뻬쩨르부르그에서 우리 다시 만나리

by 오시쁘 예밀리예비치 만젤스땀

by 김양훈

뻬쩨르부르그에서 우리 다시 만나리

오시쁘 만젤스땀

뻬쩨르부르그에서 우리 다시 만나리,

마치 우리 그곳에 태양을 묻어놓은 듯,

축복받은 무의미한 말을

우리 처음으로 발설하리.

쏘비에뜨 밤의 검은 벨벳 속에서,

범세계적 공허의 벨벳 속에서,

축복받은 여인들의 정겨운 눈동자

-여전히 노래하고

불멸의 꽃들 여전히 피어난다.

수도(首都)는 들고양이처럼 등이 굽었고,

다리 위에는 정찰병 서 있는데,

사악한 자동차만이 어스름 속을 질주하며

뻐꾸기처럼 울어댄다.

나는 야간통행증 따위 필요 없고,

보초병도 두렵지 않으니,

축복받은 무의미한 말을 위해

쏘비에뜨의 밤에 나 기도하리.

극장에서 옷자락 사각대는 소리 들린다,

아가씨들 ‘아아’ 하는 탄성도―

그리고 거대한 불멸의 장미 다발이

키프리스¹의 손에 들려 있다.

무료한 우리는 모닥불에 몸을 녹인다.

어쩌면, 영겁이 흘러가고,

축복받은 여인들의 정겨운 두 손이

가벼운 재를 모으리.


어디선가 어른거리는 일반석의 붉은 이랑,

특별석에는 호사스레 부풀어 오른

-귀부인의 드레스.

태엽 감긴 인형 같은 장교―

흉악한 영혼과

-저열한 위선자를 위한 것은 아닐진대…

그래 뭐, 좋다. 우리의 촛불을 끄라,

범세계적 공허의 검은 벨벳 속에서

행복한 여인들의 다부진 어깨

-여전히 노래하는데,

그대는 밤의 태양 알아채지 못하리. (1920)

[註1] ‘키프로스 섬사람’이란 뜻으로 아프로디테의 별명. 아프로디테가 바다 거품에서 탄생하여 키프로스 섬에 첫발을 내디뎠다는 전설에서 연원한다.

이명현 엮고 옮김. 러시아 현대대표 시선

『삶은 시작도 끝도 없다』(창비세계문학)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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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독서과제 시선집 연재(42)


Multitudes of soldiers and workers march on St. Petersburg in the Bolshevik Revolution in October 1
창작 배경과 시평
오시프 만델스탐의 시 「뻬쩨르부르그에서 우리 다시 만나리」는 20세기 러시아 문학의 비극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선언 중 하나입니다. 이 시는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사라져 가는 구세계의 가치와, 그런데도 포기할 수 없는 예술의 영속성을 노래합니다.

1. 창작 배경:

'붉은 테러'와 황혼의 도시

이 시가 쓰인 1920년은 러시아 내전이 막바지에 다다르고 볼셰비키 정권이 공고해지던 시기입니다.

▪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몰락: 제정 러시아의 찬란한 수도였던 상트페테르부르크(뻬쩨르부르그)는 혁명 이후 이름이 바뀌고(페트로그라드), 수도의 지위마저 모스크바에 내어준 채 춥고 굶주린 '죽어가는 도시'로 변모했습니다.

▪ 아크메이즘(Acmeism)의 위기: 만델스탐이 속했던 '아크메이즘' 유파는 명료한 사물성과 문화적 전통을 중시했습니다. 그러나 혁명 정부는 예술을 정치적 도구로 활용하길 원했고, 전통적 미학은 '반동적'인 것으로 치부되었습니다.

▪ 태양의 매장: 시의 도입부에 등장하는 "태양을 묻어놓은 듯"이라는 표현은 물리적인 일몰이 아니라, 한 시대의 문명이 종말을 고했음을 상징합니다.

2. 주요 상징과 시평

축복받은 무의미한 말

이 시에서 가장 핵심적인 역설입니다. 시인은 왜 '무의미한 말'을 축복하고 기도하는가?

여기서 '무의미함'은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강요하는 '정치적 목적성'이나 '실용적 교조'가 없는, 순수한 예술 그 자체를 의미합니다.

폭력과 공포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아무런 쓸모가 없어 보이는 시(詩)적 언어야말로 인간의 영혼을 구원할 마지막 보루라는 믿음이 담겨 있습니다.

검은 벨벳과 공허의 밤

"쏘비에뜨 밤의 검은 벨벳"은 혁명 이후의 어둠을 시각화합니다. '벨벳'은 부드럽고 고급스러운 질감을 주지만, 동시에 질식할 것 같은 폐쇄성을 암시합니다.

시인은 이 거대한 공허 속에서도 여인들의 눈동자와 불멸의 꽃(예술)이 살아있음을 강조하며, 절망적인 현실과 탐미적인 이상을 대비시킵니다.

야간통행증이 필요 없는 시인

사악한 자동차가 뻐꾸기처럼 울고(공포정치의 상징), 정찰병이 서 있는 공포의 도시에서 시인은 "야간통행증 따위 필요 없다"라고 당당히 선언합니다.

이는 물리적 억압이 시인의 정신적 자유를 구속할 수 없음을 의미하며, 죽음을 초월한 예술적 자아의 승리를 보여줍니다.

밤의 태양

마지막 구절의 "밤의 태양"은 역설의 정점입니다. 태양은 묻혔지만, 그 어둠 속에서 타오르는 예술의 불꽃은 '밤의 태양'이 되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빛납니다. 속물적인 장교나 위선자들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오직 고결한 영혼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빛입니다.

3. 종합 평가:

멸망해 가는 문명에 바치는 헌사

이 시는 단순한 향수가 아니라, 파멸해 가는 문명 앞에서 시인이 던지는 비장한 약속입니다.

만델스탐은 훗날 스탈린을 비판하는 시를 썼다가 수용소에서 생을 마감하게 되지만, 1920년에 쓴 이 시를 통해 이미 자신의 운명을 예견한 듯합니다. "우리 다시 만나리"라는 약속은 지상의 뻬쩨르부르그가 아닌, 언어와 기억이 영생하는 예술의 공간에서 재회를 뜻합니다.

현실의 어둠이 짙어질수록 '축복받은 무의미한 말'의 가치는 더욱 빛난다는 사실을, 만델스탐은 이 유려하고도 차가운 시어들을 통해 증명해 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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