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젤시땀에 대하여

by 김양훈

오시쁘 예밀리예비치 만젤시땀

(Osip Emil’evich Mandel’shtam)

1891-1938


오시쁘 예밀리예비치 만젤시땀은 1891년 1월 3일 폴란드 바르샤바의 유대계 상인 집에서 태어났다. 일곱 살 되던 해에 그는 가족과 함께 러시아로 이주하여 뻬쩨르부르그에서 성장한다. 1907~10 사이에 만젤시땀은 소르본 대학과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단기간 유학하고, 유럽의 여러 지역을 여행한다. 파리 유학 시절 모더니즘에 눈뜨면서 그는 본격적인 시 창작에 돌입하게 된다. 1910년 잡지 『아폴론』을 통해서 데뷔한 후 1911년 구밀료프와 고로제쯔끼가 결성한 ‘시인조합’ 및 아끄메이스뜨 그룹에 가담하고, 안나 아흐마또바와 각별한 우정을 나눈다. 같은 해 뻬쩨르부르그 대학에 입학하여 1917년까지 역사 인문학부 로망어 학과에서 수학한다.

1913년 3월 첫 시집 『돌』(Kamen’)이 출간되자 만젤시땀은 아흐마또바와 함께 새로운 시의 젊은 주자로서 문단의 주목을 받는다. 곧이어 그는 아끄메이즘의 선언문에 해당하는 「아끄메이즘의 아침」(Utro 마ㅡ댜큼)을 발표한다. 이 선언문을 비롯한 그의 글에서 말과 예술의 의의와 존재 양식은 아끄메이즘이 숭상했던 건축적인 개념으로 해석된다. 이후 여러 잡지에 평론 및 서평을 발표하여 문학사와 철학에 대한 탁월한 식견과 예리한 안목을 드러낸다. 1915년에는 시인 마리나 쯔베따예바(Mrina Tsvetaeva)와 친분을 맺고 남다른 애정과 시적 영감을 주고받는다.

혁명이 발발하자 사회혁명당 좌파에 동조하며 혁명을 지지하는 시를 쓰기도 했으나, 내전 시기에는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여 우끄라이나와 구르지야 등지를 전전한다. 1921년에 그는 우끄라이나에서 만난 나제즈다 야꼬블레브나(Nadezhda Yakovlevna)와 부부의 연을 맺는다. 훗날 그녀는 회고록을 써서 만젤시땀의 생애와 창작에 관 소중한 정보를 세상에 전한다.

만젤시땀 부부

1922년 모스끄바로 온 만젤시땀 부부는 1934년 유형을 떠날 때까지 안정된 거처도 직장도 없이 위태롭고 궁핍한 생활을 이어간다. 모스끄바로 돌아온 해에 세계대전 및 혁명기의 시들이 수록된 『트리스티아』(Tristia)¹가 출간된다. 헬레니즘과 관련된 모티프들이 주를 이루는 이 시집에는 문화와 시간에 관한 철학적 사유가 응축되어 있다. 그 뒤를 잇는 1920년대 전반기의 시들은 구시대에 대한 회상과 문화의 단절에 대한 비극적 인식을 담고 있다.

1920년대 중반부터 문단의 배척과 당국의 감시가 노골화되자 점차 신경증과 불안증의 징후를 보이던 만젤시땀은 1930년까지 시 쓰기를 중단한다. 대신 이 시기에 『시간의 소음』(Shum vremeni, 1923)과 『이집트 우표』(Egipetskaya, 1928)와 같은 주옥같은 산문들을 발표하고, 시론집 『시에 관하여』(O poezii, 1928)를 출간한다. 1933년에는 여행기 『아르메니아로의 여행』(Puteshestvie v Armeniyu)을 상재하기도 한다.

1934년 5월에 만젤시땀은 스딸린을 풍자하는 시를 쓴 죄로 체포되어 보로네시에서 3년간 유형 생활을 하게 된다. 유형지에서 그는 연작시 「보로네시 노트」(Voronezhskie tetradi)를 비롯한 수십 편의 시들을 쓴다. 1937년 5월 형기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모스끄바 당국은 만젤시땀 부부의 주거를 불허한다. 그리하여 1년가량을 두 사람은 그야말로 무일푼으로 떠돌이 생활을 한다. 1938년 5월에 만젤시땀은 또다시 반혁명 죄로 체포되어 5년의 강제노동형을 선고받는다. 시베리아로 호송되던 중 잠시 머물던 블라지보스또끄의 임시수용소에서 그는 예기치 않게 숨을 거둔다. 사망 직전까지 그는 시를 썼다고 전해진다. 공식적으로는 1938년 12월 27일에 심장마비로 사망한 것으로 되어 있지만, 만젤시땀의 정확한 사망 원인과 날짜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고 있다. 사망 통보는 1940년 6월에야 가족들에게 전해진다. 아내 나제즈다 야꼬블레브나에 의해 1930년대에 씌어진 원고들이 어렵사리 보존되어 1950년대 말에 복사본으로 유포되다가, 1964년에 미국에서 유고 시집으로 처음 출간된다.


