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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터정 Nov 04. 2024

차선책이 반복되면 최선책이 된다

누구나 최선을 추구하지만, 현실적으로 차선을 선택하며 사는 경우가 많다. 대학진학에서 자신의 최선목표를 위하여 재수나 삼수를 하는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다.


나 역시 대학진학에서 차선책을 선택했다.


서울태생인 나는 대학졸업과 동시에 취업과 결혼을 했다. 이어서 5살 터울로 2명의 자녀를 두었다. 현재까지 30여 년 한 분야에서 일하며 평범한 삶을 산다. 돌이켜보니 현재의 집에서 15년간 살고 있다.   

   

얼마 전 호적등본을 떼어보고, 태어나서 지금까지 내가 이사를 다닌 기록이 한 페이지를 넘어가는 것을 보고 놀랐다. 내 삶이 평범했다고 생각했는데, 호적등본의 거주지 기록을 보니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스쳤다.   

   

내가 결혼 전까지 부모님은 이사를 많이 다녔다. 그래서 나의 초, 중, 고등학교 시절은 혼란스러웠다. 부모님은 이유가 있어서 자주 이사를 했겠지만, 당시 어린 마음에 나는 나중에 크면 한집에 오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결혼 후 한 번도 전세나 월세를 살아본 적이 없다. 결혼하며 부모님과 함께 살았고, 이후 처가에서도 함께 살았다. 월급을 모아 결혼 후 7년 만에 수도권 1기 신도시에 내 집마련을 하고 입주했다. 입주 전에 계속 무주택자격으로 아파트청약을 했지만 내게는 당첨이라는 행운은  없었다.


그래서 내 집마련의 최선책이 아닌 차선책으로 대출이 있는 작은집을 계약했다. 초등학교 앞이라 입학을 앞둔 큰아이를 위한 선물 같았다.

이후 둘째가 태어나고 성장하면서 집이 점점 작게 느껴졌다.




현재는 같은 지역의 좀 더 넓은 집으로 이사해서 15년째 살고 있다. 둘째는 이곳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이다. 직장이 멀어서 출퇴근하기는 힘들지만 우리 집에서 원하는 기간만큼 행복하게 지내는 것이 좋다.      

그래서 크게 이사의 필요성은 느끼지 못한다. 아마도 나와 같은 세대의 입장이 비슷한 분들이 많을 것이다. 아파트는 오래되었지만 익숙함 때문에 집과 같이 나이 들어간다는 생각이 든다.


동네산책을 하다 보면, 같은 시간을 보냈는 나무는 계속 성장하고 건물은 계속 낡아간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나는 이런 작은 변화와 익숙함이 좋다. 영국과 미국에서 실거주했을 때, 100년 넘은 집에서도 가족이 살았지만  불편하지 않았다.


집도 사람처럼, 고장이 나면 고치면서 산다고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홍콩에 갔을 때 100년 넘은 낡은 고층아파트를 보았다. 그들은 집값이 비싸서 그런 곳이라도 살 수만 있으면 감사하는 것 같다.     


요즘 여러 가지 요인으로 집값이 비싸져서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다. 특히 새로 독립하는 젊은 세대들이 힘들다. 점점 편리한 생활에 익숙해지다 보니, 누구나 생활인프라가 좋은 지역의 새 아파트를 원한다. 그러나 그런 곳은 한정적이다. 반면에 선호도가 떨어지는 지역이나 주택은 반대현상이다.  


월급 모아서 내 집마련에 걸리는 시간이 이전보다 어렵다. 그래서 ‘영끌’이라는 표현도 일반화되었다. 나는 가끔 “내가 지금 사회초년생이라면 어떨까?”라는 질문을 한다.


선뜻 답을 하기는 어렵지만, 아마도 이전과 같은 선택을 할 것 같다. 즉, 최선보다는 차선을 택할 것 같다. 차선책이 여러 개 모이면 결국 시간이 나를 최선의 결과로 안내하는 것을 긴 시간을 지내며 체험했기 때문이다. 나는 차선에 익숙한 삶을 살았다. 그렇다고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차선을 받아들이는 것도 용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만한 대가도 필요하다.


산을 오를 때 정상까지 케이블카를 타고 직선으로 올라가면 빠르지만 중간에 소소한 경치를 경험하지 못한다. 정상을 향한 등산로를 이용하면 케이블카보다 느리고 힘들지만 나름대로 좋은 점도 있을 것이다. 둘레길로 올라가면 천천히 가지만 결국은 올라간다. 어느 방법이 가장 좋다고 할 수는 없다. 사람마다 입장과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행복은 현재에서 그리 멀리 있지 않다는 것도 최근에 느끼는 감정이다. 내일의 행복을 위해서 오늘 너무나 큰 대가를 치르는 삶은 현재를 사는 것이 아닐 수 있다. 내일은 오직 세상을 만든 신만이 알고 있다.

  

어디에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지는 각자의 입장마다 다르다. 그러나 모두가 한 가지를 원하면 그 가치는 실제가치보다 부풀려지게 마련이다. 세상의 이치가 그렇다.   


그래서인지, 오래되고 낡았지만 현재 살고 있는 나의 집에 고마움을 느낀다.


재수나 삼수를 선택하지 않고, 차선으로 선택한 대학도  현재는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생명체는 유전적 요인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자신의 노력으로 극복된다"는 연구결과들이  많이 발표된다. 이런 연구결과들이 '차선을 최선으로' 만드는 것과 맥을 같이 한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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