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쎄르게이 알렉산드로비치 예세닌
개에 관한 노래
쎄르게이 예세닌
아침 녘 호밀짚 개집 속에
보리수 거적 가지런히 빛나는데
암캐가 새끼 일곱 마리를 낳았네,
밤색 털의 일곱 마리 새끼를.
저녁이 되도록 새끼를 어루만지고
혀로 핥아서 털을 고르니
개의 따스한 배 밑에
눈이 녹아 졸졸 흘렀네.
저녁에 닭들이
홰에 올라앉을 무렵
인상 험악한 주인이 나와
일곱 새끼를 몽땅 자루에 담았네.
개가 새끼를 바짝 쫓아
눈길 위로 내달리니…
얼지 않은 수면이
오래오래 떨렸네.
옆구리의 식은땀 핥으며
터벅터벅 간신히 집으로 돌아오니
오두막 위로 떠오른 달이
한 마리 새끼처럼 보였네.
구슬피 목 놓아 울부짖으며
푸른 하늘 쳐다보니,
가녀린 초승달 미끄러져
들녘 언덕 너머로 숨어버렸네.
사람들이 장난삼아 돌을 던질 때면
먹이를 외면하듯
개의 두 눈동자 휑뎅그렁
금빛 별처럼 눈 속을 굴렀네. (1915)
이명현 엮고 옮김. 러시아 현대대표 시선
『삶은 시작도 끝도 없다』(창비세계문학)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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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독서과제 시선집 연재(55)
창작 배경과 시평
러시아 전원의 서정을 노래한 '마지막 농민 시인', 세르게이 예세닌(Sergei Yesenin)의 시 <개에 관한 노래(Песнь о собаке)>는 생명의 비극과 인간의 잔혹함을 예리하면서도 아름답게 형상화한 작품입니다. 시의 창작 배경과 시평을 정리해 드립니다.
1. 창작 배경:
격변기 속의 농촌 공동체
이 시가 쓰인 1915년은 예세닌의 초기 문학 활동이 정점에 달했던 시기입니다.
▪ 농촌의 고통과 상실: 당시 러시아는 제1차 세계대전의 화염 속에 있었고, 농촌 사회는 점차 붕괴되고 있었습니다. 예세닌은 도시화와 전쟁으로 인해 파괴되어 가는 고향의 서정적 가치를 지키고자 했습니다.
▪ 생명 경시와 빈곤: 갓 태어난 강아지들을 자루에 담아 물에 던지는 행위는 당시 러시아 농촌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비정한 관습이었습니다. 가난한 농가에서 식구를 늘릴 수 없었던 현실적인 이유가 있었으나, 시인은 이를 단순한 생활사가 아닌 '생명에 대한 폭력'으로 인식했습니다.
▪ 종교적·범신론적 세계관: 예세닌은 동물을 인간과 동등한 감정을 가진 존재로 보았습니다. 그는 자연의 모든 만물이 영혼을 가지고 있다는 범신론적 태도를 견지했으며, 이 시는 그러한 사상이 투영된 결과물입니다.
2. 시평:
상실의 고통이 별이 되는 순간
모성애와 인간의 잔혹함의 대비
시의 전반부는 '금빛'과 '따스함'으로 가득합니다. 암캐가 새끼들을 핥아주어 눈이 녹는 장면은 생명의 온기를 시각적으로 극대화합니다. 그러나 이 온기는 주인의 '험악한 인상'과 '자루'라는 차가운 물체와 대비되며 순식간에 비극으로 치닫습니다. 인간은 '장난삼아' 돌을 던지지만, 개에게는 삶의 전부가 무너지는 사건입니다.
환영과 전이: 달에서 새끼를 보다
가장 압권인 대목은 집으로 돌아온 개가 하늘에 뜬 달을 보며 '한 마리 새끼'처럼 느끼는 장면입니다.
"오두막 위로 떠오른 달이 한 마리 새끼처럼 보였네."
상실의 고통이 극에 달해 현실과 환각의 경계가 무너진 것입니다. 자루에 담겨 물속에 가라앉은 새끼들의 형상이 하늘의 달로 전이되는 이 장면은, 개의 슬픔을 우주적인 차원으로 확장시킵니다.
금빛 눈물: 비극의 신성화
마지막 연에서 개의 눈동자가 '금빛 별처럼 눈 속을 굴렀다'는 표현은 매우 중의적입니다. 이는 개가 흘리는 눈물인 동시에, 고통을 초월한 순수한 생명의 광채이기도 합니다.
주인은 개의 생명을 앗아갔지만, 시인은 개의 슬픔을 하늘의 별과 달로 승화시킴으로써 인간의 잔혹함보다 동물의 순수한 비애가 더 숭고함을 역설합니다.
3. 종합 의견
이 시는 단순한 '동물 애호'의 차원을 넘어섭니다. 예세닌은 개를 통해 '고통받는 모든 약자'를 대변합니다.
특히 1910년대 러시아의 거친 현실 속에서, 말 못 하는 짐승의 눈을 빌려 세상을 응시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서늘한 슬픔을 안겨줍니다. 100년이 지난 지금도 이 시가 울림을 주는 이유는, 타자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인간의 무심함에 대한 시인의 서글픈 경고가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한 줄 평:
"자루에 담긴 생명의 무게를 하늘의 달로 치환해 낸, 가장 시리고도 아름다운 비가(悲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