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편의 시

by 안나 안드레예브나 아흐마토바

by 김양훈

세 편의 시

안나 아흐마토바


1

잊을 때가 되었네, 저 낙타의 소음과

주꼽스끼 거리의 하얀 집을.¹

때가 되었네, 자작나무 숲에서 버섯을 따고,

모스끄바의 광활한 가을을 맞이할 때가.

지금 거기엔 모든 게 빛나고,

-모든 게 이슬에 젖어,

하늘은 드높이 걸리고,

로가쳅스끼 고속도로²는 기억하나니

젊은 블로끄의 허랑방탕한 휘파람 소리…

2

어두운 기억 속을

장갑 뒤집듯 뒤적이면, 떠오르는

뻬쩨르부르그의 밤, 황혼의 침상과

숨 막힐 듯 달콤한 향내.

만(灣)에서 불어오는 바람, 거기 행간에서

아아, 오오, 감탄사 지나

블로끄―시대의 비극적 테너가

너에게 경멸 어린 미소 지으리.


3

그가 옳다―또다시 가로등, 약국,

네바강, 정적, 화강암…

세기의 시작을 기리는 기념비처럼

저기 그 사람이 서 있다―

그가 ‘뿌시낀의 집’에서

작별의 손을 흔들고는³

과분한 안식을 맞이하듯,

죽음의 나른함을 맞이했을 때. (1944-60)

[註]
1) 1941년 11월부터 1944년까지 독일과의 전쟁 시기에 아흐마또바는 여러 작가·예술가들과 함께 우즈베끼스딴의 따시겐뜨에 머물렀다. ‘낙타의 소음’과 ‘주꼽스끼 거리’는 따시껜드와 관련된 이미지들이다.
2) 알렉산드르 블로끄의 시 「가을의 자유」의 원고에 적힌 메모에서 인용한 것.
3) 알렉산드르 블로끄가 1921년 뿌시낀 사망 84주기를 기념하여 뻬쩨르부르그 ‘문학인의 집’에서 열린 집회에서 행한 마지막 연설을 상기시키는 구절. ‘뿌시낀의 집’은 같은 해 블로끄가 쓴 시의 제목이기도 하다.

이명현 엮고 옮김. 러시아 현대대표 시선

『삶은 시작도 끝도 없다』(창비세계문학)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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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독서과제 시선집 연재(35)


안나 아흐마토바의 연작시 <세 편의 시>는 단순한 추모시를 넘어, 러시아 문학의 가장 찬란했던 '은세기(Silver Age)'의 종언과 그 이후를 살아남은 자의 비극적 회고를 담은 걸작입니다. 1944년부터 1960년까지 긴 시간에 걸쳐 완성된 이 작품은 알렉산드르 블로끄라는 거대한 상징을 통해 개인의 기억과 민족의 역사를 교차시킵니다.

1. 창작 배경: 시간과 공간의 중첩

이 시의 창작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흐마토바가 처했던 '두 번의 고립'과 '한 명의 시인'을 살펴봐야 합니다.

∎ 따시껜뜨의 망명과 전쟁: 제1연의 배경인 1941~1944년은 제2차 세계대전 중 레닌그라드 봉쇄를 피해 아흐마토바가 우즈베키스탄 따시껜뜨로 피난 갔던 시기입니다. 낯선 중앙아시아의 '낙타 소음' 속에서 시인은 머나먼 북방의 고향과 러시아의 가을을 갈구합니다.

∎ 알렉산드르 블로끄(Alexander Blok): 아흐마토바에게 블로끄는 단순한 동료 시인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은세기 문학의 정점이자, 혁명 전후 러시아의 영혼을 대변했던 인물입니다. 1921년 블로끄의 죽음은 러시아 지성계에서 '은세기가 끝났다'는 사망선고와 같았습니다.

∎ 1921년의 마지막 연설: 제3연에 언급된 '뿌시낀의 집'은 1921년 블로끄가 죽기 직전 행한 유명한 연설 「시인의 사명에 대하여」⁴를 가리킵니다. 그는 여기서 시인의 '비밀스러운 자유'를 설파하며 숨을 거두었는데, 아흐마토바는 이 사건을 세기적인 이정표로 기록하고자 했습니다.


2. 시평: 기억의 지층과 비극적 숭고함

제1편: 상실의 감각과 지리적 향수

제1편은 '잊을 때가 되었네'라는 체념 섞인 문장으로 시작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뒤에 이어지는 구절들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선명한 감각들을 나열합니다. 따시껜뜨의 이국적인 이미지(낙타)와 대비되는 러시아의 자작나무 숲과 모스크바의 광활한 가을은 시인의 내면적 귀향을 상징합니다. 특히 '젊은 블로끄의 휘파람 소리'를 소환하며, 비극이 시작되기 전의 찬란했던 생명력을 추억합니다.

