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나의 어머니는 주변 사람들에게 "얘는 뭐든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어떻게든, 몰래 라도 하는 아이랍니다."라고 하셨다.
어렸던 나는 어머니가 이런 말을 사람들에게 하면, 부끄러워서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왜냐하면, 그 하고 싶은 일들이라는 것들이 대부분 나쁜 일은 아니었지만어머니 몰래 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그러나 그 일들이 '어설픈 아이의 행동이었고' 들켰기 때문에 뒤통수가 찔렸었다.
이런 나의 성향 때문이었는지
내가 성장하면서 결정해야 하는 진로, 결혼 같은 중요한 일들에 대하여부모님은 내 의견을 존중해 주셨다.
특히 아버지는 내 생각이 좀 마음에 들지 않아도
큰 문제가 없다면 기꺼이 내 의견을 존중해 주셨다.
그래서 나도 두 아들의 진로나 의사결정에 큰 문제가 없으면 자신의 생각대로 하도록 응원한다.
그런 이유로 내가 결정한 일에 대해서는, 나중에 후회되는 일이 생기더라도 끝까지 스스로 책임을 진다는 생각이 지금까지 나를 지배해 왔다.
나는 운 좋게 평소에 하고 싶은 전공을 선택하여 대학을 갔고 국내와 해외의 대학원에서 공부했다.
그리고 같은 전공으로 원하던 직장에서 근무했고, 창업과 대학에서 강의등을 병행할 수 있었다.
내 분야는 자격증보다는 실무가 더 중시되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대학을 졸업하면우선 실무를 경험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어느 정도 실무능력을 갖추고 대학원에서 공부도 더하고 동일 분야로 창업하고자 했다. 가능한오랫동안 디자인프로젝트를 하며 세상에 필요한 제품을 개발하는 삶을 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원하는 직장에서 실무경험을 하며 경력을 쌓아갔다. 때가 되면 진급도 하고 적지 않은 연봉과 성과급까지,
그리고 각종 복지혜택이 많은 만족스러운 생활이었다.
그러나 언젠가 내전공을 살려서 창업해야겠다는 생각이 마음속 깊은 곳에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직장생활 15년을 넘긴 때였다.
퇴사와 창업을 결심하고, 아내에게 의견을 물으니 아내도 걱정은 되지만 기꺼이 응원을 해주었다. 오히려 당시 초등학생인 아들이 걱정을 많이 했다. 중학생인 아들은 아빠의 삶이니 아빠의 결정을 응원한다고 했다. 순간 큰아들이 중학생이지만 정신적 독립을 한 것 같아서 힘이 났다. 나는 혹시라도 사업이 생각대로 되지 않아서 두 아들의 경제적 지원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우려했다.
창업하니 삶이 바뀌었지만 비교적 빠르게 적응했다. 직장 때 보다 2배는 일을 더해야 했지만 나의 선택이니 그 시간을 견뎌야 했다. 일하는 시간은 더 많아졌지만, 일의 형식이 바뀌었을 뿐 일의 본질은 크게 변한 것이 없었다. 24시간이 모자란 다는 생각을 했지만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가면서 사업도 법인화하며 자리가 잡혀갔다.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대학에서 내 전공분야로 강의할 기회가 생겨서 사업과 병행했다.대학을 졸업하며 막연하게 원했던 삶들을 하나씩 실현하는 과정마다결단과 용기가 필요했다.
그 과정을 통하여 내가 새로운 일들을 실현하는데 진입장벽을 크게 느끼지 않았다는 것을 발견했다.
아마도, 어릴 때 어머니가 나의 '마이웨이 기질'을 발견하고 인정해 주신 것이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요즘은 우리나라도 한 자녀 가정이 많다. 그래서인지 아이의 삶에 부모가 함께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면 자녀가 성장해서도 부모로부터 정신적 독립을 하지 못한다.
이 글을 쓰다 보니 김영하작가의 단편소설 '오직 두 사람'의 주인공이 생각난다. 소설의 주인공은 어릴 때부터 아빠와의 돈독한 관계로 인하여 모든 것을 아빠의 생각대로 살아온 딸이다. 자신의 삶 전체가 마치 아버지의 생각에 의하여 결정되어 왔음을 중년이 넘어서 깨닫는다는 내용이다. 그녀는 아빠의 죽음을 계기로 돌이키기에는 너무 멀리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의 주인공이지만 얼마나 허망할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시대마다, 각 가정마다 자녀와의 소통방법이 다르겠지만 어릴 때부터 자녀의 정신적 독립을 배려함이 필요하다.
자신이 결정하면, 자신이 책임지지만 부모가 결정해도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