞으로 어떤 장소에서 나의 즐거웠던 기억을 소환해 낼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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