제2편: 뻬쩨르부르그, 거울에 비친 비극

제2편에서 기억은 '장갑을 뒤집듯' 뒤적여지는 고통스럽고도 내밀한 행위입니다. 아흐마토바는 은세기의 중심지였던 뻬쩨르부르그의 밤을 소환합니다. 여기서 블로끄는 '시대의 비극적 테너'로 명명됩니다. 이는 블로끄의 시 세계가 지닌 고조된 서정성과 그 이면의 파멸적 징후를 완벽하게 포착한 수사입니다. 시인은 그 시대의 화려함 뒤에 숨겨진 '경멸 어린 미소'를 통해, 다가올 비극을 예감하면서도 그것을 피할 수 없었던 지식인들의 운명을 드러냅니다.

제3편: 기념비가 된 시인, 영원한 안식

제3편은 블로끄의 가장 유명한 시 「밤, 거리, 등불, 약국…」을 변주하며 시작합니다. 아흐마토바는 블로끄를 '세기의 시작을 기리는 기념비'로 격상시킵니다. 그는 이제 살아있는 인간이 아니라, 한 시대의 화석이자 지표가 되었습니다. 1921년의 죽음은 고통스러운 현실로부터의 '과분한 안식'이자 '나른함'으로 묘사됩니다. 이는 스탈린 체제 아래에서 살아남아 고초를 겪어야 했던 아흐마토바 자신이, 먼저 떠난 블로끄에게 보내는 부러움 섞인 작별 인사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3. 종합적 의미

이 시는 1944년에 시작되어 1960년에 마무리되었습니다. 이 16년의 세월은 아흐마토바가 '주다노프 비판'⁵으로 문단에서 제명당하고 아들이 수용소에 갇히는 등 생애 가장 어두운 터널을 지나온 시기입니다.

그녀는 고통스러운 현재를 견디기 위해 블로끄라는 거울을 닦았습니다. "그가 옳다"는 제3편의 첫 구절은, 허무와 고통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시인이 견뎌야 할 운명에 대한 뒤늦은 긍정입니다. 아흐마토바는 블로끄의 죽음을 통해 한 시대의 종말을 목격했고, 동시에 그 기억을 기록함으로써 사라진 은세기를 영원한 문학적 신화로 부활시켰습니다.

∎ 요약: 이 연작시는 블로끄라는 인물을 매개로 [과거의 영광-현재의 유배-죽음의 안식]이라는 삼각 구도를 형성합니다. 아흐마토바는 절제된 언어와 정교한 상징을 통해, 비극적인 역사의 파도 속에서도 변치 않는 예술의 '기념비적' 가치를 역설하고 있습니다.


[註4]

‘뿌시낀의 집 ’블로끄의 연설
「시인의 사명에 대하여」
Pushkin House facade
알렉산드르 블로끄가 1921년 2월 11일, 뻬쩨르부르그의 ‘뿌시낀의 집’에서 행한 연설 「시인의 사명에 대하여(О назначении поэта)」는 단순한 기념사를 넘어, 러시아 은세기 문학의 ‘최후의 유언’과도 같은 문헌입니다. 뿌시낀 사망 84주기를 기념하여 행해진 이 연설은 당시 혁명 이후 경직되어 가던 소비에트 사회 속에서 예술가의 자유와 운명을 절규하듯 설파한 역사적 사건이었습니다.

1. 시대적 배경: 혁명의 환멸과 죽음의 그림자

블로끄는 한때 1917년 혁명을 "음악"으로 받아들이며 찬양했던 인물입니다(시 「열둘」). 그러나 1921년 초, 그는 혁명이 가져온 관료주의와 자유의 억압에 깊이 절망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그는 심각한 괴혈병과 심장 질환을 앓고 있었고, 이 연설은 그가 세상을 떠나기 불과 6개월 전에 행해진 그의 마지막 공식 석상 모습이었습니다.

2. 연설의 핵심 개념: "비밀스러운 자유"

이 연설에서 블로끄가 가장 강조한 것은 뿌시낀의 시 구절에서 인용한 ‘비밀스러운 자유(тайная свобода)’입니다.

∎ 세계의 조화와 시인의 청력: 블로끄에 따르면 시인의 첫 번째 사명은 세상의 혼돈 속에서 흐르는 ‘근원적인 음악’ 혹은 ‘조화’를 듣는 것입니다.

