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지나이다 니꼴라예브나 기삐우스
노래
지나이다 기삐우스
내 창은 지상의 드높은 탑,
지상의 드높은 탑.
보이는 것은 오직 저녁노을 물든 하늘,
저녁노을 물든 하늘.
하늘은 어쩐지 공허하고 창백하네,
너무도 공허하고 창백하네…
하늘은 동정하지 않네, 가난한 마음을,
가난한 마음을.
아아, 미칠 듯한 슬픔에 잠겨 나는 죽어가네,
나는 죽어가네.
나는 갈망하네, 미지의 것을,
미지의 것을…
나는 모르네, 이 열망이 어디서 왔는지,
어디서 왔는지.
그러나 마음은 기적을 원하네,
기적을!
오, 실현되기를, 있을 수 없는 일이,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
창백한 하늘이 나에게 기적을 약속하네,
하늘이 약속하네.
나는 눈물 없이 울고 있네,
-믿지 못할 약속 때문에,
믿지 못할 약속 때문에…
내겐 절실하네, 이 세상에 없는 것이,
이 세상에 없는 것이. (1893)
러시아 현대대표 시선 『삶은 시작도 끝도 없다』
(이명현 엮고 옮김) 창비세계문학 2014
▪︎5월 독서과제 시선집 연재(1)
작품의 배경과 시평
지나이다 기삐우스(Zinaida Gippius)의 1893년 작 <노래(Песня)>는 러시아 상징주의 문학의 새벽을 알린 기념비적인 작품입니다. 당시 24세였던 기삐우스의 날카로운 감수성과 형이상학적인 갈망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이 시에 대한 배경과 시평을 정리해 드립니다.
1. 작품의 시대적·예술적 배경
러시아 상징주의의 서막
1890년대 러시아는 사실주의의 시대가 저물고, 인간의 내면과 초월적 세계를 탐구하는 '은의 시대(Silver Age)'가 막 오르던 때였습니다. 기삐우스는 그 중심에서 '데카당스의 여왕'이라 불리며 새로운 시대를 이끌었습니다.
고독한 '실프(Sylph)'의 탄생
[註] 실프(Sylph)는 사랑스럽고 날씬한 젊은 여성 또는 소녀를 말합니다. 우아한 발레리나들의 행렬을 실프로 묘사할 수 있습니다. 실프는 항상 젊고 여성적이며 날씬하고 거의 초자연적인 가벼움과 우아함으로 움직입니다. 실프(sylph)의 원래 의미는 시인 알렉산더 포프(Alexander Pope)가 언급하고 여러 셰익스피어 희곡에도 등장하는 공기의 정령인 신화 속 요정 같은 존재였습니다. 19세기 프랑스 발레 '라 실피드(La Sylphide)'에서 날씬한 소녀, 특히 발레 댄서를 묘사하기 위해 '실프'라는 용어를 사용하게 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기삐우스는 자신을 지상의 질서에 속하지 않는 존재로 규정하곤 했습니다. 1893년은 그녀가 남편 메레쥬꼬프스키와 함께 상트페테르부르크 문단의 중심인물로 떠오르든 시기로, 이 시기 그녀의 시들은 지독한 자기 고립과 영성(spirituality)에 대한 갈구를 특징으로 합니다.
2. 작품 분석 및 시평
공간의 상징성: '지상의 드높은 탑'
시는 화자가 '드높은 탑'에 앉아 세상을 내려다보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여기서 탑은 물리적 장소라기보다 세속적 가치로부터 자신을 격리한 화자의 정신적 고고함을 의미합니다. 아래를 보지 않고 '저녁노을 물든 하늘'만을 바라보는 행위는 지상의 삶을 거부하고 수직적 초월을 꿈꾸는 상징주의자의 태도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역설적 갈망: '있을 수 없는 일'에 대한 믿음
이 시의 핵심은 결핍과 갈망의 역설에 있습니다.