시인의 아내 나제즈다 야꼬블레브나
Nadezhda Yákovlevna Mandelshtam
오시프 만델슈탐의 시들이 1930년대의 서슬 퍼런 감시를 뚫고 1964년 미국에서 출간되기까지의 과정은, 한 여성의 초인적인 기억력과 헌신이 만들어낸 '문학적 기적'의 서사입니다. 그 구체적인 여정을 단계별로 정리해 드립니다.

1. 1930년대:

'살아있는 아카이브'와 기억의 투쟁

1934년 만델슈탐이 스탈린을 조롱하는 시를 쓴 죄로 처음 체포된 이후, 그의 원고는 언제든 압수되어 불태워질 위험에 처했습니다. 이때 아내 나제즈다 만델슈탐은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보존 방식을 택합니다.

• 암기(Memorization): 나제즈다는 남편의 시 수백 편을 통째로 외웠습니다. 종이는 발각되면 파기되지만, 머릿속의 기억은 죽이기 전까지 빼앗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매일 밤 시를 되뇌었고, 가까운 지인들에게도 시를 나누어 외우게 하여 '인간 보관소'를 구축했습니다.

• 물리적 은닉: 원고 조각들을 베갯잇 속, 구두 밑창, 냄비 밑바닥 등에 숨겼습니다. 만델슈탐이 1938년 두 번째 체포되어 수용소에서 사망한 후에도, 나제즈다는 이 원고들을 들고 소련 전역을 떠돌며 보존했습니다.

2. 1950년대 말:

'사미즈다트(Samizdat)'의 탄생과 확산

1953년 스탈린이 사망하고 '해빙기'가 찾아왔지만, 만델슈탐의 작품은 여전히 공식 출판이 금지된 상태였습니다.

• 먹지의 힘: 1950년대 후반부터 나제즈다는 자신이 외우고 숨겨두었던 시들을 종이에 옮겨 적기 시작했습니다. 이 원고들은 타자기를 이용해 대여섯 장의 먹지로 복사되었고, 이것이 바로 '사미즈다트(자구 출판)'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 복사본의 유포: 이 비공식 복사본들은 지식인들 사이에서 은밀하게 돌려 읽혔습니다. 사람들은 밤을 새워 이 시들을 다시 베껴 썼고, 만델슈탐의 시는 '금지된 진실'로서 소련 지하 문학의 핵심이 되었습니다.

3. 서방으로의 탈출:

'타미즈다트(Tamizdat)'의 경로

소련 내에서의 출판이 불가능함을 깨달은 나제즈다는 목숨을 건 결단을 내립니다. 원고를 서방으로 유출하기로 한 것입니다.

• 비밀 전달: 당시 소련을 방문했던 서방의 학자들, 외교관, 혹은 신뢰할 수 있는 지인들의 손을 통해 원고 복사본이 국경을 넘었습니다.

• 해외 출판(Tamizdat): 이렇게 유출된 원고들은 미국과 유럽의 러시아 망명 문학계로 전달되었습니다. '타미즈다트'는 '저기(서방)에서 출판된 것'이라는 뜻의 은어입니다.

4. 1964년:

미국에서의 첫 유고 시집 출간

드디어 1964년, 워싱턴과 뉴욕의 '언어 간 문학 협회(Inter-Language Literary Associates)'를 통해 만델슈탐의 첫 번째 정본 유고 시집(Collected Works)이 출판됩니다.

• 편집자들의 헌신: 망명 학자인 글렙 스트루베(Gleb Struve)와 보리스 필리포프(Boris Filippov)가 편집을 맡았습니다. 이들은 흩어진 사미즈다트 판본들을 대조하고 교정하여 최대한 시인의 원형에 가까운 텍스트를 복원해냈습니다.

• 역사적 의의: 이 시집의 출간은 전 세계에 '만델슈탐'이라는 거장의 존재를 다시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동시에 소련 당국에는 큰 충격을 주었으며, 역설적으로 훗날 소련 내에서 그가 부분적으로 복권되는 압박으로 작용하기도 했습니다.

요약: 나제즈다가 지켜낸 '말의 승리'

나제즈다 야꼬블레브나는 훗날 자신의 회고록 『희망에 맞서는 희망(Hope Against Hope)』에서 이 과정을 상세히 술회했습니다. 그녀는 남편의 시를 보존하는 것이 자신의 유일한 삶의 목적이었다고 고백합니다. 1964년 미국의 출판은 단순히 종이 위에 글자가 찍힌 사건이 아니라, "시는 불타지 않는다"는 명제를 증명한 역사적 승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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