∎ 형상화의 고통: 두 번째 사명은 그 들려오는 음악을 단어라는 외적 형상으로 옮기는 작업입니다.

∎ 외부와의 충돌: 마지막 사명은 그 완성된 예술을 세상에 내놓는 것인데, 여기서 시인은 필연적으로 외부의 방해(관료주의, 검열, 군중의 무지)와 맞닥뜨리게 됩니다.

3. "평화와 자유" vs "검열과 질서"

블로끄는 뿌시낀이 죽은 이유가 단지 단테스의 총탄 때문이 아니라, "숨 쉴 공기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합니다.

"뿌시낀을 죽인 것은 단테스의 총알이 아닙니다. 숨 쉴 공기의 부족이 그를 죽인 것입니다. 그의 사명은 이미 완수되었으나, 평화와 자유가 빼앗긴 세상에서 시인은 더 이상 숨을 쉴 수 없었습니다."

여기서 ‘평화와 자유’는 시인이 창작에 몰입할 수 있는 내적 평온과 예술적 독립성을 의미합니다. 블로끄는 예술을 국가의 도구나 선전 수단으로 전락시키려는 시도를 강하게 비판하며, 시인은 오직 예술적 양심에만 복종해야 함을 역설했습니다.

4. 문학사적 의미와 영향

∎ 은세기의 종언: 블로끄는 이 연설을 통해 19세기 뿌시낀의 전통과 20세기 초 은세기의 정신이 연결되어 있음을 천명했습니다. 동시에 그의 죽음과 함께 그 고결했던 서정의 시대가 끝났음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습니다.

∎ 아흐마토바에게 준 충격: 안나 아흐마토바는 이 연설 현장에 직접 참여했습니다. 그녀에게 블로끄의 연설은 평생 잊지 못할 정신적 이정표가 되었으며, 앞서 읽었던 <세 편의 시> 중 제3편에서 "과분한 안식을 맞이하듯 죽음의 나른함을 맞이했을 때"라고 표현한 것은, 숨 막히는 세상에서 드디어 '숨 쉴 공기'를 찾아 떠난 블로끄에 대한 애달픈 이해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 예술가의 독립 선언: 이 연설은 훗날 이오시프 브로츠키 등 후대 러시아 시인들에게도 영감을 주며, 권력에 굴복하지 않는 예술가의 자율성을 상징하는 텍스트로 남았습니다.

결론적으로 「시인의 사명에 대하여」는 시인이란 단순히 글을 쓰는 자가 아니라, 우주의 조화를 포착하여 언어로 고착시키는 사제이며, 그 과정을 방해하는 모든 외부적 압력(검열, 관료주의)은 시인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독소임을 고발한 비극적인 선언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註5]

주다노프 비판
Andrei Zhdanov by Boris Chaliapin, 1946.
'주다노프 비판(Zhdanovshchina)'은 1946년 소련의 문화 정책을 총괄하던 안드레이 주다노프(Andrei Zhdanov)가 주도한 대대적인 예술 탄압 및 숙청 운동을 말합니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 내부의 이데올로기적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 시행되었으며, 그 중심 타깃이 된 인물이 바로 안나 아흐마토바였습니다.

1. 배경: '느슨해진' 전쟁 시기의 통제 복구

전쟁 중(1941~1945) 소련 당국은 민족주의적 고취를 위해 예술가들의 자유로운 창작을 어느 정도 묵인했습니다. 그러나 승전 후, 스탈린은 서구 사상의 유입을 차단하고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를 공고히 할 필요를 느꼈습니다. 주다노프는 이를 위해 '사회주의 리얼리즘'이라는 엄격한 잣대를 들고 나와 예술계를 난도질하기 시작했습니다.

2. 1946년 8월 14일 결의안

사건의 발단은 문학잡지 『즈베즈다(별)』와 『레닌그라드』에 실린 작품들이 "소비에트 정신에 어긋난다"는 비판이었습니다. 주다노프는 당 결의안을 통해 아흐마토바와 소설가 미하일 조셴코를 대중 앞에서 공개 처형에 가까운 수준으로 비난했습니다.

아흐마토바를 향한 독설: "반은 수녀, 반은 창녀"

주다노프는 연설에서 아흐마토바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습니다.

"그녀의 시 세계는 신비주의와 에로티시즘이 뒤섞인 비좁은 방구석의 서정일뿐이다. 그녀는 기도하는 수녀와 음탕한 창녀가 뒤섞인 존재이며, 그녀의 시는 소비에트 청년들을 독살하고 타락시킨다."

