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오시쁘 예밀리예비치 만젤시땀
오로지 아동서만 읽고
오시쁘 만젤시땀
오로지 아동서만 읽고,
오로지 아이 같은 생각만 품을 것.
모든 큼지막한 것은 저리 날려버리고,
깊은 슬픔으로부터 우뚝 일어설 것.
정말이지 삶에 넌더리가 났으니,
아무것도 삶에서 받아들이지 않겠다.
하지만 내 가난한 땅은 사랑한다.
왜냐면 다른 건 본 적이 없으니.
정원에서 나는
소박한 나무 그네를 타곤 했다.
그 키 크고 녹음 짙던 전나무들을
어렴풋한 기억 속에 떠올려본다. (1908)
이명현 엮고 옮김. 러시아 현대대표 시선
『삶은 시작도 끝도 없다』(창비세계문학) 中
----
5월 독서과제 시선집 연재(37)
오시프 만델슈탐(Osip Mandelstam, 1891-1938)의 1908년 작, 「오로지 아동서만 읽고(Только детские книги читать)」는 그의 초기 문학적 지향점과 내면의 고독을 투명하게 보여주는 작품 중 하나입니다. 17세라는 어린 나이에 쓰인 이 시는 단순한 소년기의 감상을 넘어, 당시 러시아 문단을 지배하던 상징주의의 거대 담론에서 벗어나려는 시인의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1. 작품의 창작 배경:
거대한 세계로부터의 도피와 회귀
이 시가 쓰인 1908년은 러시아 문학사에서 '은세기(Silver Age)'가 정점에 달했던 시기입니다. 당시 문단은 신비주의, 형이상학적 상징, 그리고 복잡한 미학적 수사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 상징주의에 대한 반작용: 어린 만델슈탐은 당시를 지배하던 무겁고 난해한 상징주의적 분위기에 일종의 피로감을 느꼈습니다. 시 속의 "큼지막한 것은 저리 날려버리고"라는 구절은 당대의 거창한 철학적 외침들에 대한 거부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 시인의 청년기적 우울: 17세의 만델슈탐은 조숙한 천재였습니다. 그는 세기말적 고독과 삶의 허무를 일찍 체감했으며, 복잡한 '어른들의 세상' 혹은 '역사의 무게'로부터 도망쳐 순수한 기원의 공간으로 돌아가고자 했습니다.
• 아크메이즘(Acmeism)의 씨앗: 훗날 그는 구체적이고 명징한 사물의 세계를 지향하는 '아크메이즘'의 기수가 됩니다. 이 시에서 언급되는 '아동서', '그네', '전나무'와 같은 구체적인 대상들은 훗날 그가 보여줄 명료한 시 세계의 원형을 제시합니다.
2. 시평:
상처 입은 영혼이 선택한 '자발적 유아기'
제1연: 정화(Purification)로서의 아동서
시인은 "오로지 아동서만 읽고, 오로지 아이 같은 생각만 품을 것"을 선언합니다. 여기서 '아동서'는 지식이 부족한 상태가 아니라, 세상의 편견과 복잡한 이해관계가 제거된 순수한 시선을 의미합니다. "깊은 슬픔으로부터 우뚝 일어설 것"이라는 구절은 역설적입니다. 슬픔을 극복하는 방법이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장 연약하고 순수한 상태인 '아이'로 돌아가는 것임을 역설하기 때문입니다.
제2연: '가난한 땅'에 대한 지독한 사랑
"정말이지 삶에 넌더리가 났으니"라는 고백은 10대 소년의 것이라고 믿기 힘들 만큼 냉소적입니다. 그러나 시인은 삶을 부정하면서도 자신이 발 딛고 있는 "가난한 땅"만은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왜냐면 다른 건 본 적이 없으니."
이 구절은 만델슈탐 시학의 핵심 중 하나인 '현실에 대한 수용'을 보여줍니다. 이상향이나 천국을 꿈꾸는 대신, 비록 남루하고 가난할지라도 자신이 경험한 유일한 현실인 이 땅을 껴안겠다는 의지입니다. 이는 관념에 매몰되었던 당시 시풍에 대한 강력한 문학적 저항이기도 합니다.
제3연: 기억의 감각화
마지막 연에서 시인은 추상적인 선언을 멈추고 구체적인 기억 속으로 침잠합니다. '정원의 나무 그네'와 '녹음 짙은 전나무'는 유년 시절의 평화로움을 상징하는 시각적 장치입니다. "어렴풋한 기억"은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애틋함과 동시에, 그 기억만이 유일하게 신뢰할 수 있는 삶의 실체임을 암시합니다.
3. 종합적 평가: 작고 낮은 것들의 위대함
이 작품은 만델슈탐이 평생에 걸쳐 투쟁했던 '시간'과 '역사'라는 거대 괴물 앞에서 개인이 취할 수 있는 가장 겸허하면서도 단단한 태도를 보여줍니다.
• 대비 구조: '큼지막한 것(거대 담론/역사)' vs '소박한 것(아동서/그네)'.
• 역설적 승리: 세상의 풍파에 맞서 싸우는 대신, 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감으로써 오히려 슬픔 위로 "우뚝 일어"섭니다.
이처럼 시 「오로지 아동서만 읽고」는 단순한 유년의 추억록이 아닙니다. 그것은 삶의 무게가 개인을 짓누를 때, 우리가 회복해야 할 것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세상을 처음 마주했을 때의 그 맑고 정직한 응시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문학적 선언입니다. 훗날 스탈린 체제의 폭압 속에서도 자신의 시적 양심을 지켰던 만델슈탐의 강단은, 어쩌면 이 시에서 보여준 "가난한 땅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에서 이미 시작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이 시는 독자에게 묻습니다. 우리를 짓누르는 '큼지막한 것들'을 날려버리고, 우리를 일으켜 세울 '나만의 아동서'는 무엇인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