∎ 하늘의 이중성: 하늘은 '공허하고 창백'하며 인간을 '동정하지 않는' 냉혹한 공간입니다. 하지만 화자는 동시에 그 하늘에서 '기적'의 약속을 읽어냅니다.
∎ 불가능에 대한 욕망: 화자가 원하는 것은 '이 세상에 없는 것'입니다. 이는 단순한 슬픔이 아니라, 유한한 인간의 육신에 갇힌 무한한 영혼이 느끼는 근원적인 향수(nostalgia)입니다.
형식적 특징: '노래'라는 제목과 반복
각 연의 첫 행을 뒤 행에서 반복하는 구조는 마치 주문(incantation)이나 비탄에 잠긴 노래의 후렴구 같은 효과를 줍니다. 이러한 반복은 화자의 절망을 심화시키는 동시에,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미지의 것'에 대한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3. 총평
"지독한 허무 위에서 피어난 가장 오만한 기도"
기삐우스의 <노래>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을 꿈꾸는 인간의 비극적 운명을 아름답게 승화시킨 수작입니다. 그녀는 슬픔에 매몰되지 않고, 오히려 그 슬픔을 동력 삼아 지상 너머를 응시합니다.
"눈물 없이 울고 있다"라는 표현처럼, 이 시는 감상적인 애상을 넘어 존재의 근원적인 고독을 철학적으로 사유하게 만듭니다. 1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이 시가 울림을 주는 이유는, 우리 모두 마음 한구석에 '이 세상에 없는 무언가'를 향한 텅 빈 창을 하나씩 갖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기삐우스의 미학 세계
지나이다 기삐우스의 미학 세계는 단순히 '슬픈 시'의 차원을 넘어, 당대 러시아 지성계를 뒤흔든 '차가운 불꽃'과 같았습니다. 그녀의 독특한 예술적·철학적 깊이를 세 가지 핵심 키워드로 파헤쳐 보겠습니다.
1. '남성적 화자'와
양성구유(兩性具有·Androgyny)의 미학
기삐우스는 여성 시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시 속에서 자신을 지칭할 때 주로 남성 명사나 남성 형용사 어미를 사용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취향이 아니라 그녀의 철학적 선택이었습니다.
∎ 성별의 초월: 그녀는 예술가가 남성성(이성, 논리)과 여성성(직관, 감성)을 동시에 소유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녀에게 '여성적인 것'은 때로 나약함으로 치부되었기에, '나(Я·ya)'라는 자아를 남성형으로 서술하며 지적 권위와 형이상학적 투쟁의 주체성을 확보하려 했습니다.
∎ 시각적 연출: 그녀는 공식 석상에서 남성복을 입거나 남성적인 태도를 취함으로써, 육체라는 감옥에 갇히지 않는 '영혼의 자유'를 시각적으로도 표현했습니다.
2. '제3성약(The Third Testament)'과 종교적 투쟁
"성부의 시대는 권능으로 나타났고, 성자의 시대는 은혜로 나타났으며, 성령의 시대는 자유로 나타날 것이다." ―메레즈콥스키
기삐우스는 남편인 드미트리 메레쥬꼬프스키와 함께 '새로운 종교의식'을 창조하려 했습니다. 그녀의 미학은 곧 그녀의 종교였습니다.
∎ 신비주의적 삼위일체: 그녀는 성부(구약)와 성자(신약)의 시대를 지나, 성령이 다스리는 '성령의 시대(제3성약)'가 올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이 시대에는 육체와 정신, 개인과 사회가 완전히 통합된다고 보았습니다.
∎ 악마주의(Demonism)와의 대결: 그녀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고독과 허무는 단순히 우울한 감정이 아니라, 신에게 닿지 못한 인간이 겪는 '영적인 권태'입니다. 그녀는 이 권태를 극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불가능한 기적'을 갈구했습니다.
3. '비(非)-사랑(Non-Love)'의 역설
기삐우스는 사랑에 대해서도 매우 독특한 관점을 가졌습니다. 그녀가 말하는 사랑은 세속적인 감정이 아니라 '신에게 이르는 통로'였습니다.