이 '수녀이자 창녀'라는 표현은 아흐마토바를 평생 괴롭힌 낙인이자, 당시 당국이 서정시를 얼마나 퇴폐적이고 반동적인 것으로 간주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문구입니다.

3. 주요 비판 논리

∎ 탈정치성(Apoliticism): 국가와 인민의 승리를 노래하지 않고 개인의 슬픔, 사랑, 고독을 노래하는 것은 반동적이라는 논리입니다.

∎ 서구 추종주의: 아흐마토바의 시가 지닌 '은세기'적 전통과 세련미를 서구 부르주아 문화에 물든 '퇴폐주의'로 규정했습니다.

∎ 비관주의: 소비에트 시민은 밝고 희망차야 하는데, 그녀의 시는 우울하고 비극적이라는 점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4. 아흐마토바에게 닥친 가혹한 결과

이 비판 이후 아흐마토바의 삶은 말 그대로 '사회적 사형' 상태에 놓였습니다.

∎ 작가동맹 제명: 공식적인 창작 활동과 출판이 전면 금지되었습니다.

∎ 생존의 위협: 식량 배급 카드가 박탈되어 극심한 기아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동료 작가들조차 그녀와의 접촉을 피했습니다.

∎ 가족 탄압: 그녀의 아들 레프 구밀료프(Lev Gumilyov)는 다시 체포되어 수용소로 보내졌습니다. 아흐마토바는 아들을 살리기 위해 스탈린을 찬양하는 시(「평화에 영광을」)를 억지로 써야 하는 굴욕을 겪기도 했습니다.

∎ 감시와 도청: 그녀의 아파트에는 도청 장치가 설치되었고, 일거수일투족이 비밀경찰(KGB의 전신)에 의해 감시되었습니다.

5. 역사적 의미

주다노프 비판은 소련 지식인들에게 "예술은 국가의 도구여야 한다"는 공포를 각인시킨 사건이었습니다. 하지만 아흐마토바는 이 암흑기 속에서도 굴복하지 않고, 수용소에 끌려간 아들과 고통받는 민중의 목소리를 담은 불멸의 대서사시 <레퀴엠>을 암송하며 머릿속으로 집필해 나갔습니다.


아흐마토바에게 이 시기는 '위대한 침묵'의 시기였습니다. 앞서 살펴본 연작시 <세 편의 시>가 1944년부터 1960년까지 긴 시간에 걸쳐 완성된 이유도, 바로 이 주다노프 비판이라는 거대한 폭력을 온몸으로 견뎌내며 기억을 정제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안나 아흐마토바의 삶에서 1946년 ‘주다노프 비판’ 이후의 시간은 개인적인 지옥과 문학적인 숭고함이 공존했던 시기입니다. 아들의 구명 문제와 동료 조셴코와의 관계를 통해 그 시대의 비극을 더 깊이 들여다보겠습니다.
Anna Akhmatova and NikolayGumilyev with Son.

1. 아들 레프 구밀료프를 향한 처절한 모성:

「평화에 영광을」

아흐마토바의 외아들 레프 구밀료프는 "아버지는 처형당했고, 어머니는 반동 시인"이라는 꼬리표 때문에 평생을 수용소와 감시 속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 1949년의 세 번째 체포: 주다노프 비판 이후 3년 뒤, 아들 레프는 또다시 체포되어 10년 형을 선고받고 시베리아 수용소로 압송됩니다. 아흐마토바는 이것이 자신을 향한 당국의 보복임을 직감했습니다.

∎ 굴욕적인 찬가, 「평화에 영광을」: 아흐마토바는 아들의 목숨을 구걸하기 위해 평생 지켜온 문학적 자존심을 꺾습니다. 1950년, 그녀는 스탈린을 찬양하고 공산주의 체제를 옹호하는 시 연작 「평화에 영광을(Slava Miru)」을 발표합니다.

“스탈린이 계신 곳에 자유와 평화, 그리고 대지의 위대함이 있노라”

∎ 비극적 결과: 이런 굴욕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들은 석방되지 않았습니다. 레프는 1956년 스탈린 사후에야 풀려났으며, 수용소에서 고초를 겪는 동안 어머니가 자신을 위해 충분히 싸우지 않았다고 오해하여 모자 관계는 죽을 때까지 회복되지 못하는 상처를 남겼습니다. 그녀는 훗날 자신의 전집에서 이 찬가들을 모두 삭제하고 싶어 했습니다.

미하일 조셴코

2. 안나 아흐마토바와 미하일 조셴코:

'망각'을 공유한 동지

1946년 결의안에서 아흐마토바와 함께 '반동 작가'로 낙인찍힌 인물은 당대 최고의 풍자 작가 미하일 조셴코(Mikhail Zoshchenko)였습니다. 두 사람은 같은 날 문학계에서 매장당했지만, 그 비극을 견디는 방식은 사뭇 달랐습니다.

