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모습의 ‘나’, 괜찮을까?
25.08.22 오늘의 기록
요즘은 문득 그런 생각을 자주 해요.
사람이란, 한 가지 모습으로만 살아가진 않는 것 같다고요.
그래서 오늘은 그런 이야기 —
“나라는 사람은 어쩌면 여러 명일지도 모른다.”
이 주제로 함께 이야기 나눠보고 싶어요.
이 이야기가 어떤 의미냐면요.
이런 생각이 문득 들더라고요.
예를 들어서 저 같은 경우에는 어떤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에게 잘 맞춰주는 편이에요.
그런데 또 다른 시선으로 보면,
그게 오히려 나를 잃어버리는 것 같고
내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거든요.
그런데 지금 돌아보면,
단지 스스로가 낯설어서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겠다 싶어요.
만약에 지금도 “나는 누구일까?”, “나는 어떤 걸 좋아하고 싫어할까?”
이런 질문들을 던졌을 때,
바로 대답할 수 있는 것도 있지만
의외로 쉽게 떠오르지 않는 답들도 있잖아요.
저는 그게, 아직 저와 충분히 친해지지 않아서
내 안의 다른 나를 잘 몰라서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해요.
예전에도 이런 고민을 자주 했었는데,
그때 제가 음악을 배웠던 스승님께서
이런 말씀을 해주신 적이 있어요.
“여러 캐릭터를 한 번 만들어 봐.”
그때는 그게 무슨 뜻일까 싶었어요.
그래서 한동안 고민하고 찾아보고, 또 스스로 연구도 해봤죠.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말이 조금씩 이해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인간관계에서도 그렇지만,
제 일상에서도 그 말이 참 많이 도움이 되더라고요.
사실 하루는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지잖아요.
그 하루를 어떻게 쓰느냐는 사람마다 다르고,
저도 어떤 날은 하루가 허무하게 흘러가 버린 것 같고,
또 어떤 날은 낯선 하루를 보내기도 해요.
그럴 때마다 나는 왜 이럴까 자책하기도 했는데,
이제는 조금 다르게 생각해요.
그래, 나는 한 명이지만 여러 캐릭터일 수도 있겠다.
그래서 청소하는 나, 노래하는 나, 기타 치는 나,
운동하는 나, 쉬는 나…
이렇게 각각의 나를 따로 두고 바라보다 보니
하루가 조금은 다르게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마치 한 사람이 모든 걸 짊어지는 게 아니라
서로 바통을 주고받으며 달리는 느낌이랄까요.
그래서 하루가 예전보다 덜 무겁고, 덜 지치게 느껴졌어요.
예전에는 상황마다 달라지는 내 모습이 불안하기도 하고 싫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그것도 나라고 받아들이게 되었어요.
상대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내 생각이나 태도가 매번 같지 않아도 괜찮다고요.
영화 〈인사이드 아웃〉 보셨나요?
거기 보면 여러 감정 캐릭터들이 나오잖아요.
버럭이, 소심이, 행복이처럼요.
그걸 보면서도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결국 그 모든 캐릭터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어가는 게 아닐까 하고요.
그래서 요즘은 이런 생각을 자주 합니다.
우리가 매일 똑같은 모습일 필요는 없고,
하루를 다 해내지 못했다고 해서 부족한 게 아니에요.
나라는 사람이 여러 모습으로 살아가고,
그 모습들이 이어져 결국 ‘나다운 길’을 만들어가는 것 같아요.
그게 어쩌면,
조금 덜 지치게 살아가는 방법 아닐까 싶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캐릭터의 ‘나’와
오늘 하루를 함께 보내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