∎ 지상의 사랑 거부: 그녀는 육체적이고 일상적인 사랑을 '비속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대신, 타인과 영혼으로 결합하여 절대자에게 나아가는 통로로서의 사랑을 중시했습니다.
∎ 고독의 예찬: 역설적이게도 그녀는 타인과의 완전한 결합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기에, 그 절망적인 고독 속에서 오히려 신성(Divinity)을 발견하려 했습니다. 앞서 보신 <노래>에서 "이 세상에 없는 것"을 갈망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요약: "날카로운 지성의 비수"
기삐우스는 감정의 과잉을 극도로 경계한 시인이었습니다. 그녀의 시는 '차갑고 투명한 유리'와 같아서, 그 안에는 뜨거운 갈망이 소용돌이치고 있지만, 겉으로는 차분한 평정심을 유지합니다.
그녀의 이런 '결핍의 미학'은 이후 아흐마또바의 서정성이나 블로끄의 신비주의와는 또 다른, 러시아 은의 시대만의 날카로운 지적 자취를 남겼습니다.
'메레쥬꼬프스키 살롱'과
망명지 파리의 녹색등불
'메레쥬꼬프스키 부부의 살롱'은 단순한 사교 모임을 넘어, 20세기 초 러시아 지성계의 '이념적 사령부'이자 '상징주의의 산실'이었습니다. 당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무르지 거리(Murzi Street)에 있던 이들의 아파트는 새로운 종교와 예술을 꿈꾸는 이들에게는 성지와도 같았습니다. 이 살롱의 특징과 역사적 의미를 네 가지 핵심 포인트로 짚어드립니다.
1. 이중 권력 구조: 메레쥬꼬프스키와 기삐우스
이 살롱은 부부의 상호보완적인 역할 분담으로 운영되었습니다.
∎ 드미트리 메레쥬꼬프스키 (이론가):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그리스도와 적그리스도' 같은 거대한 역사적·철학적 담론을 제시했습니다. 그는 살롱의 '지적 기둥'이었습니다.
∎ 지나이다 기삐우스 (심판자): 날카로운 통찰력과 독설로 방문객들의 사상을 검증했습니다. 그녀는 외안경(monocle)을 끼고 신예 시인들의 시를 품평하며, 누가 상징주의의 대오에 합류할 수 있을지를 결정하는 '영적 검문소' 역할을 했습니다.
2. '종교-철학 회의'의 발원지
이 살롱이 다른 문학 모임과 차별화되는 지점은 '종교'에 대한 집착입니다.
∎ 교회와의 대화: 1901년부터 1903년까지 이들은 인텔리겐치아(지식인)와 러시아 정교회 성직자들을 한자리에 모으는 '종교-철학 회의'를 주도했습니다.
∎ 새로운 의식: 이들은 구태의연한 제도권 종교를 비판하며, 예술과 종교가 하나로 통합되는 '새로운 종교의식'을 역설했습니다. 이는 당시 알렉산드르 블로끄, 안드레이 벨리 같은 젊은 시인들에게 엄청난 영적 충격을 주었습니다.
3. 엄격한 엘리티즘과 '차가운' 분위기
후대의 기록에 따르면, 이 살롱의 분위기는 결코 따뜻하거나 안락하지 않았습니다.
∎ 지적 긴장감: 방문객들은 기삐우스의 날카로운 질문에 답해야 했으며, 천박하거나 일상적인 화제는 철저히 배제되었습니다.
∎ 비밀 결사적 성격: 부부는 자신들과 뜻을 같이하는 소수의 핵심 멤버들과 '세 사람의 합의(The Cause of the Three)'라는 비밀스러운 영적 공동체를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4. 파리 망명기:
'녹색 등불(The Green Lamp)'
1917년 혁명 이후 부부가 파리로 망명한 뒤에도 살롱의 전통은 이어졌습니다.
∎ 망명 문학의 구심점: 1927년 파리에서 결성된 '녹색 등불' 모임은 러시아 본토와 단절된 망명 지식인들이 러시아 문화의 정통성을 지키기 위해 토론하던 마지막 보루였습니다.