∎ 대조적인 태도: 조셴코는 당의 비판에 큰 충격을 받고 자신이 얼마나 충성스러운 소비에트 시민인지를 증명하려고 애쓰며 서서히 정신적으로 무너져 내렸습니다. 반면 아흐마토바는 침묵을 지키며 여왕과 같은 품위로 비극을 받아들였습니다.

∎ 1954년의 사건: 스탈린 사후, 영국 작가단이 소련을 방문해 두 사람을 만났을 때의 일화가 유명합니다. "1946년의 비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조셴코는 억울함을 호소하며 당의 부당함을 설파하려다 다시 한번 당국의 눈 밖에 났습니다. 하지만 아흐마토바는 "나는 당의 결의안에 전적으로 동의한다"라고 짧게 답했습니다. 이는 당을 지지해서가 아니라, 아들의 안위를 위해, 그리고 어리석은 질문으로 자신들을 위험에 빠뜨리는 외부인들에 대한 냉소적인 방어 기제였습니다.

∎ 운명의 공동체: 조셴코는 결국 문단에 복귀하지 못한 채 쓸쓸히 죽음을 맞이했고, 아흐마토바는 그의 장례식에서 "그는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한 작가 중 한 명이었다"라고 회고하며 끝까지 동료의 명예를 지켰습니다.

"미하일 조셴코의 『하늘색 책(The Sky Blue Book)』을 위한 삽화"
미하일 조셴코의 『하늘색 책』(Голубая книга)에 대하여

'주다노프 비판'에서 언급되었던 조셴코가 1934~1935년에 발표한 그의 가장 야심 찬 대표작입니다. 이 작품을 이해하면 왜 그가 당국의 날카로운 감시를 받았는지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독특한 구성: 이 책은 인류의 역사를 '돈', '사랑', '간교함', '불행', '놀라운 사건'이라는 다섯 가지 주제로 분류하여 서술합니다. 과거의 역사적 사건들과 현대(소련)의 소시민적 일상을 교차시키며 인간의 변하지 않는 본성을 풍자합니다.

하늘색의 의미: '하늘색'은 희망과 이상을 상징하지만, 조셴코의 펜 끝에서는 현실의 남루함과 대비되는 역설적인 장치로 쓰입니다.

비판의 표적: 조셴코는 이 책에서 사회주의 건설이라는 거창한 구호 뒤에 숨은 인간의 탐욕과 어리석음을 날카롭게 꼬집었습니다. 당국은 이 책이 "역사를 모독하고 소련 인민을 비하했다"라고 평가했으며, 이는 훗날 그가 주다노프 비판의 희생양이 되는 결정적인 빌미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조셴코의 이 작품은 아흐마토바의 서정시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권력에 저항했습니다. 아흐마토바가 '비극의 여왕'으로서 고통을 견뎠다면, 조셴코는 웃음이라는 무기로 체제의 모순을 폭로하려 했던 것입니다.

3. 요약 및 시사점

<구분: 안나 아흐마토바미하일-조셴코>

‣비판의 이유: 서정적 신비주의, 퇴폐적 수녀-소비에트 시민에 대한 불온한 풍자

‣대처 방식: 침묵과 인내. 내적으로는 <레퀴엠> 집필-해명과 호소. 당국에 인정받으려 노력

‣결과: 세계적인 시인으로 추앙받으며 복권-신경쇠약과 빈곤 속에 쓸쓸한 죽음

아흐마토바는 아들을 구하기 위해 '가짜 시'를 써야 했던 고통과, 동료 작가가 파멸해 가는 과정을 지켜봐야 했던 슬픔을 모두 견뎌냈습니다. 그녀가 쓴 시평에서 블로끄를 "과분한 안식"을 얻은 자로 표현한 것은, 자신처럼 살아남아 이런 끔찍한 굴욕을 견디지 않아도 되었던 선배 시인에 대한 처절한 질투이자 경의였을지도 모릅니다.

안나 아흐마토바의 <레퀴엠(Requiem)>은 20세기 러시아 문학사에서 가장 위대한 증언록이자, 개인의 슬픔을 민족의 비극으로 승화시킨 대서사시입니다. 이 작품은 1935년부터 1940년 사이에 집중적으로 창작되었으나, 당시의 공포 정치(대숙청) 때문에 종이에 기록되지 못하고 시인과 그 친구들의 '머릿속'에만 존재했던 시이기도 합니다. <다음 편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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