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쎄르게이 알렉산드로비치 예세닌
어머니께 보내는 편지
쎄르게이 예세닌
나의 노모여, 여전히 살아계시겠죠?
나 또한 살아있어요, 문안 인사 올립니다!
당신의 오두막 위에
저 형언할 수 없는 저녁 빛이 흐르기를.
사람들 왈, 당신은 불안을 감추며
나 때문에 몹시 슬퍼하고,
구닥다리 부인복 차림으로
자주 길가에 나가보신다고요.
또한 저녁의 푸른 안갯속에서
당신은 종종 똑같은 환영을 보신다죠.
누군가가 술집에서 드잡이 하던 중
핀란드 칼을 내 심장에 내리꽂는 모습을.
괜찮아요, 어머니! 안심하셔요.
그건 단지 괴로운 망상일 뿐.
나는 정말이지, 당신을 못 보고 죽을 만큼
지독한 주정뱅이가 아니랍니다.
예전과 똑같이 다정한 내가
꿈꾸는 것은 오직 한 가지,
격정의 우수에서 어서 빨리 벗어나
나지막한 우리 집으로 돌아가는 것.
나 돌아갈 거예요, 우리 집 하얀 정원이
봄날처럼 나뭇가지를 넓게 펼칠 때.
다만, 부디 팔 년 전처럼
새벽에 나를 깨우지는 마셔요.
예전에 꿈꾸었던 것 일깨우지 마시고,
이루지 못한 것 생각나게 하지 마셔요.
나는 인생에서 너무도 일찍
상실과 피로를 맛보아야 했으니까요.
나에게 기도하는 법 가르치지 마셔요, 제발!
더 이상 옛날로 돌아갈 수는 없어요.
오직 당신만이 나에게 도움이자 기쁨이고,
오직 당신만이 나에게 형언할 수 없는 빛이죠.
그러니까 불안 따위는 잊어버리고,
나 때문에 그렇게 슬퍼하지 마셔요.
구닥다리 부인복 차림으로
그토록 자주 길가에 나가보지 마세요. (1924)
이명현 엮고 옮김. 러시아 현대대표 시선
『삶은 시작도 끝도 없다』(창비세계문학)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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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독서과제 시선집 연재(60)
세르게이 예세닌의 「어머니께 보내는 편지」(1924)는 러시아의 '마지막 농촌 시인'이라 불리는 그의 절망과 회한, 그리고 고향에 대한 시원(始原)적 향수가 집약된 작품입니다. 이 작품의 창작 배경과 시평을 정리해 드립니다.
1. 창작 배경:
방탕한 도시 생활과 무너진 영혼
이 시가 쓰인 1924년은 예세닌이 비극적인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 불과 1년 전입니다. 당시 그의 삶은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파국으로 치닫고 있었습니다.
•혁명 후의 환멸: 예세닌은 처음에 볼셰비키 혁명을 찬양했으나, 곧 기계 문명이 자신이 사랑하던 러시아의 농촌 공동체를 파괴하는 것을 목격하고 깊은 환멸에 빠졌습니다.
•방랑과 무절제: 세계적인 무용가 이사도라 던컨과의 불행한 결혼과 이혼, 미국과 유럽 유람 후 돌아온 조국에서의 소외감은 그를 알코올 중독과 방탕한 생활로 몰아넣었습니다.
•죽음의 그림자: 시인은 도시의 술집을 전전하며 스스로를 '불량배'라 자조했습니다. 환각과 우울증에 시달리던 그는 죽기 직전, 유일한 안식처이자 순수함의 상징인 '고향의 어머니'를 떠올리며 이 편지 형태의 시를 썼습니다.
2. 시평:
'형언할 수 없는 빛'을 향한 절규
어머니: 종교적 구원과 고향의 상징
시에서 어머니는 단순한 혈연관계를 넘어, 시인이 잃어버린 '성스러운 러시아'와 '순수한 유년' 그 자체를 의미합니다. 시인은 자신을 '지독한 주정뱅이'로 묘사하며 타락한 현실을 고백하지만, 어머니 앞에서는 다시 '다정한 아들'이 되고 싶어 합니다. 여기서 어머니는 죄를 사해주고 안식을 주는 종교적 구원자의 형상으로 나타납니다.
비극적 예시와 거부
어머니가 상상하는 '칼에 맞는 아들'의 모습은 당시 예세닌이 처했던 위태로운 상황을 암시합니다. 하지만 그는 "나를 깨우지 마셔요", "기도하는 법 가르치지 마셔요"라고 말합니다. 이는 이미 너무 멀리 와버려 과거의 순수함으로 완전히 되돌아갈 수 없다는 시인의 절망적인 자기 인식을 보여줍니다. 상실과 피로를 너무 일찍 맛본 영혼의 비명이 담겨 있습니다.
빛과 어둠의 대비
•어둠: 술집의 드잡이, 핀란드 칼, 격정의 우수, 구닥다리 부인복.
•빛: 저녁 빛, 하얀 정원, 형언할 수 없는 빛.
시 전반에 흐르는 '빛'의 이미지는 어머니의 사랑을 시각화합니다. 도시의 어두운 밑바닥에서 허덕이는 아들에게 어머니라는 존재는 유일하게 꺼지지 않는 등불인 셈입니다.
3. 요약 및 감상
이 시는 예세닌 특유의 '농촌의 서정'이 비극적 현실과 충돌하며 발생하는 슬픔의 미학을 극대화하고 있습니다. 8년 만에 돌아가고 싶다는 소망을 피력하면서도, 동시에 예전의 꿈을 일깨우지 말아 달라는 모순된 애원은 독자에게 깊은 울림을 줍니다.
결국 이 시는 어머니께 드리는 안부 인사인 동시에, 자기 자신에게 보내는 장례식 전의 고해성사와도 같습니다. "오직 당신만이 나에게 형언할 수 없는 빛"이라는 고백은, 세상 모든 것을 잃은 한 인간이 마지막으로 붙잡은 단 하나의 진실이 무엇인지 보여줍니다.