비판적 계승: 이곳에서 나보꼬프 같은 전후 세대 작가들과 기삐우스 세대 간의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살롱의 명암
∎ 공로: 러시아 '은의 시대' 문학의 철학적 깊이를 한 단계 끌어올렸으며, 상징주의라는 거대한 조류를 체계화했습니다.
∎ 한계: 지나친 선민의식과 신비주의로 인해 대중 및 현실 정치와는 다소 동떨어져 있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기삐우수와 블로끄
지나이다 기삐우스와 알렉산드르 블로끄의 관계는 한마디로 '아름다운 천재를 발견한 안목과 그 천재를 끝내 이해하지 못한 증오'의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대 러시아 문단의 여왕이었던 기삐우스와 '상징주의의 왕자'로 불린 블로끄 사이에는 스승과 제자를 넘어선 복잡한 영적 긴장감이 흘렀습니다.
1. 운명적 만남: "흰 새"의 등장
1902년, 무명의 청년이었던 블로끄는 기삐우스에게 자신의 시들을 보냅니다. 기삐우스는 블로끄의 시에서 뿜어져 나오는 신비로운 광채를 즉각 알아차렸습니다.
∎ 지적인 산파: 기삐우스는 블로끄를 자신의 살롱으로 불러들여 그를 문단에 데뷔시켰습니다. 그녀는 블로끄를 두고 "우리의 하늘에 흰 새가 나타났다"라고 표현할 정도로 그를 아꼈습니다.
∎ 영적 가이드: 블로끄의 초기 걸작인 <아름다운 여인에 관한 시>는 기삐우스와 메레쥬꼬프스키가 주창했던 '영원한 여성성(Sophia)'과 신비주의의 영향권 아래에서 탄생했습니다.
2. 스타일의 혼동: "누가 썼는가?"
재미있게도 두 사람의 초기 시들은 그 분위기가 매우 닮아 있어 후대의 독자나 평론가들조차 혼동하곤 합니다.
∎ 차가운 투명함 vs 뜨거운 신비: 기삐우스의 시가 차갑고 날카로운 이성적 신비주의라면, 블로끄는 이를 좀 더 감성적이고 음악적인 언어로 풀어냈습니다.
∎ 귀속의 모호함: 예를 들어 <밤의 꽃(Цветы ночи)> 같은 작품은 특유의 상징적 언어와 허무주의적 색채 때문에 간혹 블로끄의 것으로 오해받기도 하지만, 사실은 기삐우스의 엄격하고 정제된 미학이 빚어낸 그녀만의 작품입니다. 이러한 혼동 자체가 두 사람이 공유했던 영적 주파수가 얼마나 일치했는지를 보여주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3. 1917년의 혁명,
루비콘강을 건너다
두 사람의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러시아 혁명이었습니다.
∎ 블로끄의 투항: 블로끄는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민중의 소리를 듣고자 했고, 문제작 <열둘(The Twelve)>을 통해 혁명을 긍정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 기삐우스의 분노: 철저한 반볼셰비키였던 기삐우스는 이를 '영혼의 배신'으로 간주했습니다. 그녀는 길에서 마주친 블로끄가 인사를 건네자 "당신은 죽었어, 블로끄"라고 차갑게 쏘아붙이며 악수를 거절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전해집니다.
4. 사후의 화해
블로끄가 1921년 젊은 나이에 병사했을 때, 기삐우스는 그를 그토록 비난했음에도 불구하고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그녀는 일기에 블로끄의 죽음을 "러시아의 마지막 태양이 졌다"라고 기록하며, 자신들이 키워냈던 가장 아름다운 영혼의 상실을 진심으로 애도했습니다.
