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하루 만에 코끼리가 벼룩이 된 것이지만 사실 실감은 나지 않았다. 15년 넘게 새벽 6시에 일어나서 출근한 것이 습관이 되어서 같은 시간에 잠이 깼다. 그러나 출근은 하지 않아도 되는 현실이 좀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오늘부터 벼룩생활 1일 차지만 사업자로서 가장 먼저 사업자등록을 준비해야 했다. 그래야 회사이름과 사업장도 정해지며 명함도 만들고 영업도 할 수 있다는 것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당연한 일이다.
사업자등록은 세무서에서 해야 하는데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는 구청 같은 데서 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중에 사업하면서 이해를 했다. 결국 세금을 내야 하기 때문에 세무서에서 하는 것이다. 아직 사업을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세금을 내야 하는 의무가 있다는 현실을 직시하게 되었다. 많이 벌어서 세금 많이 내면 모두에게 좋은 일이지만 과연 "세금을 낼만큼 많이 벌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봤다.
세무서에서 사업자등록을 위한 서류를 작성하다 보니 사업자등록을 할 때 업종과 업태를 정해야 했는데 '업종인 디자인개발'은 일종의 컨설팅일로 분류되어 업태가 서비스로 분류되었다. 의료분야나 법률분야도 서비스 업태에 속한다는 것을 이때 처음으로 알았다.
디자인개발을 대행하는 일은 일종의 지식서비스 이기 때문에 세율도 제조업 보다는 높게 책정된다는 것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간이과세와 일반과세, 그리고 개인과 법인등의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데 솔직히 의사결정하기 어려웠다. 세금계산서를 발행하는 분야니 일반과세로, 그리고 개인사업자를 선택했다. 나중에 규모나 매출이 커지면 법인으로 변경해도 된다고 담당자가 알려줬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직장생활만 하다가 사업을 시작하려니 모르는 것 투성이었다. 마치 대학생이었다가 다시 초등학생이 된 기분이었다. 진행하다가 막힐 때면 인터넷의 포털 같은 데서 검색하기도 했지만, 내입장에서 꼭 필요한 서비스와 정보를 얻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물론 주변 지인 중에 이런 문제를 물어볼만한 사람이 없지는 않았다. 나 같은 입장을 먼저 경험하고, 이미 같은 업종에 자리 잡은 것으로 보이는 지인들이 있었다. 그러나 잠정적 경쟁자가 될 내게 선뜻 나의 궁금증을 조언해 주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직장선배였던 한분이 나보다 먼저 같은 경험을 하고 내게 많은 도움을 주셨다. (나중에 그 선배님이 어려워져서 사업을 정리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마침 나의 개인회사가 법인전환을 했을 무렵, 삼고초려하여 그 선배님을 우리 회사의 고문으로 모셨다.)
사업을 시작하고 죄충우돌, 우여곡절을 겪으며, 드디어 창업 후 4년이 지나서 매출과 규모 등을 고려하여 법인으로 전환을 하기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