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9 부질없는 후회
오늘은 낯선 꿈을 꾸고 잠에서 깼다. 꿈속에서 나는 남편과 다시 사이가 좋아져 있었다. 남편의 품에 폭 안긴 채 위로를 느끼고 있었고, 그 순간만큼은 모든 것을 다 의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실 결혼 기간 중에도 그런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말이다. 꿈속의 남편은 너무나도 따뜻하고 포근했다. 나는 내가 독립적인 사람이라고 믿어왔지만, ‘남편’이라는 존재에 의지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꼭 그 사람이어야만 했던 건 아니었을 것이다. 다만,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은 마음은 분명히 있었다. 꿈에서 깬 뒤에는 이혼을 진행 중인 것이 후회스러웠다. ‘그 좋은 사람에게 내가 왜 그랬을까?’ 하는 생각에서부터 시작해, ‘나도 부족한 점이 많았는데…’ 하는 자책감까지 밀려들었다. 심지어 다시 재결합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까지 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마치 정신을 차리라는 하늘의 계시처럼, 저녁에 공동 지인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가벼운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는데, 첫 마디가 “이혼 잘했다.”는 말이었다. 그 지인은 우리를 소개해 준 사람이었고, 지금까지의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기도 했다.
“이혼 잘했다”는 말의 이유를 듣고 나니 아침의 감정들이 부질없이 느껴졌다. 전남편이 2주 전쯤 경포대에서 만난 여자들과 어울렸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양육비만 주면 충분히 아빠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는 것도 전해졌다.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2주 전이면 이혼 소장이 법원에 접수되기도 전이었다. 변호사를 통해 접수를 신청하긴 했지만, 법적으로는 여전히 부부였던 시기였다. 계산을 해 보니, 그 주말에 남편은 강원도에 있는 친구와 등산을 간다고 말하며 아이와의 면접 교섭을 거절했었다. 그때 내가 “아직 이혼이 완료된 것도 아니니 서류가 정리되기 전까지는 예의를 지키자.”고 했던 말을 떠올렸다. 물론 안 지킬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막상 사실을 확인하니 기분이 묘했다.
이 사람과 이혼하게 된 이유가 1년 전의 여자 문제였다는 사실을 다시 상기하게 되었다. 그래서 전혀 놀랍지 않으면서도 여전히 실망스러웠다. 나는 이렇게 귀여운 아기가 집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으면 매주라도 보고 싶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는 여자를 만나기 위해 아이와의 면접 교섭을 포기했다.
그 정도로 애살 있는 사람이었다면 이혼에까지 이르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자, 그저 ‘어휴.’ 싶은 마음뿐이었다. 어쩐지 머리도 하고, 다이어트도 하느라 아이와의 만남도 미루더니, 그 모든 퍼즐이 맞춰졌다.
이 사람의 행동들이 아직까지도 나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싫었다. 더 이상 신경 쓰고 싶지 않은데, 여전히 그의 말과 행동에 흔들리는 내가 싫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마음이 아픈 건, 이런 수준의 아빠를 둔 내 아이가 너무 불쌍하다는 것이었다.
이제는 그 사람을 완전히 지우고 내 아이와의 삶에만 집중해야 한다. 그렇지만 오늘 하루는, 후회와 실망이 뒤섞인 채 복잡한 감정으로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