한 걸음 더
기삐우스는 블로끄 외에도 안나 아흐마또바의 재능을 일찍이 알아보고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기삐우스와 아흐마또바
러시아 문학의 찬란한 황혼기였던 '은의 시대(Silver Age)'를 지탱한 두 기둥, 지나이다 기삐우스와 안나 아흐마또바는 모두 '고독'을 노래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응시했던 고독의 풍경은 전혀 다른 색채를 띠고 있었습니다. 두 시인이 공유하고 또 차별화했던 고독의 정서를 세 가지 측면에서 분석해 봅니다.
1. 수직적 고독(기삐우스) vs
수평적 고독(아흐마또바)
두 시인의 고독은 그 방향성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입니다.
∎ 기삐우스의 '탑의 고독': 앞서 보신 시 <노래>처럼, 기삐우스의 고독은 지상을 내려다보는 '드높은 탑' 위에서의 고독입니다. 그녀는 신에게 닿기 위해 세속적인 모든 것을 스스로 거부한 채 고립을 선택했습니다. 이는 지적이고 형이상학적이며, 대중으로부터 분리된 '선택된 자의 외로움'입니다.
∎ 아흐마또바의 '광장의 고독': 반면 아흐마또바의 고독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차가운 돌길 위, 혹은 줄을 서서 기다리는 수용소 문 앞에서의 고독입니다. 그녀는 역사라는 거대한 수레바퀴에 짓눌린 개인들의 슬픔을 온몸으로 받아냈습니다. 그녀의 고독은 '남겨진 자의 슬픔'이자, 민중과 함께 호흡하는 역사적 고독이었습니다.
2. 상징주의(Symbolism)와 아크메이즘(Acmeism)의 충돌
두 시인의 고독은 그들이 속했던 문학 유파의 특성을 고스란히 반영합니다.
∎ 모호한 안갯속의 갈망: 상징주의자인 기삐우스에게 고독은 '미지의 것', '이 세상에 없는 것'을 향한 통로였습니다. 그녀의 시어들은 안개처럼 모호하고 신비롭습니다.
∎ 날카로운 조각 같은 슬픔: 아흐마또바는 기삐우스 식의 모호한 신비주의를 거부하고 사물의 본질을 명확히 묘사하려는 '아크메이즘(Acmeism)'의 기수였습니다. 그녀에게 고독은 "장갑 한 짝을 왼손에 끼어야 하는데 오른손에 끼어버린" 것 같은, 아주 구체적이고 감각적인 아픔으로 묘사됩니다.
3. '여성 시인'이라는 굴레에 대한 상반된 태도
남성 중심적인 러시아 문단에서 두 여성이 고독을 다루는 방식은 그들의 자아 정체성과도 연결됩니다.
∎ 기삐우스: 성별의 부정. 그녀는 고독을 지키기 위해 여성성을 지우고 남성적 화자를 택했습니다. 그녀에게 고독은 자아를 강화하고 절대자와 대결하기 위한 '무기'였습니다.
∎ 아흐마또바: 여성성의 승화. 아흐마또바는 여성의 목소리를 숨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여성 특유의 섬세한 정서로 상실과 고독을 노래함으로써, 그녀의 슬픔이 러시아 전체의 슬픔이 되게 했습니다. 기삐우스는 초기에 이런 아흐마또바를 향해 "너무 여성적이고 감상적이다"라고 비판하기도 했지만, 훗날 그녀의 견고한 시적 성취 앞에서는 인정을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요약하자면
<구분: 지나이다 기삐우스 -> 안나 아흐마또바>
•고독의 성격; 형이상학적, 초월적 -> 역사적, 실존적
•공간 배경: 드높은 탑, 창백한 하늘 -> 페테르부르크의 거리, 수용소의 줄
•시적 태도: 차가운 지성과 오만함 -> 비극적 인내와 연민
•핵심 정서: "세상에 없는 것"에 대한 갈망 -> "잃어버린 것"에 대한 애도
기삐우스가 '하늘의 약속'을 믿지 못해 눈물 없이 울었다면, 아흐마또바는 '지상의 비극'을 목격하며 모든 러시아 여성을 대신해 울었습니다. 이 두 갈래의 고독이 합쳐져 러시아 은의 시대라는 거대한 문학적 비극이 완성된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